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과 통화했다. 고맙게도 연락을 종종 먼저 해주는 사람이다. 요즘 어떤 시즌을 보내고 있는지를 서로 나누다가 그와 처음 만났을 무렵이 생각났다.
"그때는 제가 많이 우울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되게 이상해 보였을 것 같네요."
"아니, 그냥 어두워 보였어. 슬퍼 보였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덕분에 나도 잠시간 그때를 덤덤한 기분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20대를 대부분 우울과 무기력으로 보냈다. 내면을 잠식하는 우울 아래에는 분노가 끓고 있었다. 나는 갈 곳 없는 화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로 돌렸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건 사실은 아팠지만, 멈추기가 어려웠다. 수동적이고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기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과 말을 많이 했다.
그때의 마음 상태를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여전히 여전히 고장 난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는 매일매일이다. 그렇지만 그때처럼 숨은 쉬고 있어도 죽은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제는 과거에 입술로 뱉었던 잘못된 말보다 더 많이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감사하는 연습을 한다. 내게 감사란 건강한 마음과 밝은 방향으로의 삶을 하나님 안에서 만들어가는 실천이다. 매일 출근하면서 "하나님, 오늘도 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한다. 일할 곳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무엇보다 내가 현재 일을 할 수 있는 마음 상태인 게 감사하다.
그림일기를 그릴 때는 36색 오일파스텔과 다이소 크레파스를 쓴다. 수작업을 잘 못하는 편인데 특히 크레용은 잘 다루는 재료가 아니다. 그래도 크레용을 만지면 그림을 즐겁게 그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감각을 가져가고 싶었다. 하다 보니 색상을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72색짜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장인은 도구 탓을 안 한다고 하지만 나는 장인이 아니니까 도구를 탓해도 된다.
브런치에 올리기로 한 일기가 앞으로 90장 남았다. 조바심에 대충대충 때우지 않고, 즐겁게 채워가자고 다짐한다.
편안함과 연결감을 느끼게 해 준 지인에게 감사합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