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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06. 2016

(1분 소설) 마을 버스

#클레멘타인 1분소설

한 번 출발한 버스는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종 목적지에 갈때까지 정해진 노선을 이탈하지 않는다. 단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쳇바퀴 도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마을 버스를 운행한지 벌써 15년 째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별 다른 기술이 없던 저는 일찍 이 길로 접어들었죠.이 일은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입니다. 그다지 창의력이나 저의 의견이 필요한 일은 아니예요.하지만 저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일은

누군가를 인생의 목적지에 내려 주는 과정 이거든요.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일 같은 버스를 같은 시간에 타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특히 마을 버스는 골목 골목을 누비기 때문에 15년쯤 되면 누가 어디서 언제 타고 내리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네. 저는 은연중에 그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녀의 일상도.


그녀를 처음 본 건 제가 첫 출근하던 아침 이었습니다. 삼 일간 그 전 선배를 따라 옆에 타고 다니면서 배우긴 했지만, 막상 혼자 이 많은 승객의 하루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더라구요.


혹여나 신호를 잘 못 받아 지각하면 어쩌나, 승차 지점을 잘 못 서면 어쩌나, 노선을 이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죠.


그러다 첫 날 한 할머니가 뒷 문으로 올라타신 거예요.저는 미쳐 보지 못하고 문을 닫으려다 할머니의 욕설과 호통을 세 정거장 내내 들어야했죠.


물론 뒤로 탄걸 못 본 제 잘 못도 있지만 무작정 뒤로 승차한 할머니도 잘 한건 없는 데... 은근히 짜증나더라구요.


할머니가 내리고 나서야 조금 긴장이 풀렸는 데 뒷 문에서 또


아저씨!내릴 게요! 문 열어 주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저는 깜짝 놀라 룸미러를 봤는 데 어린 학생이 뒷 문 앞에서 절 보고 있더군요. 하차 벨 울린 걸 못 들었나 하고 살펴보니 벨은 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학생

내릴려면 벨을 미리 눌러야지!

지금 안 돼!


하고 단호하게 얘기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버스 안은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승객들은 저마다 한 소리 하시더라구요.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 해야하나 하는 데 뒷 자리에서


"아 기사양반, 거 한번 서면 어때서 애를 울리고 그래? 거 좀 잠깐 섭시다."


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다섯 명의 승객이 저마다 그 말을 거드는거 아니겠어요. 정석대로 하는 데도 불만이니 괜히 무안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나는 다음 정거장에 차를 세우고 뒷 문을 열었어요. 빨리 이상황을 탈출하고 싶었죠. 그런데 그 아이는 울면서 뛰는 거예요. 정작 도망가고 싶은 건 난데.



나는 머릿 속에 퇴근이라는 두 글자만 계속 써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어제 죄송했어요. 이거 드세요."


다음날 버스에 오른 여학생이 내민 가나 초코렛이었습니다.


"어 그래 고마워."


하며 어떨결에 받았는데 기분이 썩 나쁘지 않더라구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구나. 세상살이가 다 그런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 뒤로 그 소녀는 매일 초코렛을 나에게 선물로 주더군요. 어떤 날은 부담스러워서 그만 줘도 된다고 했지만 부끄러워하는 소녀를 보니 또 울면서 내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뭐, 그냥 받았죠.


혹시 얘 나 좋아하나?


주변 동료들이 그런 얘기 자꾸 꺼내서 그런 건가 하고 유심히 보기도 했는 데 또 그건 아닌거 같더라구요.


버스 탈때 빼고는 눈길조차 안 주거든요. 일반 승객과 다름 없는 모습.


어릴 때 선생님이나 삼촌들 좋아할 때 있잖아요. 뭐 그저 그런건가 하고 말았죠.



그리고 1년,2년,3년...


어느 덧 일상은 익숙해지고 마을 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일상 이야기도 하며 지내는 날들이 계속 되었어요.


그리고 소녀는 대학에 합격 했다며 말을 건네왔어요.


멀리 지방으로 가게 되어 한동안 못 볼 거라는 말도...


나는 축하를 해주면서 내심 서운한 감정이 들더라구요. 사람 정이 뭐라고. 매일 아침 보던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걸까?


