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만났어!"

#26. 친구 / 친구를 만난다는 것

by Philip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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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쌓인 피로를 풀러 제법 큰 사우나에 갔다. 나보다 사우나를 더 즐기는 아들과 함께... 따뜻한 물에 한참 몸을 누이며 신선놀음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 냉탕에서 깔깔 웃고 있었다. 아이 옆엔 생전 처음 보는 아이가 역시 환히 웃고 있었다. 서로 물을 튕기며... 아이에게 달려갔다.


나 : 뭐하고 있어?

아이 : 놀고 있어.

나 : 옆에 애는 누구야?

아이 : 친구.

나 : 친구?

아이 : 응. 친구 만났어. 나랑 나이가 같아.


순간 ‘친구’라는 단어에 놀랐다. 잠깐 내가 아이에게 눈을 돌린 4~5분. 그 시간에 아이는 친구를 만나 친구와 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와는 다르겠지만, 아이는 분명히 친구를 사귀었다. 그 짧은 시간에....


친구?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요즘 같은 세상에 친구를 그렇게 쉽게 만나고 친해지다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하지 않나? 저렇게 빨리 친구를 사귀면 어떻게 하나... 친구는 생각도 비슷해야 하고, 성격도 어느 정도 맞아야 하고, 사는 환경도 닮아야 하고, 심지어는 정치 색깔까지 같아야 하지 않나?


순간 얼마 전 읽었던 뉴스가 생각났다. 요즘 유치원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너네 아빠 집이 몇 평이야?”

“너네 아빠 집 너네 꺼야?”

“너네 아빠 차는 뭐야?”

이 뉴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써 계급을 나누는 아이들과 세상에 작은 분노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서로 물놀이를 하며 웃고 있는 아이와 아이 ‘친구’를 보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애들은 어른들과 다르구나. 애들은 성격, 사는 곳, 아빠의 직업과 집 크기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구나. 그냥 나이가 비슷하고, 같이 놀다보면 친구가 되는구나. 친구를 저렇게 쉽게 사귈 수가 있구나...


문득 내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쉽게 생각나진 않는다. 바쁜 세월 속에서 연락 한 번 하기 쉽지 않다. 40대 중반.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어느샌가 친구를 만들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조차 희미해진다.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겨울 뿐. 스마트폰 연락처를 훑어본다. 맘 편히 연락할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꽤 시간이 지나, 사우나를 나갈 때가 되었다.


나 : 이제 나가자.

아이 : 응. 친구와 인사하고.

나 : 이제 갈게. 안녕.

아이 친구 : 응. 안녕.


아이 손을 잡고 사우나를 나가는데, 아이 친구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린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찾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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