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쓰 5] 초고는 초고일 뿐
쓸 결심을 하고 글감을 찾고 적당히 숙성했다. 쓸 차례다(드디어). 좁은 머릿속에 갇혔던 글감들. 드디어 움직일 때다. 어디로? 광활한 노트북 속 빈 문서 속으로. 연어 떼가 계곡 바위 틈 사이를 팔딱거리며 헤엄치듯 와르르 쏟아진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내가 먼저 나갈 거야!”, “아냐. 내 얘기가 더 진솔하니까 넌 빠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엔 내 얘기만 한 게 없지.”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듯 글감들끼리의 경쟁이 사뭇 진지하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머릿속의 글감이 다 빠져나왔다. 평범한 단어 하나까지 모조리. 그동안 정성스레 숙성했던 글감은 노트북으로 완전히 이주했다. 더 이상 빈 문서가 아니라 꽉 찬 문서 되겠다. 근데, 어! 글이 왜 이렇지? ‘이 글감으로 얼마나 환상적인 글이 나올까’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있었는데.
문단도 안 나뉘어 있고, 논리적으로 안 맞고, 뻔하디뻔한 얘기도 담겨 있다. 여기저기 오타도 보이고, 여러 사람이 쓴 것처럼 통일성도 없다. 내가 초등학생 때 쓴 일기처럼 유치하기도 하다.
숙성의 결과가 이렇다니... 김 빠진다. 그동안 글감 모으고 모은 결과가 이게 뭐람. 글감이 별로였나. 숙성이 덜 되었나 아님 너무 되었나. 아무래도 난 글 쓸 팔자가 아니었나. ‘확 연필을 분질러야, 아니 노트북을 영영 닫아야 하나.’라는 괴리감에 빠진다.
아직 노트북을 안 닫았다면 내 얘기를 들어 보자. 기대하고 기대했어도 형편없는 글이 나올 수 있다. 아니, 그게 정상이다. 초고 아닌가. 초고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초고는 어떤 모양이라도 괜찮다.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돼도 상관없고, 크고 작은 오타 많아도 문제없다. 심지어 문장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단어만 나열해도 된다. 여러 옷감을 이리저리 잘라 만든 누더기 옷처럼 정신없어도 된다. 다 괜찮다. 이게 초고의 특권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A급 작가라도 초고부터 완전한 글을 쓸 수 없다. “수십 수백 번을 고쳐 썼어요.”라고 인터뷰한 작가들 지겹도록 보지 않았나. 초고는 초고일 뿐이다. 완성된 글이 아니다.
“그래도 내 글은 너무 못 썼어요.”라고 겸손의 극치를 보인다면, 안심하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그 못 쓴 글을 계속 고치면 된다. 나의 눈에, 다른 사람의 눈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면 된다. “정말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질문 전에 일단 고쳐 봐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일 것이다.
자. 어디서부터 고쳐 볼까? (지끈지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