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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Nov 29. 2024

버럭맘이 된 애둘맘

부부 공동 육아구역


"응에~ 응에~"

딸입니다. 2020년 3월 중순. 그날은 내가 애 하나 맘에서 애 둘 맘이 된 날이었다.

아이를 한 명 키우는 일과 두 명을 키우는 일은 천지차이다. 그리고 부부가 웬수에서 동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그런 시기이기도 하다. 한 명씩 맡아 전우애를 키울 수 있는 시기. 그래서 나는 아이 한 명보다는 두 명을 추천한다!




1. 잠자리 독서 이야기

첫째의 육아를 하며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잠자리 독서’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기보다는 책 자체를 좋아했던 거 같다. 엄마가 계몽사를 다니시며 책 영업을 하셨던 것도 한몫을 할 거라 생각한다. 책이 마냥 좋아서 도서관 사서를 해볼까, 독립 서점을 운영해 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 영향으로 내 아이 또한 책에 친숙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마침 그 무렵 읽었던 육아서들 중에서 자기 전 잠자리 독서가 아이에게 좋다는 내용이 나온 책이 있었다. 잠자리 독서를 습관화하여 아이가 책이 없으면 잠을 자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했다.


원래도 잠자리 독서를 띄엄띄엄하고 있었지만 임신 휴직 후 보다 집중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엄마표 영어 책도 여러 권 읽었었는데 일단 잠자리 독서가 되어야 그다음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배가 나온 상태이니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거 보단, 누운 채로 책을 들고 읽어주는 게 편했다. 아이는 내 옆에 누워 책의 그림과 내용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어떤 날은 5권을 읽은 적도 있고 어떤 날은 1권을 읽은 적도 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읽었다. 뱃속의 둘째도 아마 이때 열심히 듣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13개월에 문장으로 말을 하고 지금도 엄청난 언어구사력을 가지고 있다)




2. 둘째 육아 시작

그렇게 독서에 집중하며 뱃속의 둘째도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의 출산예정일이 다가왔고, 둘째는 빨리 나온다는데 생각보다 빨리 신호가 왔다. 해외출장을 갔다 출산예정일에 맞춰 복귀하기로 돼있던 남편은 결국 둘째의 출산을 지켜보지 못했다. 친정엄마와 출산을 했고 3시간 만에 생각보다 쉽게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시작된 아이 둘 육아. 신생아와 4살짜리를 함께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엄마바라기였던 첫째는 신생아를 처음에는 신기해했지만, 동생의 침대에 들어가기도 하고 질투를 시작했다. 동생을 직접 해코지 한건 아니지만 엄마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그나마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낮 시간 동안에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먹성이 좋아 내가 해주는 이유식을 꿀떡꿀떡 먹어치웠다. 젖병도 6개월 정도부터 혼자 잡고 먹었고 이유식 시기에는 숟가락질도 많이 흘리지도 않고 잘 해냈다. 알아서 커주는 둘째 덕에 첫째 땐 사 먹였던 이유식을 직접 요리하여 먹일 수 있었고 덕분에 요알못인 나의 요리 실력도 상승했다. 둘째를 키우며 첫째 키울 때 느꼈던 동동거림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육아방법 또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래서 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후 5시가 되면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언제 오나 하고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자기야 언제 와?"

"아직 모르겠어. 일이 끝나봐야 알아."

"그래도 빨리 와~ 나 너무 힘들어."


"자기야 언제 퇴근할 생각이야?"

"왜? 자기는 맨날 퇴근시간을 묻더라."

"......."


남편은 아이 둘을 육아하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알 틈이 없었다. 항상 늦게 귀가했고 그럼 나 혼자 아이 둘을 재우다가 지쳐서 모두 잠든 후였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번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에는, 한 명씩 아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첫째를 맡아 놀아주고, 먹이고, 씻기고를 했고, 남편은 둘째를 맡아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이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첫째를 재우며 2시간마다 깨는 둘째의 수유를 하는 일이었다. 이 당시 첫째가 잠을 무척 늦게 잤던 시기였는데 거기에 둘째의 수유까지 해야 하니 나는 수면이 항상 부족했다. 거기에 첫째가 잠을 자지 않으니 둘째가 본인의 수면시간보다 더 자주 깼다. 그래서 일단 첫째를 빨리 재우는 게 목표였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수면교육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대로는 내가 버틸 수 없을 거 같았다.




