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길 정의 충성 명예 내란 반란 부화뇌동 욕망
장군은 지금도 뭐가 잘못된 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냈다. 군인이라면 최고의 영예인 별 넷, 대장이 되었다. 동시에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 자리에 올랐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지위가 아니었으니, 소명 의식을 갖고 잘하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굳건히 다졌을 거다. 지난 37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아마 세상 물정을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담백하고 솔직한 성품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믿을만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별 두 개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있을 때 갑자기 주어진 진급과 보직에 정신이 팔려서 그랬는가, 사악한 인간을 알아볼지 못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직선적이고 우직한 군인이었나 보다.
그저 군 통수권자가 명령했으니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게 충성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성은聖恩을 입어 신세를 졌다는 느낌이 강했을 수도 있다. 누가 봐도 분명한 내란인데도 자기를 알아줬다는 순진한 생각에 그냥 따랐을지도 모른다. 군인이 되어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대의를 따라 군문에 들어온 지 37년 만에 육군의 수장이 되었지만, 불과 1년 만에 반란을 일으킨 죄인으로 전락하여 재판을 받고 있다.
영관 장교 시절 배웠던 군사법을 기억했더라면, 헌법 제1조 2항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상식적인 사고 능력을 발휘하여 사리 분별만 잘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수치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별 네 개를 달아줄 때, 내 밥그릇이 아닌데 왜 자기에게 과분한 자리를 줄까, 하는 생각만 했더라면... 계엄사령관이 된 순간, 군사경찰을 불러 내란 주범과 종범을 체포했더라면, 군복을 입었던 38년이 지금처럼 부정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걸 자백하고 초연하게 처벌을 받겠다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나마 수치감을 덜 수 있었을 텐데 왜 구차한 길을 선택해 초라해지는가... 군인의 명예는 어디에다 갖다 버렸는가. 불법과 부조리를 직접 보았다 하여도 권력 앞에서는 침묵하고 굴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인가? 동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연배로서, 예비역 육군장교단 선배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군을 믿고, 또한 국가를 믿고 자식을 맡긴 50만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내란 수괴와 주동 세력을 따라 부화뇌동한 군인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별 네 개를 향한 욕망의 말로는 자멸로 끝을 맺을 것 같다. 어찌 삿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지금 누리는 영화榮華을 잃을지 두려워서 그랬던 것인가...
민주 시민으로서, 자식을 군에 둔 부모로서 마땅히 느끼는 공분公憤을 토로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