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변태, 교사, 오빠, 사장, 범죄, 성희롱, 성범죄
고등학생이 되며 생활 반경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보니,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았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엉덩이나 가슴께를 스치는 미심쩍은 손들이 적지 않았다. 대놓고 허벅지나 등에 몸을 딱 붙이고 부비대는 미친놈들도 있었다. 괜히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목덜미를 쓸어내리거나, 늘어진 셔츠 목둘레와 벌어진 남방 단추 사이를 흘끔거리는 학원 오빠, 교회 오빠, 과외 오빠들에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이들은 그저 자리를 피하기만 할 뿐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63~64쪽)
학교라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굳이 팔뚝 안쪽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살을 꼬집고, 다 큰 아이들의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브래지어 끈이 지나는 등 가운데를 쓰다듬는 남자 교사가 꼭 있었다. 1학년 때 담임은 50대 남자였는데, 검지만 펼친 모양의 손가락 지시봉을 들고 다니면서 이름표 검사를 핑계로 반 아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르고, 교복 검사를 핑계로 치마를 들추곤 했다. 한번은 조회를 마친 담임이 깜빡 잊고 지시봉을 교탁에 두고 나갔는데, 자주 이름표 검사를 당했던 가슴 큰 아이가 성큼성큼 나와 교실 바닥에 지시봉을 내던지고 발로 사정없이 밟아 부수며 울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얼른 깨진 조각들을 모아 치웠고, 단짝 친구가 그 아이를 안고 토닥였다.(64쪽)
그나마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김지영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6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