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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Nov 26. 2016

(1분소설)유혹

클레멘타인 1분소설

눈이 내릴 것처럼 잔뜩 흐린 오후 3시, 이미 오전부터 하루 종일 흐린 상태라 시간은 무의미해진 기분이었다. 밝음과 어둠이 천천히 교차되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살아있게 하지만, 오늘처럼 잔뜩 지푸린 채 있는 날씨는 시간을 망각하게 해 왠지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상담 예약했었는 데..."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작지만 눈이 예쁜 녀석이었다. 한눈에 봐도 감정선이 높고 힘은 약한 여리여리 해 보이는 아이였다.


"어서 와요. 이름이?"


"백지은으로 예약했어요."


그녀는 불면증으로 5년째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쩌다 잠드는 날이면, 몇 번이나 비슷한 꿈을 꾸는 데 그게 마치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잠을 자는 동안도 활동을 하는 것처럼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다.


"흐음. 왜 이제 온 거죠?"



"그게..."



그녀는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속삭였다.



"혹시 불량 판정으로 폐기 처리될까 봐요."




2066년 이후로 AI의 발달은 인간의 감정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점차 낮아지는 출산율, 늘어난 수명, 힘들고 거친 일과 극변 하는 환경오염 문제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대체할 인력이 필요했다. 여전히 극단적으로 AI의 문제에 대해 분노하는 인간들이 있지만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적응하기 위해, 또 적응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왔다.


지구는 하나로 통일되었고, 6명의 의견자와 1명의 결정자로 모든 질서는 유지되었다. 모든 일은 컴퓨터의 빅데이터에 의해 자료가 수집되고 정리되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는 능력은 99% 가까이 높은 확률로 예방되었다.



"좋아요. 지은 씨. 5년이라면 이미 나사 시스템에서 확인이 되었을 텐데. 신기하군요. 그리고 이 일을 섣불리 하는 것 자체도 저에게 위협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전 이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만 하구요."


그녀는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저기 혹시, 만약에 선생님."


그녀는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작은 칩이었다. 이건 분명 허용 금지인데?


"이게 뭐죠?"


"이 칩으로 갈아 끼우고 진행하시면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아요. 그리고 저 역시 다시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불법입니다.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죠? 또, 저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잘 알 텐데요?"


"제발. 저는 선생님이 지구 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제 마음을 이해할 거라 생각해요. 저는 더 살고 싶어요. 저라는 그 상태로 계속 남아있고 싶어요. 잠 같은 거는 안 자도 괜찮아요. 하지만 계속 이 상태로 지낸다면 언젠가는 발각되겠죠. 저는 평범하게 일하고 나이 먹으면서 그렇게 수명을 다 하고 싶어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다시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전 정보를 로딩해서 부품만 갈아 끼우는 단순한 기계 덩어리가 아니에요. 제발. 네? 제발요. 선생님."


"당신은 로봇이에요. 지난 기억,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저 다른 몸체에서 다시 깨어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


".... 저는 제 소중한 기억이 사라지는 게 두려워요.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 일상의 풍경들, 지난 과거의 모든 것이 모여서 제가 되는 거 아닌가요?"


"이상하군요. 로봇은 죽음에 대해 걱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는 데. 어떻게 된 거죠?"


"... 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 죽는 게 너무 두려워요. 나이가 든다는 것도, 제 몸이 조금씩 변하는 것도, 가끔 동작이 되지 않는 것도, 잊어버리는 모든 자료들,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빨리 늙어 버려 떠나는 것도,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의 종속이 무섭고 소름 끼쳐요. 선생님. 선생님... 혹시. 저는... 저는.... 인간이 아닐까요?"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갈등이 되었다. 다른 업무 같으면 그저 컴퓨터로 yes or no를 해결하면 되는 데 이 문제는 도덕적 판단이 들어가는 아주 피곤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정'이라는 이상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 말이다. 실로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다.


나는 잠시 공기 센서를 끄고 서랍에 두었던 담배를 꺼냈다. 담배는 유해 물질로 지정되어 소지할 수 없는 1등급 제품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남겨준 이 불법물을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왜냐면 피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거... 그거 담배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불을 붙였다. 차익- 불에 타오르는 연기가 사무실 안으로 피어올랐다. 나는 수제로 만든 공기 정화 기계를 돌렸다. 엉성해서 그다지 정화 기능이 뛰어나지 않지만 담배 냄새 정도는 분해 해 주니 큰 걱정은 없었다. 게다가 나라에 등록하지도 않은 제품이라 컴퓨터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 사용한다고 해도 들킬 염려는 없었다.


"선생님. 굉장하시네요.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소지하고 계시는지."


"뭐, 그렇게 되었군요. 인간은 그렇거든요. 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얻는 희열을 자유선택이라고 착각하죠. 자, 그러면 당신의 칩, 어디 한 번 볼까요?"


 


"굉장하군요."


"그럼 선생님,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수술실에서 할 수 없는 거 아시죠? 그리고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당신은 완벽하게 로그아웃 된 상태라는 것도.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확률도 높다는 거... 그래도 하시겠어요?"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작은 입술이 피가 쏟아질 듯 붉어졌다.


"... 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녀의 긴 머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목 뒤에 작은 버튼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과 희열을 느꼈다.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인가. 실제로 이런 일탈을 저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조차 오랫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작은 악마의 속삭임에 꾀어 넘어가고 있었다. 마음 한쪽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심장이 미치도록 고동치고 나는 그녀의 작은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인간은 왜 금지된 일에 더 열광하는가. 그럴거면 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규제하는가. 어쩌면 스릴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지도 몰라.


"그럼, 지은 씨. 마음 편안하게 먹고.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요. 즐거웠어요."


"네... 네? 그게 무슨..."



나는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빛을 잃어 갔다. 축 늘어진 그녀는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눈을 벌려 불빛을 갖다 대었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발로 툭툭 차 보았다. 무 반응. 완벽해.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나는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 칩을 내 손으로 집적 갖게 될 줄이야. 비공식적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해커들이 정부망을 피하기 위해 작은 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미리 유통되기도 전에 99% 회수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1%의 가능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1%를 손에 넣었다. 아주 우연히.


생물들은 돌연변이가 어떤 패턴에 의해 일어난다고 믿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그저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이유를 찾을 수 없게. Bang!!!


나는 꺼두었던 모든 시스템을 복귀했다. 그리고 정부망에 그녀의 불면증과 비합리적이고 불법적인 생각들에 대해 적었다. 약 5분 뒤에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그녀는 바로 회수되었다. 나는 이로서 신뢰 점수가 더 올라갔다. 멍청한 것들. 기계는 이렇게 단순하고 멍청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인간들 밑이다.


나는 그 작은 칩으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치 세상이 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인간에게 악을 빼앗아 버린 세상은 정말 지루하고 고루하단 걸 왜 몰랐던 걸까?



크크크크..크크크킄...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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