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글쓰기1. 나는 왜 쓰는가?
자영업자의 글쓰기라. 거창해 보이기도 하고, 평범해 보이기도 한 제목이다. 나의 글쓰기를 말할 때, 제일 적합하지 않을까. 실제 나는 문구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니까...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의 이름을 훑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글쓰기의 최전선>, <나를 살리는 글쓰기>, <기자의 글쓰기>,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각양각색의 글쓰기 책이 넘쳐난다.
글쓰기 책의 범람 속에서 그렇다면 <자영업자의 글쓰기>는 무엇이 다를까? 내가 나의 글쓰기를 평가하기가 좀 그렇지만 치열하다. 글 제대로 쓰는 사람 중에 치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난 삶의 자리 한가운데에서 쓴다. 좀 쉽게 말하자면 가게의 카운터에서 글을 쓴다. 손님이 오면 노트북을 덮고 글을 멈추어야 한다. 지금도 여기까지 쓰는 동안 두 명의 손님이 왔다 갔고, 십 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글을 쓰는 모드로 집중하기 위해선 십 분이 더 필요했다.
집중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 시간 남짓. 그것도 급한 일이 있거나 선천적 게으름이 발동하면 쓰지 못한다. 물론, 도서관에서 쓸 때도 있고, 가끔 집에서도 쓰지만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곳, 가게에서 글을 많이 쓴다. 손님이 별로 없는 아침 9시부터 11시,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가 글쓰기에 좋다. 서평도 쓰고, 사는 이야기도 쓰고, 에세이도 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조금 과장하자면, 살기 위해 쓴다. 40대 가장의 정체성이 나를 옥죄어온다. 갚아 나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대출이자, 계속 적신호를 보내는 건강, 1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전한 진로, 점차 냉소적이고 투박해지는 성격, 무의미한 것만 같은 부조리한 삶... 이것들이 덕지덕지 나를 붙들고 있다. 아니, 내가 이것들을 외려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 김광석, <서른 즈음에>
가수의 심정이 지금 나와 같지 않을까. 드라마 <워킹 데드>의 살아있는 시체들처럼 나는 그렇게 배회하며 살아가고 있다. 써야 했다. 뭐라도 써야 했다. ‘글을 써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글을 통해 헬조선을 벗어나야겠다’는 거창한 바람보다는 그저 이 순간을 잊기 위해 쓴다. 누가 쓰라고 권유하지 않아도 써야 했다.
글을 쓸 때 고도의 집중력, 고요함을 경험한다. 그 순간이 내겐 천국이다. 그 순간이 있기에 다음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마치 징검다리에 놓인 하나의 강고한 돌처럼.
<자영업자의 글쓰기>는 글쓰기의 거창한 의미와 글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진 않는다. 그저 내가 써왔던 글쓰기(와 나만의 노하우)에 대해서 쓸 뿐이다. 첫 번째 독자는 나일 것이다.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몰랐던 나를 찾길 기대한다. 얼마만큼 쓸지 무엇을 쓸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역시 쓰면서 뮤즈가 최소한의 길 안내를 해주길 기대할 뿐. 일단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 김영하,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