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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n 25. 2022

생일 며칠 간의 일기

생일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에게

몇 해 전부터 생일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날이니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올해도 역시 생일에 뭐하냐고 물으면 '학교서 공부나 해야지' 하고 괜히 더 건조하게 대답했다. 진짜 공부나 하려고 했는데 이런 내 계획과 달리 특별하고 뭉클한 주간을 보냈다.


생일 2주 전쯤 아빠가 별안간 서울에 왔다. 그날 당일 서울로 오겠다는 아빠 전화를 받고 솔직히 짜증부터 났다. (물론 아빠테 티는 안 냈다.) 계획적인 성격 탓에 하루 일정은 물론 주간 일정을 세워두는데, 일정을 전부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빠가 머물 호텔을 급히 예약하고 갈만한 식당을 서치했다. 맘에 드는 곳이 없어서 답답해하다 '아빠는 갑자기 왜 오는 거람' 하고 툴툴댔다. 정말로 왜 오는 걸까 싶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가 온 이유를 알게 됐다.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는 고기를 구우면서 내가 태어난 날 스토리를 신나서 얘기했다. "아빠가 그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해줄게."


그 이야기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닌지 오래됐다. 몇 번이나 들었던 얘긴데도 아빠는 난생처음 전하듯, 재밌는 얘기인 것처럼 얘기한다. 별생각 없이 듣다가 갑자기 낯선 감정이 들었다.  당신의 첫 애를 만난 순간을, 장성한 첫 애에게 전달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기분이길래 이렇게 매년 신나게 얘기할까? 내가 겪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겠지. 왠지 아빠의 사랑이 느껴져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물론 민망함에 대답도 안 하고 열심히 목살을 먹었지만.


6월 21일, 생일 이틀 전


생일 이틀 전 동기모임 겸 생일파티를 했다. 동기모임은 논문 집필의 괴로움을 나눌 목적으로 시작한 건데 그 이상의 것을 얻고 있다. 이번 모임도 그랬다. 내 생일이라고 바쁜 와중에 모인 것도, 케이크를 열심히 주문한 것도, happy birthday 머리띠를 준비한 것도 고마움을 넘어 귀여워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동기들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다가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편하다. 정말 편하다. 그냥 이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따뜻해지고 말 그대로 편안해서 연신 웃어댔다.


20살의 창피했던 이야기부터 어디 가서 못할 얘기들을 했다. 동기들의 기분도 좋아 보였다. 친구가 기분 좋아하는 게 얼마나 좋던지. 내가 좋은 것보다도 그 친구들이 만족해하고 재밌어하는 게 정말로 행복했다. 누가 대학원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는 거야. 그 말을 한 사람은 내 동기들을 못 만나서 그런가 보다.


6월 22일, 생일 전 날


전 날 늦게 잔 탓에 아침이 괴로웠다. 수영장을 옮기고 처음으로 지각했다. 한 달 전의 나였다면 지각한 나를 참을 수 없었을 거다. 이 날의 나는, 지각한 덕에 수영을 덜 해서 체력을 아꼈으니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여러모로 바쁜 일정으로 학교를 총총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연구실에 돌아와 앉았을 때 S가 말을 걸었다. "샘, 아직 안 갔네요." 하더니 민망해하며 무언가를 건넸다. 리본이 달린 USB였다. 몇 달 전 부지불식의 이유로 노트북 하드가 고장났다. 몇 명의 엔지니어를 만났지만 그들은 나의 집필 중인 논문과 분석 자료를 복원하지 못했다. 그 뒤로 나는 USB에 의존해 논문을 쓰고 있다. (MZ세대 답지 않게 드라이브를 쓰는 게 익숙지 않다..) S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선물이 내게는 전혀 약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S는 너무 소소한 선물이라 미안하다면서 내 논문을 응원하는 마음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담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함께 준 쪽지에는 음악은 모두 합법적으로 다운로드한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렇게 귀엽고 감동적일 수가.

S가 준 선물

따뜻한 마음을 가득 안고 이번엔 용산을 향했다.


