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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11. 2016

(1분소설) 피를 먹는 새 2편

#클레멘타인 1분소설

유일, 명사,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의 단어. 나의 인생에서 갖고 싶었던 유일한 단어, 유일. 그토록 소중하고 가치적이며 외롭지만 강한 단어가 또 있을까. 나는 유일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의 유일한 존재가 되어 보고 싶었다. 그런 순간이 유일하게 지금 인 것 같다.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1분 소설 피를 먹는 새

https://brunch.co.kr/@clementine/293지난 1편 보러 가기



유일한 보물


엘리베이터가 없는 옥탑이라 삼층 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갔다. 목발을 짚고 가다가다 너무 힘들어 택시를 탔다. 휴. 동네의 유일한 할인 매장이 15분 거리에 있어 내겐 너무 벅찼다.


매장으로 들어가 펫 용품 코너를 둘러보았다. 크기가 다양한 새 장이 몇 개 정돈되어 있었고, 나는 그중에 가격이 제일 저렴한 걸로 골라 직원을 불렀다.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카트를 미는 건 서커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직원이 가져온 카트에 새 모이도 제일 싼 걸로 하나 챙겨 들었다.


매장에는 판매 중인 새 몇 마리가 새장 속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애완 코너에 있는 새나 토끼, 거북이, 열대어 따위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노란 새 한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 데, 아무리 봐도 우리 집에 있는 새와는 다르게 이쁘게 생겼다.


털도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색도 화려하고 종알종알 우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왜 집에 동물들을 데리고 가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괴하게 생긴 나의 새의 인기가 이해가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별종은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 저것 좀 봐. 물고기 죽었나 봐.”

“아유, 그러게. 더럽게. 여기 관리 안 하나? 저봐. 물고기 저렇게 죽는 데... 너 진짜 키울 자신 있어?”

“응.”

“그럼 집에 가서 좀 더 생각해보고 아빠한테 말해보자.”

오예!”     


아이와 엄마는 마치 고장 난 불량 제품이라도 본 듯 죽은 물고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갔다. 나는 배를 까뒤집은 물고기를 보자 갑자기 집에 있는 새가 걱정이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서둘러 계산대로 향했다. 혹여나 새가 죽으면 환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수증을 잘 챙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동네는 벚꽃 축제 행사장 설치로 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있었다. 덕분에 차가 막혀 택시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제기럴. 나는 마음이 다급해져 괜한 신경질이 났다. 가로수에는 꽃망울이 올망졸망 달려있었다. 곧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물론 걷기도 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집으로 돌아와 녀석을 새장에 조심히 집어넣었다. 잘은 모르지만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암 그래야지. 어떻게 사온 건데.


그러나 녀석은 모이를 줘도 먹지 않았다.


"응? 자! 여기 여기! 먹어봐? 응?냠냠. 냠냠해봐."


눈 앞에 몇 개 떨어트려 놓아도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씨. 환불하러 또 나가야 하나. 망할 놈의 새. 지놈 때문에 마트까지 다녀왔구만. 다리도 불편한데 별 꼴같지 않은 게 반찬 투정이었다. 아무거나 좀, 쳐 먹지 좀.



에이...너무 싼 걸 사 왔나?


나는 좀 더 고급스러운 걸 사왔으면 헛걸음 안 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저녁이 되자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짐승들은 아프면 곡기를 끊는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어디 아파서 못 먹는 건가? 지렁이나 이런 걸 사 올 걸 그랬나?    


짐승이 하나 생기자 나는 하루종일 녀석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tv에서 동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기억이 났다. 어미 새들이 벌레를 물어다가 입에 넣어 주는 그런 장면들을 생각하니 아! 차라리 낚시점에 들릴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 짜증 나.


점점 더 비실대는 놈을 보니 아무래도 영 살 가망이 없어 보이는 게 오늘 웬종일 괜한 헛수고를 한 것 같다.  벌써 저 병약한 새한테 쓴 돈이 10만 원이나 되는 데.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이 문제 역시 인터넷에 올려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릭-

녹화 버튼이 돌아가고

나는 생동감을 주고 싶어 최대한 앵글을 얼굴에 맞추었다. 으 진짜 못생겼네. 이게 뭐람.나는 10초간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새(?)가 다행히 살아났네요. 아직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 걱정이 큽니다. 어려서 그런지 모이를 줘도 안 먹는 데 혹시 다른 방법 없을까요?”          



그 글을 올림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덧글은 1초당 2개 3개 꼴로 올라왔고, 공유수는 움직이는 숫자처럼 쭉쭉 올라갔다. 이야. 멋진데?


사람들은 죽은 줄 알았던 새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흥분했다. 마치 날 성인군자 대하듯이 수많은 격려의 말을 보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장애가 있는 불쌍한 새를 돌보는 마음 따뜻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뭐.



