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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00자 생각

1200자 생각(20250429) - 과분한 자리

과분 분수 욕구 욕망 탐욕 일일삼성 예의 염치 능력 줄 빽

by 브레인튜너

과분한 자리는 독毒이다.




조선 태종 이방원의 처가인 여흥 민씨 집안의 4형제가 모두 왕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원경왕후의 바로 밑 동생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권력을 향한 욕망을 숨기지 못해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재촉했다. 이방원의 왕위를 공고히 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주어진 권세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자 양녕을 앞세워 권력을 탐한 대가로 귀양을 가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척을 경계했던 태종의 의도 때문에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었으나, 분수가 지나쳐 자초한 일이었다.


권력을 추구하고 높은 자리를 바라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지나치지 않은 욕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욕구가 욕망으로 바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탐욕으로 변질될 때,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남들보다 가진 게 조금 많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만 더 높아도 교만하고 거만하게 변하는 게 인간이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 항상 탈이 난다. '권력은 부패하게 되어 있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라는 말은 인과관계를 규정하기보다는 인간의 타락을 경고하는 말이다. 옛 성현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과거의 허물이나 불법을 행한 사실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시대이다. 조선시대는 자기의 치부가 드러내는 상소가 올라오면,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예의와 염치를 명예보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청문회나 국회의 위원회에 나와 보이는 언행을 보면, 사람으로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뻔뻔스럽다. 자신의 역량과 도덕성에 대한 냉철한 판단 없이 높은 자리를 탐하는 이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했고 듣기도 했다. 리더십과 전문성이 부족해도, 온갖 정치력을 발휘하여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있다. 결국 알게 모르게 조직과 구성원에게 해를 끼치는 경향이 짙다. 조직과 사업을 망치기도 했고, 최악의 경우는 당사자 본인이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아직도 ‘실력보다는 줄’이라는 한탄이 섞인 말이 통용되는 걸 보면, 능력과 전문성이 존중받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풍토는 요원한 것 같기도 하다.


분에 넘치는 자리와 이익만을 좇는다면 결국 자기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과분한 자리는 독이다. 자신의 그릇에 맞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와 염치를 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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