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시간에 대하여

08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by 클레마티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큰 나무가 쓰러진 자리에 햇빛이 들고 다시 무언가가 자라나듯이

엄마의 죽음이 남긴 여백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감정의 통로가 되었다.

남은 가족들끼리 자연스레 더 자주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역설적이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으며 그 중심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느낀 건 떠난 엄마의 자리를 채우려 노력하는 가족들의 마음이었다.
‘함께 있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늘 그렇듯 묵묵히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엄마의 큰 사위,
회사까지 그만두고 병실부터 함께 지켜준 둘째 예비 사위,
상주였던 우리 남매들보다 먼저 아버지를 챙겨주었던 예비 며느리까지.
이렇게 완전체로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정식 혼인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하나의 가족이었다.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역할과 방식으로 서로를 챙겼다.
그전까지는 단지 누구의 자식, 예비 배우자, 예비 사위나 며느리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구성원이 되었다.

엄마가 본다면 분명 흐뭇해했을 그 모습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깊이 배웠다.
한 사람의 죽음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 사이에 이어지는 또 다른 시간의 시작이라는 것을.

엄마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우고 어떻게 서로를 붙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일 것이다.

병실에서 엄마와 함께한 시간, 손을 잡았던 시간, 지켜봐 준 시간들은

앞으로 우리 가족을 지탱해 줄 힘이라는 것을 나는 그 마지막 밤 엄마를 주무르던 손끝에서 배웠다.


엄마는 결국 우리가 모두 모인 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었다.


남겨진 우리는
먼저 간 이의 빈 자리에 주저앉는 대신
그가 남긴 가르침으로 공백을 채워가며 살아가야 한다.


엄마가 생전에 보여줬던 손길과 눈빛, 그 다정함을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나누고, 지켜야 한다.

이제 우리는 엄마의 부재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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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군가를 잃고, 무언가를 지켜가고 있다면
그리움이 당신을 무너뜨리는 대신, 지탱해주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