 아무튼 그날 이후로 소녀의 초코렛을 받을 일은 없어졌고, 매년 발렌타인데이가 오면 떠오르는 장면일뿐 점차 내 기억에서도 희미해졌어요.




그때는 그렇게 한낱 추억이 될 줄 알았던 겁니다.



버스는 늘 그렇듯 정해진 노선을 달립니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 어떤 생물체 같기도 해요. 절대 그 운명같은 노선을 이탈 할 수 없는 존재.



5년 지난 추석이었습니다.


나름 능숙해진 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어요. 저도 빨리 일을 마치고 제사갈 생각을 하고 있었죠.


헌데 종점에 도착해도 내리지 않는 손님이 있어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손님!종점입니다. 손님!"


술에 취해 잠든 건지 승객은 일머날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나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좌석 맨 끝자리로 가 그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저기요. 손님, 손님, 종점이에요. 일어나보세요."

"으으음?"

.

.

.



"어? 아...저씨?"

"너?"




늘어뜨린 머리를 걷어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초코렛 소녀였어요. 





그래요.

그녀는 졸업 후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한 동안은 불규직한 시간에 정장차림으로 다니더니, 어느 날 부터는 매일 이른 아침에 타기 시작했지요. 그녀의 운명은 어쩌면 이 마을 버스를 타야만 하는 거였을까요?


벌써 25살쯤 되었을 껀데,

아직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었지만,옅은 화장에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그녀는 이제 아가씨티가 제법났지요.


어느 날 그녀가 쵸코렛을 내밀었어요. 저는 벙찐 얼굴로 그녀를 보았는 데


"발렌타인데이래요"


라고 하며 자신의 종이가방을 들어보였죠. 아, 나눠주는 사람 중에 하나구나. 그녀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은은한 샴푸 냄새가 퍼졌어요. 저는 속이 미식미식하기도 하고 울렁거려서 기분이 이상했죠. 가끔 룸미러에 비친 그녀를 곁눈질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그녀가 내리는 걸 보니 곧 괜찮아지더라구요.


저는 버스를 잠시 세우고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휴.



나는 그녀가 타는 정류장에 가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는 시간이 되이 될 때까지 매일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버렸습니다.


자고로 승객이 탈 버스를 기다려야하는 거 아니예요?


저는 어찌된 일인지 거꾸로 되어버렸어요. 그녀를 기다리는 그녀만의 기사가 된 기분이네요. 오래전에 제가 태어났다면 말을 타는 왕자였을텐데. 현대에는 버스로 바뀌어버린거죠 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어요.


저는 점점 사랑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어요.어쩌다 내 근무시간과 그녀가 버스 타는 시간이 엇갈리기라도 하면 이유없이 짜증이 솟구쳤어요. 때로는 다른 사람이랑 순번을 바꾸거나, 휴일을 반납하고 운행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정말 사람 사는 일이 아니더군요.


그렇게 하루 이틀

나도 모르게 그녀를 관찰하게 되더라구요. 예쁘게 하고 나간 날이나 밤 늦게  막차를 타는 날은 누굴 만난 걸까하는 생각들.


아. 이러다 더 진짜 스토커라도 될 것 같아요. 저도 이러기는 싫은 데.


반복적으로 생각하다 좋아하게 된 건지, 좋아서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지 의아했지만 난 분명 그녀에게 빠져있었습니다. 이유도 원인도 불분명하게 말이죠.



사랑은 원래 그런 건가요?



그러나 고백을 한다던가,

따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왠지 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었고

딱히 대화도 한 적 없는 데 뭐라고 해야할지.


너무 어릴때부터 봐서 그런가 ...

그냥 막연하게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이런 생각도 마치 정해진 노선에

정해진 시간의 순서로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요. 그녀를 향한 다른 행동은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못난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제 멈출 수없어요. 마음은 이미 출발해버린걸요.



저의 사랑은 마치 버스 노선 같네요.

매일 같은 곳을 맴돌지만 절대로 내 것이 아닌 그런 기분.



사랑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을까요?


한 번 출발한 버스는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종 목적지에 갈때까지 정해진 노선을 이탈하지 않는다. 단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쳇바퀴 도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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