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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by 청천

忠臣

"바른말하려다가 죽은 충신"

세상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옳음과 그름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른말하려다가 죽은 충신"이라는 제목이 주는 울림은 우리에게 역사의 한 장면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역사 속 충신은 누구인가? 흔히 생각나는 이름은 조선의 死六臣(사육신) 일 것이다. 단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은 '충(忠)'의 본질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충의 실천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이들의 외침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왜 사람들은 바른말을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가? 이는 권력이란 것이 항상 진실과 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은 그 자체로 안정과 지속성을 원하며, 이는 때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렇기에 바른말은 권력에 있어 하나의 위협이 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진실은 그들의 허상을 부수는 망치와도 같다. 충신은 그 망치를 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종종 죽음이다.


바른말은 단지 말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이고 신념이다. 잘못된 권력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진실의 선언이다. 바른말을 한다는 것은 종종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희생은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씨앗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현대 사회에서도 바른말을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사회의 구조는 바른말을 억누르고, 고립시키며, 때로는 처벌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온라인 공간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소외당하며, 심지어 법적, 사회적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은 역사 속 충신의 현대적 구현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등불과도 같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 당장은 약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결국 빛을 발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바른말하려다가 죽은 충신"이라는 말은 단지 과거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를 향한 경고이자 희망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바른말을 외치는 것이 더 이상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실이 억압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들이 흘린 피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다.

ㅎㅎ 나는 지금까지 “바른말하려다가 죽은 충신”이라는 제목으로 일반적인 글 한 편을 적어보았다. 그러나 여기에 적은 글의 제목은 인터넷에서 이 사진과 함께 게재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체중계.png

몸무게를 측정한 다음 측정된 수치를 숫자로 보여주는 체중계, 그러나 표면이 깨져 버린 체중계... 설마 수치를 보여주는 화면에 나타난 숫자를 보고 격분한 주인공께서 그만 화를 참지 못해 ‘깨버린’, 그래서 생명을 다하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슷하게는 연말까지 앞자리 숫자를 바꾸기 위해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쉴 것 쉬지 못하고 열심히 체중을 조절해 가는 나를 아침마다 배신하는 체중계... 나도 망치를 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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