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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10. 2016

(1분소설) 피를 먹는 새 1편

#클레멘타인 1분소설

유일, 명사,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의 단어. 나의 인생에서 갖고 싶었던 유일한 단어, 유일. 그토록 소중하고 가치적이며 외롭지만 강한 단어가 또 있을까. 나는 유일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의 유일한 존재가 되어 보고 싶었다. 그런 순간이 유일하게 지금 인 것 같다.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유일한 창문

     




잠을 못 잔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5평 남짓한 옥탑방의 유일한 구원은 바깥으로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였다. 4월 초봄의 생명력이 여기저기서 움트고 벚꽃이 심어진 동네 가로수길은 한창 축제 준비로 들썩 거렸다.      


나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 기사였지만 지금은 백수다. 추석을 앞두고 물건이 밀려 신호를 무시하고 급하게 운전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그 일로 나는 한쪽 다리를 영원히 잃었고 하루 아침에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병원비와 퇴직금, 그리고 위로금까지 받고 원치 않는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다리로 계속 일할 수도 없었다. 재활을 위해 적어도 2년에서 3년은 외다리로 버티는 법에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아둔 돈을 잘게 나누어 쓰면서 5평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죄 배달시키면 되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은 크게 없었다. 나는 집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거나 E-BOOK을 읽었다. 가끔은 전화로 도우미를 불러 일상의 무료함을 달랬고, 소셜에서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어차피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도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밥, 혼술’등을 인증하는 시대이기에 자신의 처지가 남들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 친구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없고 3년 전에 잠깐 사귀던 여직원이 한 명 있었는 데, 몇 달 동안은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분위기가 좋았지만 얼마뒤 회사를 옮기며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첩장을 내밀며 축하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청첩을 갈가리 찢고 일어섰다. 내가 생각해도 좀 무모한 짓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쾌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만나는 동안은 잘 보이려고 돈 쓰고, 마음 쓰고, 애쓰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최근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바로 꿈 때문이다.


밤마다 가위에 자꾸 눌리는 데 꿈을 꾸는 건 아니고 반은 의식이 있고, 몸만 잠든 것 같은, 그런 가수 면상태에 빠지곤 한다.


귀에서 알 수 없는 새소리 같은 게 계속 울려 퍼지는 데 그 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깝다.


나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며 가위를 풀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악마의 눌림에서 벗어나는 건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밤새 나 혼자만의 싸움에 시달리다 보면 잠자는 게 두려워질 정도다. 눈을 뜨면 아무도 없는 그런 꺼먼 공간 속에서 나는 심장의 두근 거림을 느낀다.


아무도 없어. 아무리 소리 쳐도 아무도 없어.


나는 그 사실이 더 두려웠다.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없어. 내 곁에는.



자꾸 낮에 쪽잠이 들거나 TV를 보다가 깜빡 잠드는 일이 늘어났다.


때문에 밤마다 지독하게 잠을 설치는 사이클이 4일째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를 소셜 상에 올려놓았다. 자주 대화 하던 옛날 선배 형의 걱정하는 덧글이 하나 달리고, 관심 표현이 3개 정도 올라왔다.


나는 누가 나에게 관심을 표했는지 확인한 후, 그 사람들의 소셜 계정에 답방을 다녔다. 몇 명 안되니 그들의 계정을 살펴보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낮잠 절대 금지.”


나는 조언에 따라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낮에 잠들지 않기로 했다. 밤새 뒤척이다 밝아지는 햇볕을 볼 때마다 나는 죄인의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잠을 이길 수 없는 법, 오후만 되면 나는 어느 덧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으- 안돼, 안돼.


나는 벌떡 일어나 내 방의 유일한 구원인 작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창문 턱에 무책임하게 놓여 있는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

.

뭐지?     


나는 흠칫 놀라 잠시 멍하게 서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었다. 5초간 지켜보니 움직이지 않는 게 ‘그것’은 ‘죽은 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저런 게 나왔담?      


나는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은 새라고 하기엔 구조가 조금 이상했다.


 머리가 몸에 비해 유난하게 컸다. 몸은 갓 태어난 아기새처럼 검지 손가락 한 개 정도 길이에 마른 나뭇 가지처럼 비썩 말랐다.


붉은 살갗에 털도 거의 없고 몸통은 새의 형태만 남은 것처럼 비썩 곯았으나, 기괴하게도 머리가 성인 여자 주먹 크기만큼 컸다. 주둥이는 주사 바늘처럼 삐죽하고 길었는 데, 예전 TV에서 봤던 물총새가 떠올랐다.     


‘죽은 건가?’     


컵라면 먹을 때 쓰던 나무젓가락 하나를 들고, ‘새’라고  추정되는 ‘그 것’을 툭, 찔러보았다. ‘그 것’은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툭, 툭. 혹시나 갑자기 일어나 푸드덕 거릴 까 봐 나는 조심 또 조심했다.


이윽고 ‘아’ 하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들고 기괴하게 생긴 새라고 추정되는 ‘그 것’의 사진을 찍어 소셜에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틀에 있던 새(?), 혹시 종류 아시는 분?”     


