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좌충우돌 첫 물류알바 이야기

by Philip Lee

버스에 탔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경직된 분위기.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고, 어떤 소리도 없다. 버스는 계속 달렸고, 정류장에서 한두 명씩 태웠다. 어느샌가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 미동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버스에 탄 지 5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버스가 야트막한 산길로 향한다. 조금 더 지나자, 큰 건물이 눈에 보인다. 온통 하얗다. 마치 신무기를 제작하는 연구소의 모습이랄까. 그런 건물이 대충 세도 5~6개는 보인다. **물류회사 **센터에 도착했다. 떨린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한 달 전,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상급자와의 갈등이 제일 컸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50을 몇 년 앞둔 40대 후반에 말이다. 처음엔 마냥 쉬었다. 도서관에서 못 봤던 책도 실컷 보고, 미루었던 드라마도 보았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보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자영업을 해왔던 내가 갈 곳은 당연히 없었다. 거의 명퇴할 수준인 나이도 문제였다. 시간은 점점 더 지나고, 불안해졌다. 측은히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도 달라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신청했다. 물류회사 단기 알바. 지원 방식은 어렵지 않았다. 자체 어플로 날짜와 업무를 신청하고, 확정되면 일하면 된다(다음날 바로 입금된다). 그나마 가까운 센터에 신청하고 알바가 확정되었다. 야간수당이 붙는 오후 근무였다. 시간에 맞춰 센터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조금씩 어두워지던 오후 6시 반. 버스에서 내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갔다. 데스크에서 이름 확인하고, 센터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출근 체크인을 했다. 미리 챙겨 간 자물쇠로 사물함에 짐을 넣고, 비치되어 있던 안전화로 갈아신었다. 발바닥이 매우 아프다는 말에 깔창을 챙겨가 안전화에 넣었다.


처음 온 사람들은 안전교육부터 받았다. 신입은 나까지 7명이었다. 동영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 기본 안전교육을 한 시간 시청하고, 근무지로 투입되었다. 나는 입고를 신청했는데, 그날은 그 업무가 없어서 인솔자와 함께 또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작업장에 들어갈 때는 보안대를 통과해야 했다.


작업장에 도착했다. 축구장 2~3개를 이어붙인 듯한 거대한 작업장. 곳곳에는 수많은 박스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 움직이는 사람들. 그곳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문화충격. 깜깜한 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니.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옛 노랫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나의 첫 업무가 정해졌다. 누군가가 행선지가 적힌 종이를 박스에 붙이면, 그 박스(들)를 그 행선지가 모여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청주, 대전, 남양주, 인천, 안양...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스 테이프 부치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할만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괜히 걱정했잖아.’


밤 11시에 밥을 먹었다. 밑반찬과 메밀전병, 순대국밥이 나왔는데, 맛은 별로였다. 국을 거의 반을 남기고 휴게실에서 잠깐 쉬었다.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장에 갔다. 여기는 마치 거대한 미로 같아 초보는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가까스로 작업장에 복귀했다. 그곳에서 아까 하던 일을 했다. 그런데, 아까보다 박스가 많아졌고, 무거운 상자들도 늘었다. 세제, 강아지 사료, 페트병 등 딱 봐도 무거워 보였다. 바로 옆으로 옮기면 됐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팔에 힘이 빠졌다. 챙겨간 생수통을 손에 쥐고 계속 마셨다. 2시간쯤 했을까. 또 다른 업무를 배당받았다.


이번엔 출고 파트. PDA로 물건의 위치를 찍고 물건을 찍고 물건을 개수대로 카트에 싣는 일이다. 처음에는 찍는 게 어리숙하고 물건의 위치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몇 번 하니 익숙해졌다. 미션을 완수하는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무거운 짐을 들지 않아 좋았다.


새벽 3시 반쯤 일을 그만두고 다들 쉬었다. 나도 쉬고 퇴근을 기다렸다. 3시 55분부터 근무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4시 퇴근과 동시에 모든 근무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왠지 <쇼생크 탈출> 영화가 생각났다. ‘프리덤’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었다. 신발을 갈아신고 짐을 챙겨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땐 아무래도 좀 빨리 걸린 것 같다. 4시 55분에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물류회사1밤.jpg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시흥의 빵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전에는 그냥 넘겨 버렸을 뉴스이지만, 이젠 남 일 같지 않다. 50을 앞두고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 드신 분들도 여럿 있었다. 몸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일단 다행 아닌가. 건강하지 않으면 이 일도 못 한다.


그래, 일단 해 보자.

ps. 퇴근할 때 너무 정신없어서 깔창을 두고 왔다. 내일 누군가는 발이 좀 편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