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유
어젯밤,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어제 읽던 책은 2019년에 읽은 책인데 조금도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 80p 쯤을 읽다가 깜짝 놀라버렸다. 내가 최근에 쓴 글의 한 문장과 거의 비슷한 문장이 책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읽기란 나를 만드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내가 먹은 음식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내 몸의 일부를 이루고 있듯, 내가 읽은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소설, 에세이, 전공서적, 이론서, 시집, 저널까지. 내가 읽은 글들이 나의 가치관을 만들고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나는 2019년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쓰는 이유
작년 5월이었던가. 브런치를 시작했다. 수영복 차림의 사진은 아무에게나 잘 보여주면서도 왠지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내가 공개적인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꽤나 큰 다짐이었다. 그리고 브런치 링크를 나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설정하는 것에는 몇 번의 번복이 있을 만큼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이런 내가 브런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을 줄곧 써왔다. 한글파일, 일기장, 휴대폰 메모장, 눈에 보이는 종이. 거의 글을 깨우치고부터는 죽 글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쓴 글들을 다 기억할리 만무하다. 예전의 나의 글을 읽다 보면 다종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뿌듯함, 안쓰러움, 미안함, 재미, 귀여움, 애석함 등 글에 따라,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르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다 보면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조금은 애틋하게 보게 된다. 나의 글을 읽으면서 마냥 후회스러웠던 일들도 그 당시 나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한다. 후회와 자책으로 긴 밤 내내 괴로워하던 나를 불쌍히 여기고 위로한다. 불과 몇 달 전의 나인데 마치 큰 언니가 막냇동생을 대하는 것 같은 맘이 생긴다.
브런치에 글을 쓴 뒤로, 내 글을 읽은 친구를 대할 때의 맘이 달라진다. 나를 조금 더 내보인 것 같아 편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속 나 보다 본래의 나에 더 가까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긴장하면서도 내심 읽어주고 알아주길 바라는 것을 보면 인스타그램의 나보다 브런치의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