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200자 생각

1200자 생각(20250604) - 사필귀정

사필귀정 인자무적 인과응보 억강부약 엄석대 썩은뇌 독재자 동탁 심판

by 브레인튜너

사필귀정事必歸正은 결국 무슨 일이든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걸 강조하는 사자성어이다.




예전 홍콩 무협 영화의 주제는 대부분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처음에는 악이 승리하지만, 종국에는 착한 편이 이기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로 어려서부터 선악 대결의 구도에 익숙해서 그런지 세상을 단순히 이분법으로만 바라본 것 같다. 영화나 소설 속에나 나오는 선과 악의 싸움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학교생활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가 실제로 경험하거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정의가 이기기 위해서는 갈등이 있어야 하고, 극적인 반전이 필수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없다. 마치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는 데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것처럼 속이 편하지 않은 것과 같다. 암울하고, 불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감을 단번에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조리를 해결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의 전횡과 악행을 그만두게 만드는 장치는 새로 부임한 '김 선생'이었다. 이승만과 그의 일당들이 자유당 독재로 부정 선거를 획책했던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학급의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김 선생의 언행은 억압당하던 학생 모두가 환호할 만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물론 이 양반도 나중에는 '국회의원'으로 재등장하면서 또 다른 엄석대의 모습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는 원작자가 작품을 완성한 1987년의 상황을 반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클리셰와 같다. 아무튼 김 선생이 부조리의 흐름을 끊어버리자, 영화 내내 속에서 들끓던 화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 동안 편하게 잠을 잠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무도하고 무식한 데다가 폭력적인 인물은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이나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동탁이 현실 세계에 있다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썩은 뇌로 무장한 꼭두각시 하나가 온 나라를 망치는 데 불과 3년이 걸리지도 않았다.


3년 전 이맘때 낙망했다. 그래도 2년 정도만 버티면 괜찮겠다 싶었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하, 이러다가 3년 가겠네', 하며 낙담했다. 그러다가 6개월 전, 그날을 겪으면서 분노와 희망의 감정이 차례대로 솟구쳤다. 역사의 물줄기는 준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드디어 때가 찼다는 걸 직감했다. 결말이 어떨 거라는 걸 알았지만, 살면서 6개월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홍콩 무협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끝나기 5분 전까지 죽도록 맞거나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주인공은 인고忍苦의 세월을 버텨내며 익힌 내공內功으로 악한을 물리친다. 스토리가 엉성해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쁜 놈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어젯밤의 스토리는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00자 생각(20250603) - 주류 vs 비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