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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Aug 05. 2022

Be kind, for everyone

다들 힘드니까

어제 아침 늦잠을 잤다. 상담이 9시였는데 8시 54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급히 씻고 더러운 방을 대강 정리했다. 물 두 모금 삼키고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아뿔싸 9시네. 급히 줌을 켰다. 9시 2분, 상담을 시작했다.


벌써 14번째 시간이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학습효율과 집중력이 낮아 시작한 학습상담이다. 여러 검사를 마치고 학습 유형보다는 심리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판단되어 심리상담으로 전환되었다. 


이 상담은 세 번째 개인 심리상담이다. 물론 학부 시절 실습으로 상담받고 일지 쓰기 이런 것들은 해봤지만 자발적인 의도로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받은 상담으로서는 세 번째다. (물론 지금 상담은 교내 상담센터에서 받고 있어서 무료! yay) 

세 번째 상담이라는 말을 구태여 하는 이유는 상담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과정인지 알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상담은 그냥 내 고민을 얘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몰랐던 나의 상처를,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뒷모습을 제대로 살펴보고 나의 경험을 재구조화하는 작업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이 늘 아프고 힘들어서 중간에 상담을 포기한 적도 있고 온갖 방어기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상담은 달랐다. 내 안의 명확한 목표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해두고 시작한 게 아니라 부담이 덜했다. 표면에 드러난 어려움들을 되짚다 보니 근본적인 이슈가 드러나 서서히 해결점을 찾아가며 내 경험과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을 반추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너무 절실했다는 게 상담을 이어나가는 중요한 힘이었다. 이번만큼은 피하지 않아야지. 이제 진짜 해결해야지. '잘' 살고 싶다. 이런 마음. 


어제가 종결 전 마지막 상담이었는데 선생님 역시 그 점을 짚어 칭찬했다. "연정씨 참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힘들었을텐데도 회피하지 않고, 돈도 없었을텐데 상담도 받고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너무 열심히 살았다. 왠지 제 맘이 너무 아프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렸다.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사실 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나도 눈물이 흐르려는 걸 꾹꾹 참으면서 나름 태연하게 문장을 이어갔다. 선생님은 내 마지막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눈물이, 말이 참 따뜻했다. 선생님 말처럼 상담을 받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었다. 특히 25살 직장 다니면서 상담받을 때는 진짜 힘들었다. 6시에 칼퇴해야만 상담에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고 상담실이 직장과 거의 한 시간 거리였다. 사회초년생의 서울살이가 안 그래도 힘든데, 거기에다 매주 나가는 몇만 원의 상담비는 당시 나에겐 꽤 부담스러운 돈이었다. 5시에 회의가 잡힐 때면 '나 상담가야 되는데 언제 끝나지' 하면서 발 동동거리던 게 생각난다. 저녁도 못 먹었는데 상담을 받고 나면 밥 먹을 힘도 없어서 도림천에 혼자 앉아 울다가 집에 돌아가기도 했다. 

이상하게 이번 상담을 종결하는데 그때가 생각났다. '아 나는 열심히 살았구나. 나 이미 잘 살고 있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구나'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말은 플라톤의 명언이었다. "Be nice,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라. 그들은 이미 저마다의 싸움을 하고 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세상 행복한 사람인 줄만 안다. 내가 봐도 나는, 겉보기에는 '갓생'사는 신자유주의 키드 그 자체라 사람들은 내가 하루하루 열심히, 즐겁게 사는 사람인 줄 안다. 하지만 진짜 나는 이렇게 고민하고 고군분투 아등바등 살고 있다. '내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힘들겠지. 특히 공격적이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아파서 그러는 거겠지. 그러니 사람들에게 친절해야겠다. 잘해줘야겠다. 특히 아픔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지 말아야겠다.' 이런 다짐을 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이 말을 했더니 선생님이 또 울었다.

"연정씨는 정말 마음이 큰 사람이에요. 사려 깊고 정도 많고요. 그렇게 힘든데 주변 사람 다 생각하고 동생까지 챙기면서 사네요." 

"교회에서 잘못 배운 습관이에요."

괜히 민망해서 웃으며 농담을 했다. 상담 종결 신호 중에 하나가 내담자의 유머 감각이 늘어나는 것인데 이제 나도 종결할 준비가 됐나 보다. 


한 문장 정리: 이제 내 인생의 목표는 Be nice, for ever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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