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머릿속에 주입된 기본생활, 즉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는 요소들의 순서. 중요도 순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매체에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의식주(衣食住)라고. 모두가 알다시피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즉 "입고(衣)", "먹고(食)", "자는 행위, 장소(住)"를 의미한다. 이는 각각 옷, 음식, 그리고 주거를 가리키며,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왜 의, 식, 주 순서일까? 인류 초창기, 그러니까 원시 시대에는 모두가 벗고 살았고 목숨을 연명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먹거리 확보 외에는 다른 요소를 생각하거나 중요성을 부여할 여지가 적었다는 점에서 식(食)이 앞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의(衣) 부분은 그저 추위, 더위를 막기 위해 걸치는 정도, 그리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이나 가림막에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면 주(住) 시설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르기에.
먼 시절에는 아마도 먹고살고 차려입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나 문화가 특별하게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느 정도 인간들이 모여 살게 되고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면서 발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지역별 특성에 따른 중요도에 따라 순서가 매겨지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즉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 의미가 넓어졌고, 이러한 기본 요소들은 인간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아마도 세 가지 요소의 순서를 말하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와 이웃 중국, 그리고 서양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입고 먹고 거주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영어권에서는 ‘food, clothing and shelter’로 먹는 게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도 고려해보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입지 않고는 어지간히 버틸 수 있지만 먹지 않고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 되는 경우가 아닌가? 중요도로 순서를 전한 것이라면 말이시...
하튼 오늘 이야기는 이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먹는다’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니 이게 도대체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지 한번 알아보자. 단언컨대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망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인사할 때 :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 먹었는가?
- 고마울 때 :나중에 식사 한번 하시지요.
- 안부 물어볼 때 : 밥은 먹고 댕기냐?
- 아픈 사람에게 : 밥은 꼭 챙겨 먹으렴
- 노력한 일이 잘못될 때 :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
- 마음에 들지 않을 때 : 저 쉐이 진짜 밥맛 없어.
- 한심할 때 : 저래 가지곤 밥은 얻어먹겠어?
- 제대로 해내기를 바랄 때 : 사람이 밥값은 해야지.
- 좋은 사이가 아닐 때 : 그놈하고는 같이 밥 먹기도 싫어
- 나쁜 짓을 할 때 : 너 그러다가 콩밥 먹는다.
- 잘 알아듣지 못할 때 : 야 이 밥통아!
-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할 때 :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
- 어떤 일을 말리고자 할 때 : 그게 밥 먹여주냐?
- 정 떨어지는 일을 할 때 : 밥맛 떨어지는구먼.
- 비꼬는 표현 : 밥만 잘 처먹드만.
- 그 사람이 마음에 들 때: 밥 잘 사주는 분이야.
- 먹어야 힘을 내지 : 밥심으로 일하는 것이여
-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표현, 낮은 대우 : 찬밥 신세야
- 맛깔나는 부식을 말할 때 : 밥도둑
-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 : 눈칫밥
- 답변 소리가 약할 때 : 밥 안 먹고 왔냐?
- 하는 짓이 한심하다 싶을 때 :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 조심해야 하는 경우 :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 매우 바쁜 상황을 말할 때 : 밥 먹을 틈도 없다
- 가정(기본) 교육을 말할 때 : 밥상머리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겨
- 소득 수단 : 밥줄, 밥벌이
- 작별 인사 : 언제 밥 한번 먹지요.
- 경력 및 경험의 길이 : 짬밥
- 가족 또는 같이 생활하는 동료 : 한솥밥을 먹는 사이
- 의욕(식욕)이 없다 : 밥맛이 없다.
-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 밥값을 못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의(衣), 주(住)보다 식(食)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걸 보면 우리나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앞자리에 두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특정한 행위에 대해서 이처럼 적절하게 대변할 수 있는 단어가 많은 예는 찾아보기 힘드는 것을 보면 ‘밥’이 얼마나 우리 삶과 가까이 있고 밀접한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다음에 시간 나면 ‘입는 것’(옷이 날개다. 째 내다가 얼어 죽는다. 등)과 ‘거주하는(住)’(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 집도 절도 없다. 되는 집에는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 등) 것에 대해서도 적어보기로 하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