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이라는 철저한 속임수
매일 같이 듣는 외모 이야기
"머리 기를까, 자를까?"
"아 오늘까지만 먹어야지 진짜. 너무 살쪘어."
“이렇게 입으면 뚱뚱해 보이려나"
“넌 아이라인 연하게 그린 게 나아.”
“나 보톡스 맞았다! 어때?”
하루에도 몇 번씩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에게 하는 말, 자기 자신에 대한 말, 칭찬, 걱정, 지적, 자랑, 고민 등 그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모두 같다. 예뻐지고 싶다. 아니, 예뻐야 한다.
우리는 예뻐지고 싶어 한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예쁘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고 속상해하고 누군가를 시기한다. 러네이 엥겔른은 이것을 외모강박(Beauty sickness)이라고 정의한다.
외모강박 문화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픈 일이다. 외모강박을 경험하는 여성은 섭식장애, 성형수술, 다이어트 부작용 등으로 겪는 물리적인 아픔부터 자기혐오, 우울감, 불안, 창피함 등 심리적 아픔을 겪는다. 이에 더해 외모 강박 때문에 생기는 여러 관계에 대한 문제들은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외모관리와 자기만족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고 도달할 수 없는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통을 감내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기만족’을 위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더 예뻐진 모습을 보면 스스로 만족해한다. 만족을 위한 일이 맞다. 하지만 그저 ‘자기만족’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여성의 외모 관리는 분명히 불가피한 압력의 결과다.
러네이 엥겔른은 다음의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를 외모강박 문화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달'이란 유형, 무형의 형태를 갖는다. 즉 의도를 갖지 않았더라도, 직접 말하지 않았더라도 다음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뜻이다.
1) 외모는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다.
2) 특정 형태의 외향이 아름다운 것이다.
3) 당신은 그 형태의 외모를 갖지 못했다.
외모강박의 메시지에 수없이 노출된 우리는 예쁜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여성이 스스로를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엇에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어트나 성형 시술을 받는 것, 해외여행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것, 중요한 모임을 앞두고 옷이나 가방에 큰 지출을 하는 것 모두 흔한 일이다.
러네이 엥겔른은 자신의 책에서 학생들의 단체 해외봉사를 앞두고 준비되었느냐고 묻자, 많은 여학생이 '살을 빼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되지 못했다고 응답한 것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고 쓴다.
외모관리를 위해 경제적, 신체적, 시간적, 심리적 아픔을 '겪어내는' 여성들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의 행동에 두드러지는 경향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 행동-사건을 사회구조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즉 여성의 외모 관리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깊이 살펴보면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여성은 외모강박 사회가 던지는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억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모관리를 진실로 '자기만족'을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한 만족일까
나는 나의 친구들이 외모강박에 괴로워하면서도 ‘자기만족’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때로는 과도한) 외모 관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마다 의아했다.
시술을 받느라 돈을 하나도 모으지 못했는데, 뚱뚱해 보일까 봐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고르지 못하는데, 그날의 화장이 맘에 들지 않아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고 거울을 놓지 못하는데 정말로 만족한다면 무엇을 위한 어떤 만족인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말하는 그 ‘만족’의 기준은 오직 외모에 맞춰져 있다. 경제적 이득, 신체적 건강, 삶의 풍요와 교환하면서 외모 만족을 얻고자 애쓴다. 원하는 외모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이 너무 많다.
한 달 뒤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앞두고 면역력을 높이고 체력을 늘리려고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영양제를 먹다가 22살의 내가 떠올랐다. 유럽여행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방울토마토 개수를 세어가며 먹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 역시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예뻐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조금도 불행하거나 괴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지금이 더 편안하고 즐겁다. 여행을 앞두고 방울토마토 개수나 세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지긋지긋한 기분이다. 평생 외모강박에 시달렸을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놓쳤을까 싶어 안타까운 맘이 든다.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아름다움, 외모는 조금도 문제가 아니다. 아름다움이, 외모를 관리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위에서 말한 세 가지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문화가 나쁘며,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다 못해 '자기만족'이라는 쉬운 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유해하다.
나는 외모강박에 시달리는 여성을 보면 너무 힘들다. 그 친구가 너무 안타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도 외모강박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지금도 예쁘고 싶고 영원히 날씬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 생각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다시 외모강박증을 겪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다이어트, 성형, 화장 등의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이 글은, 그 불편한 맘을 정리하고자 쓰는 글이다.
나는 모든 여성의 일상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몸을 나노단위로 분석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만 외모 강박을 경험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여성의 외모는 남성의 것보다 더, 자주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여성과 남성의 화장품 상품 수만 봐도, 화장품 광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외모는 그녀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즉 압도적으로 여성의 문제다. 이 글의 목적이 외모강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지면을 활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