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육아휴직을 맞이하며
선배님! 내년에 육아휴직 하세요?
점심식사 후 화장실에서 분노의 치카치카를 하고 있는데 이제 갓 1년 차 신입사원이 나에게 큰소리로 물어왔다.
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 누가 들을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 아직 결정된 건 아니야.
라며 입을 막아 버렸다.
그녀는 상처를 받았겠지만 나에겐 매우 소중한 계획이 이렇게 유출되어 버렸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맘 속으로 3번째 육아휴직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진급도 해야 하는데 그전에 이런 말이 나오면 진급이 또 밀려 3년 차 누락자가 될 게 뻔했다. 그 뒤로 육아휴직 계획이 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고 반대로 없다고 말을 했더니 소문은 차차 사라졌다.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한 후, 다시 회사를 다니며 워킹맘 생활의 기초반 수강생 시절을 겪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아이 하나 있을 때 워킹맘은 초급 수준이다. 둘째를 낳고 나서 겪는 건 중급반 정도의 레벨이 된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반쪽짜리 역할은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집에 가서 역시도 공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하고 바쁜 주말이 끝나고 일요일 밤이 되면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을 설치다가 월요일 오전에 반차를 쓴 것도 여러 번이다. 나의 위치에 걸맞은 일들은 주어지는데 아웃풋은 그 수준이 되지 못했다. 열심히 받아 적고, 다음날까지 결과를 내기 위해 종종 거리며 할 수 있는 걸 했다. 하지만 ‘잘’하긴 역부족이었고 그건 자존심 강한 나에게 절망감과 무기력을 안겨주었다. 가뜩이나 원래 하던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전환한 지 3년 차였는데 그중에서도 2년은 허송세월을 보냈다. 1년은 임신을 하고 힘들어서 대충 다녔고, 나머지 1년은 육아휴직으로 까먹었다. 신입사원 1년 차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름대로는 동동 거리며 시키는 걸 최대한 열심히 했다. 이 터널 속을 어떻게 됐든 지나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복직 후 8개월쯤 되었을까, 갑자기 생리기간이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서 혹시..? 하는 생각에 임테기를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약국에서 임테기를 사려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이미 아이를 출산한 엄마인데 뭐 하며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구입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테기를 하고 조금 후에 보니 내 눈에 보이는 선명한 빨간 줄.
그 순간 아이가 생긴 기쁨보다 앗 나 이러면 다시 휴직할 수 있는 건가 하며 행복해졌다. 그만큼 회사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니까. 이전 조직보다 그나마 나의 적성에 맞는 곳을 찾았다 생각하며 다시 복직했는데 내 앞에 벌어진 일은 나를 좌절과 무력감으로 몰아넣었다. 그 와중에 찾아온 아이는 나에게 생명줄과도 같았다.
사실, 복직 후 매 달 생리기간이 다가오면 나름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생리가 좀 늦네..? 혹시 임신인가..? 이러다가 둘째가 생기면 나 다시 휴직할 수 있는 거겠지 하며 휴직을 나름의 도피처로 생각하기도 했다. (남사원들은 이런 이야기들 들으면 욕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둘째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적은 없었다. 나 스스로 마음속으로는 아이는 둘이 있어야 완전체인 4 가족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만 있었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 막연한 공허감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둘째 가질 거야?”라고 물어보면 “글쎄, 잘 모르겠네.”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우리 부부 모두 확정적 계획은 없었지만 어느 날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온 거다.
임신을 알게 된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여 모든 인사규정을 뒤져 언제쯤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쉴 수 있으려면 무급 임신육아휴직을 써야 했다. 보통 다른 직원들은 애를 낳기 하루 전날까지도 일하다가 출산하러 갔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는 다른 존재이지 않은가.
첫째 땐 출산을 한 두 달 정도 남기고 휴직을 했었지만, 지금은 남들의 시선일랑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얼른 임신 무급휴직을 신청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마침 그때는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많이 예민하고 정서가 불안하다는 말을 듣고 있을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육아휴직 시기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 나에게 해 준 친구의 한 마디가 미련 없이 육아휴직 결정하는 데 결정타가 되었다.
”일은 언제든 더 할 수 있고 돈은 언제든 더 벌 수 있지만, 알콩이의 26개월은 지금밖에 없잖아.
그 한마디로 나는 무급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그 당시 이른 휴직을 선택하며 블로그에 남겨두었던 기록의 한 페이지를 가져와 본다.
첫째에게 사랑을 최대한 많이 주고 싶다. 둘째가 나오는 순간부터 그 사랑이 절반으로 나누어질 걸 알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사랑을 주고 싶다. 그리고 월급이 없는 생활을 하며 아껴 쓰는 생활습관도 만들어보고 싶다. 그동안 생각 없이 돈을 쓴 일이 많았는데 외벌이의 삶을 체감하며 반성을 좀 해야겠다. 또, 책도 쓰고 싶고 영어공부도 해내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알차게 살아내고 싶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둘째 달콩이 이므로 체력이 받쳐주는 데까지만)
출처 : 둘째 임신, 임신 휴직을 선택하다. : 네이버 블로그
아마 둘째가 나오기 전 첫째와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외벌이의 삶을 체감하여 삶의 습관을 바꿔보겠다고 다짐했던 거 같다. 그리고 지금은 말도 안되는 자기계발까지도 하겠다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꿈과 희망의 나라로 생각했던 두번째 육아휴직의 서막이 올랐다.
이렇게 현재 나의 아이의 소중한 시기를 이렇게 넘길 수는 없겠다는 친구의 말을 무기로 삼아 두 번째 육아휴직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단행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내가 기필코 회사를 그만두고야 만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한 후 배가 나온 상태로 30개월 가까이 된 아이와 뱃속의 아이를 같이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내가 배가 나온 것과는 별개로 첫째는 나에게 자주 매달렸고 안아달라고 외쳤다. 배가 나온 채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고 숨쉬기도 힘들었을 때인데 낮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와서 만나는 아이는 버거웠다.
첫째 아이를 키우며 둘째를 임신한 채로 했던 육아이야기와 출산 후의 육아이야기는 다음 주에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