앞서 체력을 아꼈다고 좋아한 이유는, 이날의 일정이 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랑 소소한 생일맞이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00시 땡 할 때 같이 햅피벌쓰데이! 하고 초를 불 예정이었다.


그 친구는 나랑 생일이 같은, 재밌는 경로로 만난, 벌써 4년 전의 인연이다. 실은 이것을 인연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다. 몇 번 만난 적도 없고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다. 그래서 과연 생일 전날 만나도 될지, 이후에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는지 고민이 많았지만 재밌을 것 같아서 우선을 계획을 잡았다.


2년 만에 만나니 내 예상대로 어색했다. 어떻게 걸어야 할지,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둘 다 허둥댄 것 같다. 그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듯 아마 나 역시 긴장한 게 보였을 거다. 술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나니 조금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뭔가 창피했다.


그래도 호텔이 좋았고 시티뷰가 슬프지만 예뻤다. 용산의 시티뷰를 보고 있자니 용산참사가 떠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불빛에 맘이 좀 아팠다. 내가 이걸 마냥 예쁘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하고 잠시 창 앞에 서있었다.

"난 용산에 올 때마다 마음이 아파."

"왜?"

"용산 참사가 생각나."

"아."

짧은 대화였지만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한 반응에, 그리고 그 얘기를 길게 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호텔의 city view


영화를 보느라 00시 땡 하는 때를 놓쳤지만 15분쯤 늦게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다. 어색한 포옹도 하고 어색하게 침대에 누웠다. 마침 수영 세계 선수권 대회를 하고 있어 한참을 수영 경기를 보다 잠들었다.


6월 23일, 생일 당일


아침 8시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전날 3시가 다 돼서야 잠들었으니 그 전화가 반가울 리 만무했다.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잠에 들었다. 아니 잠이 들기도 전에 또 전화가 왔다. 다시 한번 음소거를 누우고 몸을 돌려 누웠다. 몇 분쯤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하. 정말 아빠! 으.. 안 되겠다. 받아야겠어.",  "응 조용하고 있을게."

우리의 통화 소리가 들릴까봐 음량 버튼을 최소로 누르고 아빠 전화를 받았다. 역시 아빠는 다정하고 자상했다. 아빠가 정말 싫은데, 영원히 싫어하고 싶은데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다. 밉다 그래서.


조식을 먹으면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이렇게 흥미롭다니. 친구의 머리가 예뻐서, 짝짝이 눈이 귀여워서 그 얘기가 더 흥미로웠다. 물론 머리칼은 언어학과 아무 상관없지만.


집에 올 때는 비가 미친 듯이 내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 다들 종종걸음으로 걷다 급기야 뛰어가는데 횡단보도 앞에는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다리 앞에 놓인 통에는 천 원짜리 몇 장이 들어있었다. 내가 그 통을 보자 황급히 돈을 비우더니 날 향해 통을 들고 "도와주세요." 말하셨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어제 잔 방은 얼마였을까? 내가 오늘 먹은 조식은 얼마였을까? 고민하다가 가방을 열었다. 할머니는 더 적극적으로 애걸하기 시작했다. 5만 원짜리 두 장이 있었다. 입금하려고 했는데 까먹고 계속 가방에 넣어둔 돈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유하진 않지만(아니 사실 가난하지. 대학원생이..) 10만 원의 존재를 까먹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었다.

5만 원을 통에 넣었다. 일어날 수 없는 다리로 거의 상체만 일으키면서 "아이구 고맙습니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복 받으세요. 복 받으세요."라고 외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불편했다. 할머니가 싫었다는 게 아니라 죄책감이 더 커졌다. 내가 잊고 있던 5만 원을 드린 것 가지고 이 정도의 감사를 받아도 되는 걸까? 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비는 점점 거세졌지만 우산 쓸 자격도 없이 느껴졌다.


어차피 3,000원짜리 비닐우산을 집에 쌓아두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비를 맞기로 결정했다. 빗물이 눈앞을 가리고 머리가 다 젖어 무거워질 정도로 비를 맞았다. 내가 기후 걱정을 많이 해서 내 생일에 비가 온 걸까? 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오르막길을 걸었다.

