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2
이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게 두 번째이다. 이제는 하루일과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그러면서 요령이나 몰아치기 수법도 어느 정도 터득하게 된 업무인 설거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불청객 같은 일이다. 초대도 않았는데, 어느새 거실에 앉아 발을 털고 있는 그런 손님. 나는 그걸 상당한 횟수로 버텨보다가 결국엔 수세미를 들고 항복 선언을 한다. 뭐,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힘든 일은 피해 간다고 하여 그게 내 인생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식사를 마치고 "좀 쉬었다 하자"며 소파에 앉는 순간, 개수대 그릇들이 나를 노려본다. 그건 그야말로 무언의 폭력이다. 말은 안 하지만, 느낌은 확실하다. ‘나 언제 씻겨줄 거야?’ 하고. 처음엔 버텨보기도 한다.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시작한다. 뉴스 몇 꼭지 들여다 보고 골프장 소식을 둘러보는데, 수북이 쌓인 고넘들이 나를 불러내고 만다.
“그래, 알겠어. 간다 가!”
수도꼭지를 틀고, 차가운 물이 손등을 감싸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진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그릇을 문지르다 보면, 그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명상처럼 느껴진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싫어했지?"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면, 슬슬 재미있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그릇을 헹구며 내 마음도 헹구는 것 같다. 기름때가 벗겨질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릇이 반짝이면 괜히 내 인생도 조금 반짝이는 기분?
물론, 이건 다 끝냈을 때 이야기다. 하는 동안은 여전히 “내가 왜 이걸 혼자 하고 있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 빠져들기도 한다.
가장 뿌듯한 건, 설거지를 다 끝내고 나서 싱크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다. 한 편의 전쟁을 끝낸 장군처럼 뿌듯하다. 한편으론 그릇한테 미안하다. “그래, 오늘은 내가 좀 심했다. 내일은 바로바로 씻을게.” 하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내일이면 흐려진다. 결국, 설거지는 인생처럼 정답이 없다. 귀찮고, 하기 싫고, 자꾸 미루고…
이제는 조금 要領(요령: 경험으로 터득한 일을 하는 묘한 이치)도 생기고 적당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깨친 바 지난 일 년처럼 힘이 많이 든다거나 설거지 때문에 내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는 상당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니 나는 그 방법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해결하고 있다. 즉 아침 식사 후 설거지는 최대한 그릇 숫자를 덜 사용한 후에 점심 식사 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 (점심 식사를 한 경우는 준서가 퇴근하고 나서 확인을 하는 터라 반드시 해야 한다.)
저녁식사는 준서도 같이 하는데 먹는 시간이 길고 가끔 TV 본다는 구실로 앉은자리에서 엉덩이 붙이고 미적거리는바 나는 그 기회를 이용,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한 다음 그분께서 설거지 마칠 때까지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일주일에 한두 번을 넘으면 들키니까 조심하는 편.
내일도 아마 나는 설거지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수세미 하나로 인생을 조금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설거지 앞에서 나는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다. 내가 먹은 것 내가 정리한다는 고상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자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