나는 새라고 추정되는 '그 것'이 지붕 위를 날다가 죽어서 우연찮게 떨어진 건지, 내가 못 본 사이 나의 유일한 창문에 부딪힌 건지, 혹은 나약하다고 어미가 물어다 이곳에 버린 건지, 창틀에서 놀다가 어떤 이유로 죽은 건지 여러가지 가능성을 짚어 보았다. 


도대체 하고 많은 이 서울 집 중에서 왜 하필 나의 유일한 창문에서 죽은 거람? 정말 지독하게도 재수 없는 인생이구나.


악몽을 꾸고 일어난 아침처럼 이유 없이 불길한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어 손에다 끼우고 창틀에 있는 ‘그것’을 집었다. 으웩. 손에 느껴지는 물컹한 기운이 영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죽은 채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유일한 창문을 볼 때마다 죽음을 봐야 하는 일은 손으로 느끼는 이 감촉보다 더 참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봉지에 담은 ‘그것’을 잠시 바닥에 내려 두고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부스럭. 나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까만 봉지 안에서 미세한 꿈틀 거림이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손에 든 채 한 동안 죽음에서 돌아온 ‘그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에이씨. 그냥 버릴까, 어차피 지금 밖에 내놓는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데.’     


그런 생각이 들다 나는 갑자기 소셜에서 집에서 기르던 동물들을 봉투에 묶어 버리다 다른 사람에게 적발되어 사람들에게 욕먹던 인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에 본인도 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오전에 이 일에 대해 벌써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던가? 그때는 진짜 죽은 줄로만 알았건만, 이렇게 살아 있는 채로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면 정말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이 찍혀 버릴 것 같다. 제기랄.



부스럭부스럭.




시간이 갈 수록 ‘그 것’의 활동은 점점 격해졌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발버둥 치기라도 하듯이, 까만 봉지는 이제 이리 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 어쩔 수 없이 일단 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 것'을 어디에 담아 두어야 할지 난감해졌다. 저대로 까만 봉지에 묶어 놓으려니 너무 부스럭부스럭 거려 신경이 곤두 섰다.



밤새도록 저런다면 나는 미쳐버릴 지도 몰라.




나는 옥상으로 나가 재활용품 담아 두었던 택배 박스 하나를 비웠다. 그리고 까만 봉지를 열어 택배 박스에 거꾸로 들고 봉지를 탈탈 털어냈다. 속에서 ‘그 것’이 툭 하고 떨어졌다. 으- 머리가 유난히 커서 머리부터 툭 하고 떨어지더니 잘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참을 기우뚱 거리더니 겨우 안정을 찾고 자리에 앉았다.


'그 것'이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천천히 나를 쳐다보는 까만 콩 같은 동그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나만 바라봤다. 진짜 괴상하게도 생겼네. 으휴. 나는 조심히 가까이 다가가 좀 더 자세히 관찰하였다.


평소에 보던 새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삐죽한 부리와 작은 날개가 두 개, 병아리 발 같은 다리가 두 개 달린 거 보니 조류로 추정된다. 하지만 도대체 저렇게 비정상적으로 머리만 큰 새가 어디있담?




너도 나처럼 장애를 갖고 태어난 거니?          




      

나는 아까 소셜에 올려둔 포스팅에 혹시나 아는 사람이 답글이라도 올렸을까 하는 생각으로 로그인했다.  헉!


로그인하자마자 ‘새소식 3000개’라는 알림 창을 봤다. 뭐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야? 혹, 해킹? 뭔가 잘 못 된 건가?



나는 평소에 그다지 인기 있는 계정도 아니고, 사람들이 정말 덧글을 많이 남겨봤자 10개도 못 넘었다. 그런데 3000개라니...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확인했다.    

  


오전에 올린 ‘죽은 새’에 대한 포스팅이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그 기괴한 새의 사진에 관심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의 추측성 덧글이 달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진을 조작했다는 둥, 어떤 사람은 저건 새가 아니라 외계에서 온 물체라는 둥 별 이상한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내가 관심 끌려고 새를 죽인 사람이라고 인신공격하는 덧글도 있었고, 날 인신공격하는 사람을 다시 공격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미친놈들.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그렇게 나의 계정은 순식간에 점점 인기를 더해갔고, 공유 숫자가 늘어날 수록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인터넷에 확산되었다. 내가 보는 중에도 친구 신청이 기하급수 적으로 밀려들어왔고 나는 단 1시간 만에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을 넋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이상하긴 하지만,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이런 괴물 같은 게 뭐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나는 박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를 한참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진짜 못생겼다. 살아있긴 하지만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어떤 생각이 나의 뇌리를 도끼로 찍어내듯이 강렬하게 박혔다.


     

‘저 녀석은 살아야만 해.’     



나는 다시 한번 새를 확인한 후 박스를 잘 덮어 두고 서둘러 잠바를 챙겨 입고 나갔다. 나의 소셜 계정에 새로운 소식이 이미 1만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구독하고 틈틈히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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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보다 더 상상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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