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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Apr 29. 2022

아차, 천고마비와 비육지탄을 헷갈리다니

천고마비, 비육지탄, 삼국지, 유비, 인문학, 착각, 기억의 오류

자신 있게 말했다. 착각했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부끄럽다.




어제 오전 '인문학 글쓰기' 시간에 겪은 에피소드다. 강사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유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머리에 갑자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가 조조(曺操)에게 의탁한 일이 떠올랐다. 강사가 몇 번을 물어도 수강생 중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아 유비의 고사를 얘기했다. 강사가 천고마비의 유래를 설명하는데 순간 내가 답변을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왜 갑자기 삼국지가 떠올랐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말이 살이 찐다는 것과 유비의 허벅지에 살이 붙는 게 오버래핑되면서 헷갈렸던 것이다. 기억이 잘못된 중첩으로 표현된 것이다. 스스로 실수투성인 존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어사전은 천고마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하늘이 맑아 높푸르게 보이고 온갖 곡식이 익는 가을철을 이르는 말.


원래 뜻은 목가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경향신문 엄민용 기자의 설명이다.


<한서(漢書)>에 나오는 이 말은 ‘북방의 흉노족이 키운 말들이 잔뜩 살쪘으니, 이제 곧 그들이 쳐들어와 식량과 가축을 노략질해 갈 것’이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성(詩聖) 두보의 종조부인 두심언이 북쪽 변방을 지키러 나간 친구 소미도에게 보낸 편지에도 ‘추심새마비(秋深塞馬肥)’라는 구절이 있다. “가을이 깊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라는 뜻으로, 이 또한 흉노족의 침입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기억에 비육지탄((髀肉之歎)이 왜 천고마비로 둔갑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대답을 할 때 나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뻔뻔스럽게 답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곧바로 잘못된 답변인 걸 알아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간 뒤였다. 기억에는 조조(曺操)에게 의탁할 때의 고사로 떠올랐다. 지금 글 쓰면서 확인하니 유표(劉表)에게 의지할 때의 일이었다. 착각에 착각을 거듭했다. 쥐구멍이 어디 있나...


■ 비육지탄
중국 촉나라의 유비가 은거하고 있던 시절에 오랫동안 말을 타지 못하여 넓적다리에 살이 찌는 것을 한탄한 고사에서 나온 말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여 헛되이 세월만 보냄을 탄식함을 이르는 말.

출처 : 우리말샘




말과 글은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말이야 입 밖으로 나오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려 순간에만 존재하지만, 글은 활자로 남는다. 어떤 내용을 인용할 때도 자료가 믿을 만한지 점검하고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특히 통계를 인용할 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통계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건 해석이 아니라 기만행위다. 어제 일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지식 앞에 겸손하자.

내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본 내용을 깊이 새기자.

책을 읽을 때는 반복해서 읽자.

생산한 말과 글은 반드시 점검하자.

잘못한 건 인정하고 바르게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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