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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Dec 16. 2024

그는 정말 꿈을 잃어버렸을까?

김호연 모험 소설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나의 돈키호테>는 서점가를 휩쓴 초특급 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의 신작이다.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사연과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결국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런 감동을 기대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제 서른에 접어든 한 여자, 솔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솔은 자기가 기획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잘린다. 무작정 고향 대전으로 내려온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개인 유튜브를 시작한다.  

   

유튜브의 내용은 자신의 청소년 시절, 큰 도움을 주었던 아저씨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노잼도시 대전의 한복판에서 비디오/책 대여점 <돈키호테 비디오>를 열었다. 그곳을 아지트 삼아 솔이와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토론도 하고, 여행도 떠났다. 그 아저씨의 롤모델은 다름 아닌 ‘돈키호테’. 그는 돈키호테에 매료된 나머지 책 『돈키호테』를 정성스럽게 필사하고 한평생 자유를 갈망했다.     


그런 돈아저씨의 산초라 불리던 솔은 아저씨의 아들 한빈과 함께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린 아저씨의 행방을 쫓는다. 그 생생한 과정은 고스란히 유튜브에 담기고, 유튜브 회원들은 솔이와 같은 마음으로 아저씨 찾기를 응원한다. 솔이 역시 자신의 학창 시절 큰 도움을 주었던 아저씨와의 만남을 고대한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135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나? 희미한 실마리를 좇던 솔은 아저씨의 과거 인연들을 만난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동창생, 강남 학원 시절의 동료,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시나리오 계약을 한 영화사 대표 등을 만나 인터뷰한다.      


인터뷰를 통해 솔은 아저씨가 비디오 가게를 하기 전에 경험했던 다양한 삶의 부조리를 듣는다. 힘겹게 삶의 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던 아저씨의 모습도 유추해 나간다. 아저씨의 마지막 목격자라 할 수 있는 영화사 동료 PD는 아저씨가 끝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고 증언한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인생의 전성기를 몽땅 바친 분이 그 꿈을 포기한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거거든요.” (243쪽)     


결국 솔이는 아저씨를 만난다. 아저씨는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의 충격적인 말 때문에.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받아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293쪽)     


평생 돈키호테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꿈을 내려놓았다고 말하는 아저씨. 아니, 꿈을 내려놓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돈키호테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한 아저씨. 그런 아저씨의 말에 솔이는 실망했고, 나 역시 실망했다.   

  

돈키호테를 좋아하고 따르고 싶어서, 돈아저씨라는 별명까지 가졌었는데. 왜 그 꿈을 포기했을까? 작가는 돈아저씨에게 더 드라마틱한 삶을 선사해줄 수는 없었을까?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았던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하여 영화계의 신데렐라가 될 순 없었을까? 그런 돈아저씨를 발굴한 솔에게 A급 회사에서 적지 않은 계약금을 건넬 순 없었을까? 이런저런 불평이 나오던 차, 돈아저씨의 다른 고백을 들었다.      


“열정이 사라졌으니까. 열정이 광기를 만들고 광기가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인물을 만들거든. 나는 고갈된 열정 대신 현실에 발을 디딘 산초의 힘으로 돼지우리를 만들고 하몽을 염장할  거란다.” (316쪽)   

 

순간 소설 속 돈아저씨가 바로 내 옆에서 말하는 듯 했다. 꿈을 포기했다고 돈아저씨가 삶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에 발을 디뎌 새로운 꿈을 꾸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결국 솔이도 이런 아저씨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소설 말미에는 과거의 멤버들과 유튜브에서의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꿈이 없어졌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나이에 무슨 꿈을 꾸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힘들고 바쁜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 좋은 책 읽고, 내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써 보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돈 벌고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 건강한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피곤하지만 운동하기...     


매일 반복되는 현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는 것이다. 마치 산초처럼. 그러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나의 돈키호테’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어딘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돈키호테>가 내겐 모험 소설로 읽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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