집에 도착할 쯤 머리부터 치마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한숨 잔다는 게 두 숨이 돼버렸다. 벌써 저녁 약속 시간이 되어 또다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다. 레인부츠와 함께면 폭풍우도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은 것을 넘어 왠지 의기양양해진다. 나는 웅덩이 밟을 수 있지롱 하고 굳이 웅덩이를 밟으면서 걷는다.


레인부츠가 있었어도 이 비에 몸이 말끔할 수는 없었다. 머리칼도 치마도 그리고 가방도 다 젖어 찝찝한 상태로 식당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숨을 좀 돌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나와 생일이 하루 차이인 친척언니가 기프티콘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늘 생일파티를 같이 하고 서로 축하했던 사인데, 난 올해 처음으로 메시지도 축하도 안 보냈다. 괜히 미안함에 이런저런 말들을 답장으로 보냈는데 언니의 답장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니는 언닌가보다. 철없다고 언니한테 매일 잔소리했는데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의 어린 내가 언니 없었으면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그걸 10년이나 지나서 알다니. 아직도 어리다.


눈물을 닦고 있을 때쯤 동생과 친구가 도착했다.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생일 케이크 초를 불었다. 동생이 주문 제작해온 케이크가 너무 맘에 들어서 진실의 미소가 나왔다. 소리 내서 웃고 사진을 잔뜩 찍었다.


친구의 선물과 편지를 받고는 눈물이 또 찔끔 나왔다. 냅킨으로 눈을 가리고 "나 눈물 나. 너무 행복해." 하면서 훌쩍였지만 T의 인간 내 친구는 별 반응이 없었다. 괜히 눈물바다를 만들지 않아줘서 좋았다.


집에 돌아와 너무 더워 빨가벗고 에어컨을 쐬며 이번 생일을 돌아보고 있었다. 한창 좋았는데 갑자기 샤워중인 동생이 배달음식이 도착했다고 집에  들여달란다. 어휴. 하면서 현관문을   하나만 오고  정도로 열어 바깥을 살폈는데 배달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뭐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로 꽃다발이  들어왔다. 깜짝 놀라 문을 닫아버렸다.  지금 Naked인데!


알고 보니  수영스승이자 친구가 동생과 깜짝파티를 준비한 것이었다. 사실 남수친까지도 같이 준비했는데 일정이 확실치 않아 그냥 혼자 왔다고 한다. 화성에서 여기로  생각을  남수친에게도 감동이고,  비에 선물과 케이크, 꽃까지 들고 와준 친구에게도  감동을 느꼈다.


친구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걸 아는데도 보내고 싶지 않아 괜히 얘기를 더 늘어놨다. 오랜만에 둘이 집에 앉아 있으니 너무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친구를 보냈다. 괜히 미안해서 IM택시를 잡아줬다.



침대에 누워 친구가 사 온 꽃을 보면서 올해의 생일을 돌아봤다. 기프티콘으로 책, 피자, 떡볶이를 많이 받았는데 나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인 것 같아서 왠지 웃기고 귀여웠다. 그리고 그 선물을 준 친구들이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날 생각한다는 것에 가슴 깊이 감사했다.



생일인 걸 알면서 연락을 안 한 친구도 있다. 그 친구와 이렇게 사이가 서서히 멀어진 게 속상했다. 아니 속상보다는 짜증과 서운함이 컸다. 내가 그 친구한테 얼마나 노력했는데, 너도 그거 다 알고 있고 그걸로 늘 미안해했으면서-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 친구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생각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해주고 챙겨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훨씬 크기 때문에 서운함에 매몰돼있는 것은 바보같은,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일은 기대와 달리 가슴 깊이 사랑과 감사를 채웠다. 친구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거라고 말하지만 겸양 떠는 것이 아니라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축하메시지마다 이렇게 엉망진창의 인간을 사랑해주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난 정말 딱히 좋은 인간이 아닌데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다니. 더 잘 살아야지. 로또 당첨돼도 부동산 투기같은 거 안 하고 베풀면서, 주변 사람들 사랑해주고 품어주면서 살아야지. 편안한 사람이 돼야지.



한 문장 정리: 알록달록 생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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