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추억 회귀 복귀 보수 진보 퇴행 역행 레트로토피아 노스탤지어
추억은 퇴행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추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습성 중 하나이다.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일은 고통스럽기보다는 위안이 된다. 그러나 가끔 추억은 회한悔恨이 되기도 한다. '아, 옛날이여!' 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할 때도 많다. 현실의 삶이 고단한 데다가 희망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으면, 예전에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추억에 지나칠 정도로 잠기거나 미래를 향한 기대보다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퇴행이나 퇴보하게 된다. 영국의 한 철학자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미래에 대한 용기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미래未來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의 경과와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미래를 향한 희망이나 비전보다는 팝송의 가사처럼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친구야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과거에 잠기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퇴행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나, 과거의 특정한 경험을 현재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서 진보한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복고'라는 점잖은 단어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복고가 품고 있는 복귀의 의미보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역행逆行의 의미를 숨기기 위해 쓰는 말일 뿐이다. 정치 부문에서 이러한 퇴행적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수구세력의 정체성이 그러했다. 시대정신을 거스르고 보수保守라는 단어 속에 본심을 숨기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세력을 억누르고 탄압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고 극우 포퓰리즘이 강화되는 현상은 단적인 사례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는 제 굴을 향한다는 고사성어처럼, 인간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추억이 역행되어 시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투쟁해 온 진보의 여정이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과 혁신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되, 더 이상 역행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추구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후세에게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추억과 퇴행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인식하고 진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