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SunofJamaica 굼베이댄스 중학생 팝송 회한
벌써 40년도 더 된 이야기다.
Sun of Jamaica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처음 들었다. 007 가방만 한 Sony 카세트 플레이어 붐박스로 자주 듣곤 했다. 집에는 아버지가 사다 놓은 팝송, 서부영화 음악, 행진곡, 일본 노래 등 다양한 장르의 카세트테이프가 많았다. 라디오나 레코드 가게에서 나오는 몇몇 팝송 외에 아는 노래가 없던 시절이어서 아버지의 테이프에는 처음 듣는 생소한 음악이 대부분이었다.
굼베이 댄스 밴드가 부른 이 노래는 1980년에 나왔다. 전주 부분은 일렉기타가 아르페지오 기법으로 멜로디를 빠르게 리드하면서 전개된다. 동시에 영어로 뭐라고 쏼라쏼라 거리는데 분위기는 경쾌한 듯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쓸쓸한 느낌도 받았다. 지금 들어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다. 당시 중학생들 사이에는 다이아몬드 스텝이 유행이었는데 이 노래는 거기에 잘 맞지도 않았다. 빌리지 피플의 YMCA나 In the Navy처럼 신나지는 않았지만, 감성을 터치하는데 충분한 노래였다.
실제로 이 곡의 정서는 아버지의 인생과 비슷하다. 젊어서 집을 떠나 평생 바다에서 살았다. 해군에 입대하여 6·25 전쟁에도 참전했고, 미국 함정 인수단의 일원으로 태평양을 왔다 갔다 했다. 군을 떠나서는 외국에서 화물선을 운항하는 항해사의 길을 갔다. 자녀 셋과 함께 미국 이민을 준비하는 중, 싱가포르에서 50대 초반 쓰러져서 결국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투병 생활 9년 되던 해에 귀천歸天했다. 전쟁 때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도 생존했고, 1967년 홍콩에서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을 때도 살아났었지만, 긴 병을 이기지는 못했다.
아픈 채로 김포공항으로 귀국했을 때 3개월 만에 재활하여 다시 일어나겠다고 굳게 다짐했으나, 한번 상한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자존심도 강하고, 항상 캡틴 역할만 했었는데 와병 중이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의 무게가 엄청났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의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되찾을 수 없었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아버지가 산만큼 살아 보니 이제야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다가 고향이었으나 아픈 동안 바다 한번 못 보고 돌아가셨다. 아직도 그게 마음에 큰 회한으로 남아있다.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당신을 닮은 손주를 보여드릴 수 없어서 너무나 슬펐었다... 이제 곧 그 손주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슬픔이 더욱 깊어질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