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 Nov 15. 2024

반쪽짜리 엄마, 반쪽짜리 회사원

복직의 칼날 앞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저 다가올 일이 나를 향해 걸어올 뿐이다. 그것이 두려운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나 자신이 그날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이 문장은 나의 복직날을 앞두고 느꼈던 두려움을 그대로 묘사한 문장이다. 1월, 2월... 그리고 어느새 11월, 12월! 이제 다음 달이다. 더는 피할 수 없는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육아휴직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당시 나는 복직날짜가 다가올수록 압박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서 맡게 될 프로젝트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시스템이 바뀌어서 헤매면 어쩌지?’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도 그럴 것이 1년간 한 아이의 엄마로 살며 아이의 발달과정, 이유식 만들기, 시기별 필요한 장난감, 책육아 등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회사는 1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사람이 이렇게 빛의 속도로 업무를 까먹을 수도 있구나'를 실감할 정도로 백지상태였다.


육아휴직에 들어갈 때 나는 1년 뒤 이 회사로 돌아오지않고 다른 직업을 찾겠다며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휴직 기간 동안 나의 역량개발도 하며 아이도 키우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게 웬걸 아이를 키우는 일만 ‘잘’하기에도 차고 넘쳤다. 잘하는 걸 떠나 육아 자체는 정답이 없었다. 체력은 점점 약해지고 혼자 쉴 시간조차 없는데 나의 역량을 개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상태로 회사에 복직할 날은 점점 다가왔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복직 전 불안한 마음이 컸던 터라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한 나름 만만의 준비를 했다.


일단 아이가 돌이 지나자마자 3월부터 갈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 놓은 후 연락을 기다렸다. 그전까지 아이의 육아는 친정 부모님께 전적으로 부탁 드리기로 했다. 부모님 댁이 집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평일 월~목요일까지 아이를 부모님 댁에서 재우고 금요일밤에 데려왔다가 일요일 밤에 데려다주는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중 내내 떨어져 지내는 일은 처음에는 해방감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보고 싶어 졌고 뭔지 모를 묘한 죄책감도 들었기에 퇴근 후에 2~3일 부모님 댁으로 갔다.


어느 날, 아이를 보러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였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아이는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손길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이 찢어졌지만 나는 단호히 등을 돌려야만 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녀야 하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편에게 "나 퇴사할까?"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눈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퇴사를 하는 건 남편은 반대였고, 정작 나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만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되었고,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적응을 시작했다. 엄마가 같이 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이 마음과는 별개로 아이는 생각보다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해 주었다. 회사에서 틈틈이 키즈노트에 올라오는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는 것이 나의 안심이자 낙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반쪽짜리 인간이 되었다. 육아에도 반만 발을 걸치고 일에도 발을 반만 걸친 반쪽짜리 인간.


아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도망치듯 회사로 출근하고 회사에서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퇴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항상 불편함이 올라왔다. 이렇게 육아에도 집중을 못하고 일에도 집중을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게 맞는 건가? 아이에게도 더 잘해야 하고 회사에서도 더 인정받으려면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 복직하기 전에 내가 준비했던 건 마음의 준비가 다였다. 그것도 발을 동동 구르며 뭘 준비해야 하지?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었다.


이런 와중에 회사에서는 나의 직책에 맞게 기대하는 역할과 일이 있었다. 이미 회사에서 나는 남들이 열심히 달릴 때 1년을 쉬고 오니 겉으로만 10년 차 과장일 뿐,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1년이 늦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은 굴뚝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자꾸 몸이 쳐졌고 휴가를 자주 쓰게 되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끝 마무리가 약한 경우가 많았다. 복직 1년 차는 육아와 일의 균형을 잡는 데만 집중하고 성과를 내는 건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육아도, 일도 완벽히 해내지 못한 채 반쪽짜리 인간처럼 살던 어느 날, 나에게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