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은 도피가 아니었다 : 엄마 성장기
"선배님, 육아휴직 하면 뭐해요? 안 심심해요?"
어느 날 회사 후배가 물어왔다. 육아휴직을 하면 심심할 텐데 무얼 하느냐고.
본인도 결혼을 했고 곧 육아휴직을 하게 될 텐데 심심할까 봐 매우 걱정하는 눈치였다.
"심심하긴! 애 키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심심할 틈도 없어.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입히고... 그러다 보면 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아."
"아, 그런가요?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보며 나도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육아휴직을 하면 나의 인생이 새롭게 펼쳐질 거라 꿈꿨던 그 시절을. 그 꿈과 희망의 나라였던 시절을.
첫째를 임신하고 육아휴직을 했던 시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출산휴가+육아휴직이다.
임신과 동시에 이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이 오겠구나, 나에게도 다른 인생이 펼쳐지겠구나, 하면서 기대를 했던 때가 사실 나도 있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후배처럼, 나도 육아휴직이 당연히 편하게 쉬며 아이를 키우며 나의 제2의 인생 설계도 할 수 있는 그런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나의 모든 몸과 마음을 아이에게 빼앗겼고, 나의 세상은 모두 아이의 세상이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에게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상태로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백일 간은 그것이 기쁨이었다. 아이가 젖을 빨고, 눈을 뜨고, 미소를 지으며, 옹알이도 하고, 이유식을 먹기도 하고, 잡고 서고, 아장아장 걷기까지!
한 생명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경이로웠고 행복했다. 나에게로부터 나온 아이가 이렇게 예쁘고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니. 이렇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니!
이대로 사는 것이 행복하고 회사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마음은 회사를 떠나 있었다. ‘그 날‘만을 기다리며 출산휴가 한달을 남기고는 매일 웃고 다녔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가 아이 키우는 엄마로 눌러앉아야지, 나는 회사일 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적성이 맞는 것 같으니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를 힘들게 하는 이 회사는 빠이빠이다 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적성일 거라 생각했던 육아는 나를 종종 화나게 했다. 맘카페에서 열심히 찾은 육아 정보들은 내 아이에게 맞지 않았고, 아이는 하정훈 의사 선생님께서 쓰신 "삐뽀삐뽀 119"의 발달 단계 그대로 순순히 자라주지 않았다.
한 번에 120ml를 먹어야 하는 시기임에도 나의 아이는 80ml를 여러 번 나누어서 먹었고, 수유텀이 4시간은 되어야 할 시기에도 2시간 30분~3시간이었다. 백일의 기적이 와야 하는 시기에 통잠 자는 것도 오래 걸렸다.
매뉴얼대로 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정규과정만 밟고 자라온 내가 교과서에도 없는, 배우지도 않은 아이의 육아를 알음알을 물어하려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매뉴얼도 없고 아이는 따라주지도 않는!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가뜩이나 불안이 많은 나는 사실 괴로웠다.
돌 때면 걸어야 하는데 왜 내 아이는 아직 못 걷지?
남들은 쪽쪽이를 24개월에는 끊었다는데 왜 우리 아이는 36개월인데도 쪽쪽이가 있어야 잠을 자지?
우리 아이는 왜 몸무게가 잘 안늘까? 이가 왜 이렇게 늦게 날까?
여러 가지 걱정들로 매월 개월 수가 늘어날 때마다 맘카페와 인터넷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찾아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교를 해 보아도 나의 아이는 느림이 틀림없었다.
영유아 검진에서 대근육 발달이 느려서 '추적 관찰 요망'이라는 문구를 받았을 때는, 엄마인 내가 너무 내 아이를 느리다고 생각하고 평가를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나 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퇴사를 고민했던 나는 점점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만 함을 몸과 맘으로 느끼고 있었다.
1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나는 걱정이 많고 불안이 많은 엄마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아이를 키우며 모든 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다.
계속 집에서 전업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항상 주변과 내 아이를 비교하면서 아이에 몰입되어 '애를 잡을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님으로써 나의 에너지가 분산되고 회사 ON-OFF, 육아 ON-OFF의 스위치를 가지고 생활하면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니 그 선택은 옳았다.. 고 생각한다.
육아는 내 생각대로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일 뿐, 내가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육아휴직은 퇴사를 하기 위한 나의 도피처가 아니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을 뿐. 나는 나의 적성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