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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pr 28. 2022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다

82년생, 김지영, 변태, 교사, 오빠, 사장, 범죄, 성희롱, 성범죄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인생 경험으로 볼 때 이 말에 백 퍼센트 이상 동의한다.


1982년 4월 1일에 태어난 주인공 김지영 학생이 경험하고 본 것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시절 쌓였던 불쾌한 기억을 하나둘씩 뱉어낸다.


고등학생이 되며 생활 반경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보니,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았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엉덩이나 가슴께를 스치는 미심쩍은 손들이 적지 않았다. 대놓고 허벅지나 등에 몸을 딱 붙이고 부비대는 미친놈들도 있었다. 괜히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목덜미를 쓸어내리거나, 늘어진 셔츠 목둘레와 벌어진 남방 단추 사이를 흘끔거리는 학원 오빠, 교회 오빠, 과외 오빠들에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이들은 그저 자리를 피하기만 할 뿐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63~64쪽)


반대의 성을 타고난 자들은 죄의식조차 없다. 남성 위주의 관습과 사고방식이 낳은 폐해다. 어느 독재자가 한 말이 이 나라에 사는 남자들의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자는 허리 아래 일을 갖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릇된 가치관의 유물이다. 남자들의 성장기 호기심을 뭐라고 하고 싶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성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인식과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가정교육, 공교육의 천박한 수준을 탓할 도리밖에 없다.




학교라는 곳으로 들어가면 더욱 더럽고 추악한 변태들이 많은가 보다. 하기사 남학생만 있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변태처럼 행동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있었는데, 여학교이라고 없을 리는 없을 터이다. 공공연하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갑과 을 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인식했던 시절이었으니... 요즘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지은이는 학교 생활에서 겪은 추악한 모습을 묘사한다.


학교라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굳이 팔뚝 안쪽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살을 꼬집고, 다 큰 아이들의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브래지어 끈이 지나는 등 가운데를 쓰다듬는 남자 교사가 꼭 있었다. 1학년 때 담임은 50대 남자였는데, 검지만 펼친 모양의 손가락 지시봉을 들고 다니면서 이름표 검사를 핑계로 반 아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르고, 교복 검사를 핑계로 치마를 들추곤 했다. 한번은 조회를 마친 담임이 깜빡 잊고 지시봉을 교탁에 두고 나갔는데, 자주 이름표 검사를 당했던 가슴 큰 아이가 성큼성큼 나와 교실 바닥에 지시봉을 내던지고 발로 사정없이 밟아 부수며 울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얼른 깨진 조각들을 모아 치웠고, 단짝 친구가 그 아이를 안고 토닥였다.(64쪽)


국가가 교육을 주도하면 전인 교육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사람에 대한 철학이나 인권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는 사실이 한심할 따름이다. 전인 교육은 사전에나 나오는 말이지 현장에서는 도무지 느끼기가 어려운 주제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등교하면 핸드폰을  제출해야 하는가? 사유 재산의 영역이고 상호 간에 의가 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일 뿐이다. 학생들의 소유물에 대해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교복'이라는 올가미는 왜 던져버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여러 목적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다지 순수하거나 건전하게 느끼기는 어렵다. 옷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게 정상인지 모르겠다. 학교는 학생을 통제하는 게 주 업무가 아니다. 학생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인데 오히려 편견으로 헉생을 대하지는 않는 돌아봐야 한다.(나는 교사들이 시대 감각에 가장 뒤진 집단 중 하나로 본다)


교육 개혁이라는 게 입시제도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 것뿐이니... 교육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방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60년대나 2022년 지금이나 뭐가 다른지 도무지  수가 없다.




학교의 범위를 벗어나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사회는 더욱 추악하게 그렸다.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지만, 내 입은 벌써 반응하기 시작한다. 혈압이 오른다. 분노다. 딸이 있는 아버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짐승과 사람을 구분해주는 선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짐승만도 못하다고 커밍아웃하는 악인들이 있다.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속은 승냥이와 다를 바 없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괴롭히고 착취하는 저질의 인간이다.


그나마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김지영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64~65쪽)


자기 딸보다 어린 여인들을 희롱하는 놈들이 나쁜 건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려는 육체적 본능을 제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여 '힘'으로 상대의 의지에 반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악랄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짐승 만도 못한 존재다.


어찌 보면 온갖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사는 것보다 사회라는 제도 안에서 '사냥감'으로 사는 게 더 위험해 보인다. 법과 질서는 한계가 있다. 합의된 시민 의식이 온전하게 유지될 때 그 누구도 그 누구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다.


예전에 봤던 영화 Disclosure에서 변호사가 한 대사가 기억난다.


"Sexual harassment is not about sex. It's about power."

"성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섹스의 문제가 아니다. 힘으로 강제하려는  오용의 문제다."



-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刊 -
- 직장 내 성폭력을 다룬 영화 디스클로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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