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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05. 2016

(1분소설) 유일무이

#클레멘타인 1분소설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기로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뿐.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게는 삶의 희망입니다.


희망을 버린 인간은

죄를 지은 인간의 삶보다 스스로에게 더 가혹하고 잔인한 것 아닌가요?



그녀를 알게 된 게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그녀와 처음 만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작은 동네에 새로운 가게가 생긴다는 건 언제나 사람들의 가십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매력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의 호기심은 증폭되죠.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나이는 몇인지,

집은 어딘지,

결혼은 했는지,

했다면 아이가 있는지,

안 했다면 애인이 있는지,

차는 있는지, 뭘 타는 지,



자신의 삶에 전혀 쓸모없는 타인의 정보와 사적인 질문들이지만 인간들은 어떻게든 그걸 알아내곤 서로 공유합니다.



그녀를 처음 마주친 날은 아침 출근 길이었죠.


작은 손뜨개방인듯 보이는 가게는 앨리스의 미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요.  그녀는 입간판을 새우고 있었는 데,12월 초의 겨울 바람은 유난히도 매서웠습니다.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한 간판이 쓰러지면서 우당탕 큰 소리가 났고 저는 어? 라는 말 한마디와 아무 생각없이 도와주러 다가갔죠.


그때 그냥 지나쳐야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새끼 손가락에 이어진 운명의 붉은 실은 그녀에게 당기고 있었죠


"도와드릴까요?"


불쑥 나타난 저를 보고는 그녀는 살짝 당황하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입간판을 지지하는 물통은 꽤 무겁거든요. 그녀는 혼자 힘으로 두 개를 이리 저리 들어보려 안간힘을 썼고,저는 말없이 번쩍 들어 올려


"가게 앞에 두면 되죠?"


라고 하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습니다 하고 웃었어요. 세상에서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본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저기... 괜찮으세요?"


그녀는 다정스럽게 물어봐 주었죠. 그리고 따뜻핫 차를 내어 준다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전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가는 길이었지만, 그냥 그대로 눌러 앉았어요.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요.



제길.

그때부터 그녀의 미소가 매일 날 미치게 만들었지요. 저는 이유없이 가게 앞을 둘러서 지나가곤 했어요. 아무리 약속에 늦더라도 그렇게 둘러 다녔어요.어쩌다 가게 안에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저는 꾸벅 인사를 하곤 했지요.

그러면 그녀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곤 했어요.제 하루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어디가세요?  차 한잔 하고 가세요^^~"


한 번은 그녀가 문 밖으로 나와 나를 불러 세웠어요. 매일 지나가도 딱히 그녀에게 말할 건덕지가 없었는 데 ...


 저는 완전 좋아하며 그녀의 가게로 들어갔죠.


가게 안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옷과 소품들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실 뭉치 냄새와 먼지 냄새 갖가지 섬유들이 뿜어내는 냄새가 베어났죠.

왠지 환상적인 기분이었어요.


그녀는 그녀만큼  예쁜 찻잔을 내려 놓았어요.


"남편이 중국 출장갔다가 사온 찻잎인데 드셔보세요.^^"


...



저는 저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남편이라니. 유부녀였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죠.


" 결혼...하셨군요..."


"네 벌써 5년차 주부인걸요. 아직 결혼 안 하셨나봐요~"


"아...네"


나는 갑자기 차를 마시는데 목이 점점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이 떨려 잔을 내려 놓는 데, 뜨거운 심장이 바닥으로 철퍽 하고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어요.


그 한마디에

제 하루는 금새 우울해졌죠.단 몇 초만에.



그래요.

저는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해야합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랑이 더 아프다는걸 알까요. 세상에 아는 사람이라곤 딱 한사람, 나밖에 없는 외로운 사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쁜 사랑. 하필 그런 사랑에 빠져 버리다니 참으로 가혹하네요. 정말 몇 년만에 설레임인데.



그 날 이후로 전 그 골목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내심 궁금해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자 왠지 우쭐해지기도 했지요.


날 궁금해하고 있을거야.

내 생각하고 있을거야.

매일 보던 사이니까.


그런 생각이 드니 다른 연인이 있는 그녀에게 내리는 유일한 벌이라고 여겨졌어요.


그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한달을 버텼습니다. 네,버텼다는 표현이 정확해요.




그러다 어느날 새벽

차가운 기운에 눈을 떳을 때.

내가 그 사람에게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사무치게 외로워졌어요.


짧은 눈 마주침.

틀에 박힌 안부,

같이 있을 때 당신 숨소리.



그 모든 감정 속의 내가 진짜인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는거. 내 착각일 뿐이라는 거.


날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어디에도 없다는 걸 뼛속 깊숙히 느끼게 되요. 마치 꿈에서 깨듯이.



그날 밤 저는 엉엉 소리내서 울었습니다.

 방 안가득히 제 울음소리만 메아리처럼 맴돌고 우물우물 당신 이름만 되뇌어 보죠. 그리고 지금 당장 당신을 만나고 싶은 데, 당신 이름을 불러야 옳은 것 같은데. 


심장이 미친듯이 시큰거리더군요.


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요. 

아 ,도저히 안되겠어요.


이런.

지독한 사랑에 빠져 버려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군요.


네.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기로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뿐.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게는 삶의 희망입니다. 그게 제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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