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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n 16. 2022

어쨌든 사랑스러운 사람

그 말이 충분하진 않지만,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만나는 사랑스러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끼는 알록달록한 분위기. 그리고 그 느낌은 그날 하루를 보내는 동안 종종 떠오른다. 괜히 기분도 좋아진다.


오늘 그런 사람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순간을 만났다. 이미 여러 번 만난 사람이고 꽤 자주 연락해온 친군데 오늘 어떤 순간에 사랑스러우면서도 참 예뻐 보였다. 사실 내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냥 사랑스럽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뭉툭한 느낌이고, 그 친구의 단단함과 다부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된 날이었다. 누가 바쁜 것을 좋아하겠냐만은 요새 너무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서 바쁜 게 서러울 지경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도와줄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일하려면 식사시간도 맞춰야 하고 중간중간 스몰톡도 해야 할테니 아주 약간의 긴장을 준비한 상태였다.


우선 연구소에서 만나 투두 리스트를 정리하고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식당을 고르라는 말에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자신이 가고 싶은 식당과 그 이유를 간결하게 조금은 어려워하면서 말했다.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무 거나 다 좋아요."처럼 말하는 사람은 재미없으니까.


식당에서 시시콜콜한 근황 얘기, 학교 얘기, 교수님들 얘기를 하면서 각자의 음식을 먹었다. 내가 말을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은데도 남은 음식의 양은 그 친구의 것이 더 많았다. 난 말하면서도 빠르게 먹었나보다. 나는 단 둘이 밥을 먹을 때는 무엇보다 식사 속도를 맞추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의 속도를 보면서 밥을 먹는데도, 우리의 속도가 꽤나 달랐다.


내가 자신의 트레이를 살피면서 천천히 조금씩 먹는 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무런 부사를 붙일 필요가 없이 정말 딱 저렇게 말을 했다. 멋쩍어하거나 미안해하지도 않았고 민망해하는 태도도 아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였다면 아마 조금은 민망해하며 말했을텐데 조심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부탁했다.


"밥을 천천히 먹나봐요." 라는 말에 "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이 기다려줘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이 갑자기 귀여워보였다. 부탁을 어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거리낌 없는 저 태도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당당함, 여유, 자신있는 이런 말들을 떠올렸다가 이게 아닌 것 같아서 지웠다. 그리고 턱을 괴고 고민했다. 그냥 '편안함'이 맞는 것 같다. 죄스러움부터 당당함까지를 스펙트럼으로 두고 본다면 딱 그 중간에 있는 태도였다. 딱히 그 부탁하는 모습이 저자세에 민망함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해서 당차고 야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편안해 보여서 나도 편안했다. 그 친구의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마 기다려달라는 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화 내내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들을 겸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그 공부를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드러나는 그 미소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낀 것 같다.


참 예쁘고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대단한 인연도 아니고 몇 년이 지나면 연락도 안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친구를 만나서 오늘 하루는 사랑스러웠다.  



 문장 정리: 사랑스러움이란 말로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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