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ip Lee Dec 24. 2023

열렸나, 닫혔나

마음의 성장판이 닫히질 않길

“아!” 갑자기 오른 무릎이 저렸다. 저녁 먹고, 가족이 모여 TV 보던 중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힌 건가. 아니면 추워진 날씨 탓?(에구. 벌써 그럴 나이인가) 멘소래담 바르고, 간단한 찜질을 했다. 갑자기 선우가 말을 던진다.


“아빠, 성장판 때문에 아픈 거 아니야?”     

순간 방에 정적이 가득. 5초가 흘렀을까. “하하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마흔 중반에 성장판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말에 모두 즐거웠다.     


며칠이 흘러 그때 일이 떠올랐다. 이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관통했다.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을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선우의 키가 얼마나 컸을까를 관심 있게 지켜본다. 선우가 조금 더 철들고 (키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나는........?   

  

일터에선 이상한 약을 먹은 것처럼, 종일 뾰로통한 표정이다. 언짢으면 아무에게나 버럭 화를 내고, 허구한 날 땅이 꺼지라고 한숨 쉰다. 집에 오면 항상 소파와 물아일체. 휴대폰만 바라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휴대폰과 TV를 왔다 갔다 하며 반백수와 같은 삶을 산다.     


그나마 지성인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책읽기와 글쓰기는 어떤가. 습관적으로 도서관에서 책은 빌리지만, 거의 읽지 못했다(않았다). ‘언젠가 나도 기똥차게 좋은 작품을 쓸 거야! 근데 뭘 쓰지?’라는 망상을 매년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쓰지 못하고 있다.      


선우에게는 어땠을까. 선우가 공부할 때 짜증 내거나 귀찮아하면, 나 역시 짜증을 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기분 좋게 하면 안 되냐?’ 시전하며... 학교 가기 싫어하고, 월요일만 되면 빨리 주말이 왔으면 하고 울부짖는 선우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 다 가는 학교인데, 왜 이럴까.’


한동안 선우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성격도 그렇고,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마음에 딱 들지 않았다. 자연스레 내 입에선 잔소리가 늘었다.     


내일 책가방 챙겼어? 밥 먹어야지. 일기 썼어?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핸드폰 좀 그만 써라. 책상 좀 치워라.     


매일 잔소리 해대는 나를 보며, 선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나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잔소리를 하고 있던 건 아닐까. ‘아빠나 똑바로 해! 아빠도 맨날 핸드폰 보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해!’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흔하디흔해 빠진 말이 떠오른다. ‘지금 나의 모습을 선우가 닮는다면, 내 습관을 선우가 똑같이 따라 한다면...’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선우의 삶은 나의 것과는 달랐으면... 훨씬 더 익사이팅하고, 멋진 삶을 살았으면...     


내 성장판은 진작 닫혔다. 그런데 마음의 성장판은 어떨까. 그 성장판만큼은 계속 열렸으면 좋겠다. 죽기까지 쭉. 나 자신을 아끼고 보살피고,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늘어나고, 가족에게 든든한 버팀목 같은 가장으로 살고 싶다. 1 센티미터라도, 2 센티미터라도 괜찮다. 조금이나마 성장판이 열리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