3. 수면 교육

그래서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온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일단 누웠다. 그러자 첫째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불 끄지 마. 불 켜!"


하며 10분 동안 울고 불고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잘 자고 있던 동생까지 깨서 같이 울고 두 아이가 동시에 우는 소릴 듣고 있는 동안 내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내 배에 올라타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못살게 굴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


이렇게 2~3일이 지나고 그 기간동안 아이의 행동을 참는 건 매우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티니 좋은 날이 오긴 왔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가만히 있으니 이제 누우면 일어나지 않는 사람임을 깨닫고 혼자서 놀기 시작했다. 뒹굴 뒹굴,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백설공주 이야기를 하며 쫑알쫑알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어버렸다.


미운 4살의 새벽 2시 수면시간을 저녁 11시로 앞당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뒤로 나의 수면시간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체력적으로 훨씬 나아지고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와 남편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잠이 보약이다'.




4. 버럭맘이 되다 : 부부 공동 육아의 필요성

수면교육은 끝났지만 아이 둘을 보면서 나의 체력은 점점 더 고갈되어 갔다. 그래서 몸이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첫째가 말을 안 들으면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무척 많아졌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화내는 게 매우 쉬워진다. 첫째 아이가 예민한 기질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첫째의 기질에 맞추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자꾸만 버럭맘이 되어가던 내가 그 당시 써놨던 기록을 가져와 본다.




'자꾸 버럭맘이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수십 번 다짐했다가도 조금만 내 몸이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너무 화가 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넘어서는 일이다. 나를 넘어 뼈와 살을 깎는 인내가 필요하고 애쓰지 않으면 그러다 나는 사라지고 만다. 거기에 부부간의 화합이 중요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완벽을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장점을 보며 그 점을 강화시키며 키우자.'

 - 2020년 7월 5일, 나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 -




나의 체력이 고갈될 때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원할 때 양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울화가 치밀어 저런 글을 썼던 거 같다.


박윤미의 '버럭맘 처방전'에는 이런 일화도 나온다.


상황 : "아이가 아파 빨리 오라고 연락을 했는데... 아 글쎄 회식을 한대요!"

오랜만에 잡힌 회식에 빠지는 게 싫은 남편과 아이가 아픈데 회식이 웬 말이냐는 아내. "실장, 팀장이 다 참석하는 자리라 어쩔 수 없어"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더 화가 난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라는 말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게 만든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표현법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손을 잡고 육아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터널 끝에 서서 돌아보면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부간의 대화에서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솔직하게 말하기'가 정말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다. 현재 내 상태, 내 감정에 대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GPT가 그린그림_내가 원하는 공동육아의 이상향






맞다. 나는 그 당시에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 거에 대해 섭섭한 마음에 돌아오면 말도 제대로 안 하고 틱틱거리기만 했었다. 그러지 말고 솔직하고 담백한 말투로 "자기가 늦게 오면 나 혼자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데 내 체력이 부족해서 많이 힘들어. 그러니까 몇 시까지 와서 아이를 한 명씩 맡아 돌보면 좋겠어."라고 자주 말했어야 했다. 그 당시엔 뭐가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섭섭함만 컸다. 지금도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며 부부 공동 육아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전보다는 감정 표현이 많이 나아졌지만, 감정이 앞서는 F인 나에게 아직도 사실만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T인 남편은 나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는 게 어렵다.


정 반대인 우리는 아직도 삐걱거릴 땐 긴 시간 동안 입을 꾹 닫고 대화를 하지 않기도 하고 바쁘단 핑계로 서로를 모른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칼로 물 베기'처럼 스르륵 풀려서 언제 그랬냐는 듯 대화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항상 아이라는 매개체가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부란 관계를 통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중이다. 서로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가고 조금씩 성숙한 관계가 되어간다.


아직도 작업하다 만 조각상처럼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둥글둥글한 완성된 조각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이번 글을 푸름 아빠 최희수 님이 쓰신 책에 나오는 칼릴 지브란의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부부는 신전의 돌기둥처럼 서로 마주 보아라. 그리고 그 가운데 하늘의 바람과 구름이 놀도록 하라."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려면, 어느 한쪽에 기대려고 하지 말고, 신전의 돌기둥처럼 혼자 우뚝 서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독립된 존재로 함께 마주 보며 살아가야 하지요.

- 푸름 아빠 최희수 '사랑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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