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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글을 쓸까?

by 보나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그 시작은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로 돌아간다. 회사에 입사하여 3년 차쯤 되었을 때부터였을까. 마음이 답답하거나 선임이 시킨 일이 뭔지 잘 모를 때,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 때 그냥 메모장을 켜서 글을 썼다. 글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일기장에 가까웠다. 단순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는 용도로.


다른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그날그날의 날짜를 적어 메모장에 나만의 낙서를 남겼다. 감정을 분출하는 용도로 꽤 효과가 있었는지 힘들고 지루하고 우울하다고 생각했던 직장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노트북을 반납하면서 안에 있던 DATA 들은 모두 삭제되었겠지만 내 기억 한 편에 '분노의 타자'를 치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를 괴롭히는 사수가 너무 힘들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을 자꾸 시키는 그녀가 거대한 돌덩이처럼 다가왔다. 성적에 맞추어 진학한 대학,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서 좋아하는 교양 수업 등을 들으며 간신히 학점을 메꿨다. 그렇게 메꾼 성실한 학점과 피나는 스펙 쌓기 활동, 주변의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취뽀에 성공했다. 기뻤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내가 입사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미 입사 때부터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회사에서 갓 입사한 새내기 신입사원에게 기대하는 건 전공실력이 아니라 자신감 있는 태도와 배우려는 자세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자신이 없는 채로 교육을 받았다. 배치된 부서에서도 '난 잘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마음을 깔고 회사를 다녔다. '딱 3년만 버티자.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 따위는 찾지 못했다. 조금 관심이 가는 일들은 있었지만 금방 시들해졌다. 그 어려웠던 시절 내가 꾸준히 했던 일이 단 한 가지 있다. 바로 퇴근 후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성격상 사람을 자주 만나면 에너지를 빼앗겨서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퇴근 후 서점에 가서 매대에 있는 책들 중 손이 가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그러고 나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그렇게 '분노의 메모장 일기 쓰기'와 '서점가기'를 하며 힘든 시절을 버텨냈다. 그리고 중간 직급 시절, 그나마 나와 맞는 부서로 전배를 가게 되었고 그 부서에서 지금까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인생은, 회사를 다니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요,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해서 힘들기만 한 건 더더욱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은 힘들 때와 덜 힘들 때가 공존한다.


그 곡선의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다들 살아간다.




두 번째로 글을 쓴 건, 결혼 후 어떤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글쓰기 모임에서였다. 그 모임을 통해 100일 동안 글쓰기를 했었고 문우들과도 만나 좋은 시절,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30대 초반이었던 그 시절이 아직 영글지 못했었다. 그래서 함께하는 문우들에게 충분히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건 후회로 남아있다.


그래도 꽤 오래 지속되었던 그 모임을 통해, 글쓰기의 기본과 마음자세를 배웠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모임을 잊고 지내며, 회사와 가정과 육아에 몰두했다. 30대 중반부터 5년간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나의 모든 걸 불태웠던 시기였다. 회사면 회사, 가정이면 가정, 육아면 육아 모든 걸 잘 해내야 했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자만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 한 구석에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었고 열망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글을 쓴 건,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이다.

내 마음속 열망은 '브런치 작가되기'라는 모임에 들어가게 만들었고 그 모임을 통해 브런치 작가로의 꿈을 이뤘다. 사실 예전에도 몇 번 브런치 작가 지원하기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이번에는 그 모임을 통해 작가 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에 대한 이유를 찾기보다, 나는 글과 떼려 해도 뗄 수 없이 자석처럼 끌리는 운명이라고 말해야 맞겠다.


글이 있어서 내가 살고, 내가 살아 있기에 글을 쓴다.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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