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하철로 이동할 때 읽는 책이다. 304 페이지로 마무리하는데, 어제저녁 전철에서 225 페이지까지 읽었다. 읽다 보니 작가 레마르크가 좋아졌다. 지금까지 봐온 소설가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준다. 소설을 읽으면 스토리의 전개와 복선에 놀라 작가들이 스마트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상상력과 천재성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레마르크는 실제로 1차 세계전쟁에 참전하여 전쟁터에서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또한 비참한 광경을 셀 수 없을 만큼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체는 차분하다. 과장도 없다. 이념도 없다. 적을 향한 적개심도 표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년의 순수한 눈으로 전장을 보고 느낀 대로 전달한다.
책을 끝내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보려고 한다. 그다음에는 《개선문》을 읽을 생각이다. 현대 소설가들에게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작가다. 특히 작가가 진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식도 없고, 꾸밈도 없고, 인위적인 조작도 없다. 오히려 읽으면서 당시 유럽 국가의 역사와 상황에 관해 관심이 높아졌다.
독후감으로 결론을 내기에는 이르지만, 아직까지는 오직 사람만 남았다. 전쟁이 주제일 때는 승자의 영웅담이나 패자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레마르크는 자기가 겪은 일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왜곡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자나 깨나 참호 속에서 죽음과 마주했던 동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표현했다.
특히 독가스에 관한 묘사는 공포감 그 자체를 느낄 수 있게 묘사했다. 겪어보지 않고 상상으로만 표현하기 힘든 실제 기록이다. 책으로야 독가스를 사용했다 정도의 사실만 배웠지 그 위력과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레마르크는 독가스가 초래하는 무서운 증상과 결과를 여과 없이 표현했다.
37년 전에 만난 레마르크의 책을 이제야 제대로 읽는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크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단편과 조각으로 끊어진 지식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더욱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