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글을 써왔다. 여러 종류의 일기를 한 번에 쓰기도 했고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도 좋아했다. 성인이 돼서도 쭉 글을 써왔다. 힘들 땐 글을 썼고 글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한테 위로를 받기도, 나를 달래기도 했다. 나에게도 안네의 '키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쓰는 게 무섭고 너무 힘든 일이 됐다. 졸업논문을 쓰면서 키보드에 얹은 손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단어를 고를 때마다 확신이 서지 않아 온갖 용례를 찾아보게 됐다. 글 쓰는 게 고역이었다. 사실 아직도 그렇다.
그래서 다시 편안한 글을 쓰기로 했다. 다시 편안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시작한 밤, 이것저것 찾아보다 브런치를 둘러보았다. 몇 해 전부터 익히 들어왔고 나도 가끔 들락날락하던 곳이긴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쓰는 게 익숙지 않아 브런치를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브런치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곧바로 가입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내가 다시 읽고 싶은 글을 편안하게 쓰고 싶다. 논문처럼 쥐어짜고 누군가-무언가를 비판하고 명명백백한 논리가 없이는 완성할 수 없는 글 말고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다. 논문도 나의 일부겠지만 퍽퍽한 글쓰기는 지난 2년간 충분히 많이 했으니 이제 됐다.
편안한 글을 오픈된 플랫폼에서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별 거 없다.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이 누구에게라도 재미든 공감이든 위로든 된다면 나한테도 그런 것들이 되겠지 싶다.
그런 글을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을 처음 사용할 때는 글 위주로 썼는데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계기로 내 계정이 나르시시즘 컨셉의 공간으로 변하면서 글을 쓰는 게 민망해졌다. 메시지를 던지는 일과 공부를 하다 보니 거기서 벗어나는 또 다른 내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지금도 종종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올리지만 이내 민망함에 지우곤 한다. 그래서 지우지 않을 플랫폼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무슨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브런치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았고 '닥눈삼'도 없이 글부터 써재끼고 있어서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 문장 정리: 아무튼 다시 편안한 글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