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너무 가까워 소중한 줄 모르고 놓쳤던 모든 것들
우리 가족을 울게 만든 덩그러니 남은 화초들
냉장고 속 빼곡하게 가득찬 저장음식과 살림살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웃음과 배려
내가 그냥 지나쳤던 엄마의 고단함과 땀방울
이제는 그립고, 미안하고, 자랑스럽다.
그 일상적인 헌신이 지금은 얼마나 큰 울림이었는지 엄마가 없는 본가에 갈 때 마다 실감난다.
굳이 밝힐 이유가 없었지만 우리 집은 재혼가정이다.
처음 대학교 기숙사 앞에서 인사하던 날, 그 사람이 내 인생의 가장 따뜻한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혈연으로 맺어진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도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줬다.
그 시선 안에는 사심 없이 내어주려는 마음과 나를 향한 응원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곧 ‘은혜’였다.
엄마는 그렇게 은혜 그 자체로 살다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여전히 살아간다.
**유언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가 떠난 뒤에야 알게 됐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엄마는 생계를 위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고단한 시간을 견뎌냈다고 한다. 그 시간속에서 엄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단해졌다.
엄마가 떠난 후 귀중한 가르침을 남겨주었는데, 카카오톡 상태명으로 걸어두었던 성경 문구다.
“아름다운 친절 - 사심 없이 베푸는 친절 행위는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지극히 값진 일이다.”
나는 이 말이 엄마가 가족에게 남긴 유언이라고 믿는다.
누군가 나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내가 받은 은혜만큼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가 그러했듯이.
**교회
엄마는 교회를 버팀목으로 삼았다.
그 곳은 단순한 종교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였고,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울타리였다.
어려운 시절마다 엄마는 성경책을 펼쳤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누군가의 기도를 함께 도우며 본인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아침.
엄마가 "교회 같이 가볼래?" 하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가 있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따라갔다. 그냥 엄마가 좋아하니까.
교회에 가서 엄마는 목사님 내외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리 아들이에요."
말투도, 표정도 밝았다.
나중에 목사님께 들었지만, 엄마는 교회에 다니며 목사님 내외에게 아들 자랑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교회에 가서도 자녀들 생각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기도를 마치고 미리 준비한 지폐 한 장을 나에게 건네던 엄마.
“자~ 이거 헌금이야. 오늘은 아들이 드려봐~”
그 말과 함께 쥐어준 작은 종이 한 장.
그 순간 나는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따라온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교회 자체는 낯설었지만 엄마와 함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따뜻했다.
엄마가 떠난 후, 장례는 최대한 기독교식으로 진행했다.
엄마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 무교였지만 전적으로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했을 방식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사님 내외는 정성으로 장례를 집도해주셨다. 신도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진심으로 애도하듯이. 목사님은 그 이후에도 가끔씩 아빠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어주셨고, 나는 그게 정말 감사했다.
교회를 생각하며 뒤늦게 든 후회가 있다면,
나는 엄마의 신앙과 그 안에 깃든 엄마의 인생을 조금 더 가까이서 관심 가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믿은 건 종교라기보다 삶이었고, 타인에게 선한 마음을 전하려는 태도였다.
단 한번이었지만 엄마와 교회에 갔던 그때를 추억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이웃
엄마는 가족 밖에서도 ‘은혜’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동네 이웃들이 발인식 때 우리집 앞마당에 모여 노제를 지내주었다.
너무나 추웠던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부재를 슬퍼하며 이웃이 나와 손수 준비한 그 제사상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엄마의 기일이 되면 아빠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는 분들이 있다.
그건 단지 좋은 관계였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엄마와 가까이 지낸 이웃에는 독일인 남편 헤르만 아저씨와 한국인 아내 명자 아줌마, 그리고 그들의 반려견 막스 가족이 있다.
엄마는 독일집 명자 아줌마와 언니-동생 하면서 일상을 나누며 스스럼없이 지냈다.
헤르만은 한국어를 거의 못했지만 그의 인자한 얼굴과 행동에서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엄마가 떠난 후, 엄마가 가꾸던 화단 어느 부분이 덩그러니 비어있었는데
어느 날 헤르만 아저씨가 찾아와 그곳에 조용히 빨간 장미꽃을 심고 갔다고 한다.
엄마가 가꾸던 화단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
남겨진 아빠를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 하나로 모든 것이 전해졌다.
독일집 부부는 엄마의 노제를 지내주며 가장 슬프게 울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Grace
사람을 위하는 마음, 조용히 내어주는 손길, 사심 없는 친절, 그리고 웃음.
일상의 작은 행복이 문득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엄마는 지금도 우리 가족 일상에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