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글쓰기2. 나는 왜 쓰는가?(2)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출판사 서평단으로 매달 서평을 쓰기는 했지만, 내 영혼을 담은 글은 쓰지 못했다. 아니 안 썼다는 표현이 맞을 듯. 자영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다. 불안정한 수입, 손님(특히 진상)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흙빛 전망, 나에 대한 실망....
이런 상황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 살아낼 뿐이었다. 얼굴엔 짜증을, 입엔 한숨과 욕을 달고 살았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 내 상황에서 무슨 글이야? 조금 여유로워지고, 내 상태가 좀 괜찮아지면 그때서야 글다운 글을 써야지...’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헛된 바람 속에 살아갈 뿐. 그때 이 책을 읽었다. 전에 읽었을 때는 포기했던 책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술술 읽혔고, 이 구절이 내게 다가왔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하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망망대해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진 주인공 파이. 게다가 그의 곁엔 언제 자기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거대한 호랑이가 있다. 파이는 구조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하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갑판에 누워 허송세월을 보내지도 않았다.
파이가 선택한 것은 ‘당장 하는 일’이었다.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파이는 호루라기로 호랑이를 길들이고, 낚시를 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물을 구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파이는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고, 때로는 바다의 멋진 낭만을 경험했다. 끝내는 생존했다.
어쩌면 망망대해에 떨어진 것처럼 정답 없는 삶.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저 멍하니 하루하루 살아갈 텐가. 아니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으로 살아갈 것인가.
다시 썼다. 큰 변화는 없다. 갑자기 친절해지고 웃는 얼굴로 변해 “아저씨가 변한 것 같아요”라고 문구점 오는 아이들이 말하지 않았다. SNS에 올린 글이 대박이 나서 서너 개 출판사에서 만나볼 수 없겠냐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뮤즈가 홀연히 내게 와서 머물기로 작정한 듯, 내가 쓰는 글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생한 시가 되지 않았다.
변한 건 내 마음이다. 쓰기 전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매일 찾아온다. 예전에는 가슴 속 10센티미터까지 파고드는 아픔이었다면, 지금은 2~3센티미터 가량 오면 멈춘다. 글쓰기가 내 영혼을 지켜 주는 방탄조끼 아니었을까.
항상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만 했는데, 쓰다 보니 머릿속의 다양한 기억들이 글로 세상에 탈출시켜주길 외치고 있다. 은행에서 순번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글을 쓴다는 것. 어쩌면 별일 아닐 수 있다. 상전벽해의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거친 세상과 특출한 남에 비해 나는 여전히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글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다.
발밑이 흔들릴 때 본능적으로 두 팔을 벌려 수평을 유지하듯
이 불안의 엄습이 몸을 구부려 쓰게 했다.
글쓰기는 내가 지은 긴급 대피소.
그곳에 잠시 몸을 들이고 힘을 모으고 일어난다.
-박총, <쓰기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