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방영한 TV 드라마 「태조 왕건」을 보면 주연 배우들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고사를 자주 인용한다.
태조 왕건이 활동한 시대는 서기 900년대. 중국 위나라 진수가 삼국지를 기록한 시대는 290년대.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지은 건 14세기 말, 모종강이 평설하여 정리한 건 17세기 말. 소설 삼국지가 조선에 전해진 건 16세기 중반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드라마 작가의 의욕이 너무 지나쳤다. 고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역사물을 만들 때는 의식주나 언어에 대한 고증(考證)은 할 만큼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시대와 걸맞지 않은 내용이 뒤섞이기도 한다. 정사(正史)가 아닌 야사(野史)가 버젓이 메인 스토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드라마를 볼 때 고증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따지면서 봤다. 그때는 언론 기사에서 좀 더 배운 사람들이 맞네 틀리네 하면서 논란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달리 고증보다는 각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는 고증에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역사물을 쓸 때 고증이 엇나가면 난리가 난다. 굳이 맞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믿고 본다.
외국 영화나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소위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시비를 건다. 번역이 틀렸다느니, 그 뜻이 아니라느니.... 번역 작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번역업의 현실을 안다면 함부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학문적이거나 기술적인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번역은 왜 공론의 장이 없고, 뒷담화식으로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옆 나라 일본의 1/10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에효....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