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알바를 통해 내가 배운 것
야간 물류 단기 알바를 다녀온 후, 이틀 힘들었다. 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처음 해 본 일이라 몸이 반응을 보였나 보다. 어깨가 특히 아팠고, 양 다리도 뭉쳤다. 왜 물류 일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놀 수는 없는 법. 다시 물류 알바를 신청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집과 더 가까운 센터가 있었다. 이번엔 그쪽 신청해서(주간으로) 확정문자를 받았다. 두 번째지만 역시 떨린다. 처음 가보는 센터였기에 그랬나 보다.
8시 15분, 집 앞에서 셔틀 버스를 탔다. 8시 40분쯤 도착, 지은 지 몇 년밖에 안 되었다던데 확실히 저번 센터보다 깔끔했다. 2~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아 활기찬 느낌이었다. 이곳에선 처음 일하는 거라 다시 안전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고, 작업장으로 갔다. 작은 센터라 이동이 편했다. 도착한 곳엔 흰 진열장이 펼쳐져 있었다. 진열장은 5단이었고, 그런 진열장이 수십 개.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속 책장처럼 쭉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내가 할 업무는 입고, 그중에서도 진열이었다.
출고가 물건의 위치를 찾아 가져오는 쇼핑의 개념이라면, 진열은 물건을 곳곳에 채워 넣는 업무이다. 반장님에게 업무에 대해 배운 후, 투입되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카트(마트의 카트와는 다르다)에 물건들이 담긴 도트(플라스틱 박스) 6개를 넣는다. 그 물건들을 진열장의 빈 곳에 넣고, PDA에 진열장 위치와 물건 바코드를 찍으면 된다. (참 쉽죠? 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다. ‘여기 넣으면 됩니다’ 식으로 진열장이 텅 빈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발품을 팔아 빈틈이 있는 곳에 물건을 넣어야 한다. 그런데 빈 자리가 있어도 그곳에 이미 다른 물건 4종이 들어있으면 넣을 수 없다(PDA에서 안 된다고 알람이 뜬다). 그러면 또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한다. 물건의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이불 같이 부피가 큰 물건은 빈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수량도 잘 파악해서 넣어야 한다.
매의 눈으로 빈 곳을 찾아 물건을 넣었을 때, 별 것 아닌데도 기분이 좋았다. 도트의 물건을 다 털면, 또 6개의 도트를 싣고 터덜터덜 진열장으로 향한다. 이런 업무의 반복이었다. 물건이 가득 찬 도트를 움직이느라 팔 아프고, 계속 걷느라 다리 아플 때쯤, 반가운 방송이 들렸다. “입고 사원님들은 즉시 업무를 멈추고, 중앙으로 모여주십시오.”
드디어, 밥 시간이다. 오늘의 메뉴는 함박스테이크였다. 냉동식품이겠지만 일을 하고 나서 먹어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밥을 먹고, 휴게실에서 쉬고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과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식곤증이 몰려왔다. 챙겨간 캔디를 꺼낼 시간이다. 항상 내 주머니에는 커피캔디, ABC 초콜릿이 있다. 군대에서 먹는 야전식량과도 같다.
체크한 수량이 PDA와 맞지 않는 경우도 한두 번 있었다. “왜 수량 틀렸어요? 똑바로 계산하라고 했죠!”라고 꾸짖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반장님이 본인의 방식대로 잘 해결(?)해 주셨다. 왠지 이곳에선 수동적이 된다. 누군가에게 일을 지시받고 나는 그 방식 그대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 아닐까.
드디어 퇴근 시간이다. 일일 사원증을 반납하고, 버스장으로 나왔다. 9시간 만에 밖이라니. 그 자체가 기분 좋았다. 수십 개의 버스가 있었다. 지역도 다양했다. 서울 노원 셔틀버스도 있었다. ‘저기에서 오려면 최소한 한 시간 반은 걸릴 텐데(내가 근무한 곳은 경기 남부).’ 깔깔 웃으며,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뭐 돼?”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이다. 그동안 물류 일과 같이 몸을 쓰는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단정했다. 직접 일해 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고 그동안 말은 해왔지만, 머릿속 깊은 곳에서는 직업의 순위를 세우고 있었다(월급, 워라밸, 일의 강도 등으로).
내가 뭐라도 된다고 이런 생각을 해왔단 말인가. 아니 뭐라도 되도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아침 일찍부터 피곤함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일하고 또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내 동생, 내 친구, 내 아버지의 모습 아닌가.
두 번밖에 일을 안 했지만, 물류 일을 통해 뒤늦게 인생을 배운다. 아직도 참 배울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