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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Mar 29. 2022

책을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역사, 사람, 욕망, 권력, 재물, 섹스, E H Carr

일은 고등학교 2학년 국사 시간에 벌어졌다.


주제는 조선 시대 일어난 사화(士)였던 것 같다. 국사 선생님의 요지는 어쨌든 선조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일을 한 것이니 너그럽게 평가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순간 나는 불끈했다. 그때는 역사 드라마에서  '간신배'라는 단어를 많이 썼던 시대다. 손을 들고 일어났다. 결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의감에 불타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선생님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랬다. 선생님의 당황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순간 터져버린 입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정치적인 발전을 위해 벌인 일도 아니요, 국가와 백성의 삶을 이롭게 했던 일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했다. 지금이야 정치학과 정치 공학이 발전해서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하지만, 내 의식에는 소인배들이 탐욕으로 야기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향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해하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명이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꼬드겨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입신양명이 어렵자 사특(邪慝)한 방법을 썼다. 선비로서는 도저히 해서 안 되는 일을 했다. 스스로 선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성을 위하거나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쿠데타를 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없다. 사람마다 해석이야 다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일 뿐, 조상으로서 존경의 대상은 절대 아니다.


역사가 대중화된 지 한 30여 년 됐나 보다. 출판사와 방송국 TV 프로그램의 공이 컸다. 한길사와 한겨레신문사 같은 출판사에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왕성하게 펴낸 적이 있다. KBS 역사 대하드라마나 조선왕조 오백 년 같은 프로도 한몫 단단히 했다. 강단 사학자와 대학교재 국사는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인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작해야 단군이 신화냐 사실이냐 이런 수준의 이야기를 갖고 설왕설래했으니... 친일 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대학생이 된 후 한국사 인물 중 책으로 가장 먼저 접한 이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였다. 책 제목은 『독재자 이승만』이었다. 일월서각에서 발간한 것으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건국 대통령이 됐다. 후에 종신 집권을 위해 부정 선거를 자행하여 결국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한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는지 아리송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인물 평전을 읽지 않아도 사건의 경과만 보고 읽어도 그 사람이 보일 정도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세상과 사람을 몰라서 이해력이 부족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더 이상 존경하기 어려운 인물로 결론을 내렸다.


1985년 2월 12일 총선 때 인생의 첫 표를 행사했다. 투표 기준은 여당이냐 야당이냐가 아니었다. 민정당이냐 신민당이냐도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준은 명확하다. 잣대는 정의와 불의다. 정의로우면 지지하고 불의를 행하면 반대했다. 


이념? 글쎄 이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한국 사회에 이념이 있었던가? 조선시대의 정쟁(政爭) 정도면 이념 대립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권력을 잡느냐 못 잡느냐의 문제일 뿐 사상은 권력욕과 탐욕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지금도 본질적으로 바뀐 건 없다.   


P.s. 다시 읽고 싶은데 아마 이사하면서 정리한 것 같다. 못 찾겠다.

- 『독재자 이승만』한승인 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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