결국 다음 날 아침,

나의 영상은 사이트 메인에 추천 영상으로 들어갔다. 조회수가 50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넘쳐나는 덧글들은 더 가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린 새에게 주는 모이는 따로 있다고 하고, 수많은 새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뒤섞여 자기 말이 맞다고 싸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들불처럼 번졌고 나의 소셜 계정은 금주의 핫한 이슈로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다 진짜야? 이거 몰래카메라 그런거 아니겠지? 나는 눈을 다시 부벼보았다. 숫자는 여전히 계속 오르고 있었다.




새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니면 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건가?




나는 신이 나서 답장을 하고 친구 수락을 하느라 몇 시간 동안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대부분 새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다. 뭔 개똥 같은 소리람? 어쩜 그리들 뻔뻔한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들이 우리 집에 오겠다고 난리였다. 진짜 다들 정신병자 같았다. 



이게 뭐라고 다들 이러는지.


그날 오후, 나는 선배 형의 조언에 따라 영상에 광고를 달면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세 새장 값과 새 모이 값이 복구되었다. 이렇게 손쉽게 돈을 벌다니. 이런 게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내 다리도 멀쩡 했을 텐데. 그동안 나의 고된 삶이 멍청해 보였다.




때문에 점차 나는 새에 관한 이야기를 더 자주 올리게 되었다.     



일주일 뒤.

40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나는 점차 연예인 못 지 않은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소식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일일이 확인할 수 초자 없었다.


그래.

기괴함만으로도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그러나 이런 나의 인기와는 다르게 새는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모이를 먹지 않았다. 움직임도 훨씬 적어졌고 그나마 간간히 물만 조금씩 넘기는 정도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시킨 지렁이도 벌레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넌 도대체 뭘 먹고 사니? 자꾸 이렇게 아빠 속 썩일꺼야?


일주일 동안 나는 새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적어 올렸었다.


건강은 어떠냐, 새는 잘 있냐, 너무 귀엽다, 보고 싶다는 둥 마치 자신이 키우는 것 이상의 관심을 보였다. 나는 고맙다는 답장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자기 가족 걱정이나 할 것이지. 소셜 이란 관계라는 이름 아래 시간 낭비하기 좋은 낭만적인 시스템이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의 헛소리가 가증스럽기도 하면서, 또 한 편으로 반응이 미지근하면 불안해졌다.     



 “이 녀석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좋은 이름 추천받을 게요.”    



피닉스.

녀석의 이름은  부활되었다는 의미에서 피닉스가 되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피닉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꺼먼 눈동자로 말없이 날 응시할 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에이. 재미없어. 애완이란 자고로 주인을 알아보는 맛으로 키우는 건데. 차라리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울기라도 하면 좀 더 인기 있을 텐데, 못 생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새였다. 얼굴로만 열일 중인 피닉스에게 뭔가 다른 매력이 필요했다.



으.

벌써 이주일 째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새장에서 골골 거리는 피닉스를 보니 미칠 것 같았다.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 영상 찍기도 힘들었다.

 

젓가락으로 쿡 쿡 찔러 잠을 깨워야 했다. 사람들은 매일 좀 어떠냐고 병원에 가보라고 아우성이었다. 내 다리도 정상이 아니라고. 젠장. 새가 밥을 먹지 않자 점차 내가 나쁜 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안 먹는 게 내 탓이니?



안돼. 이러다 죽으면 나는 정말 욕을 먹을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또 죽을 것 같아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진짜 어떻게든 밥을 먹여서 사람들에게 좀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불어 혹시라도 더 해괴한 소리라도 낼 줄 안다면 좋을 텐데... 그래야 사람들의 이상한 것에 끌리는 욕구를 채워 줄 텐데.


자기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모습과 약간만 달라도 혐오하고 멸시하는 인간들.  길을 걷다 펄럭거리는 내 한쪽 바짓단을 안 보는 척 곁눈질하는 인간들. 알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인간들. 집에 가서 "근데 그 사람 장애인이던걸? 한 쪽 다리가 없던 데?" 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수다 떠는 사람들.



그런 세상 속에 나타난 녀석은 그야 말로 가십거리였다. 커다란 머리가 주는 기괴한 매력이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동시에 동정심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도 시간에 따라 눈에 익자 사람들은 귀여움을 찾아내기도 했다.

비실거려 답답하긴 하지만, 뭐 어찌 되었든  나의 유일한 보물 1호였다




그러니까 피닉스 밥 좀 먹자. 응? 아빠가 이렇게 부탁한다. 응?


축제가 시작되고 봄 비가 장마처럼 내리던 날이었다.




“저, 이거 형탁이 전화 맞나요?”



걱정과 불안의 살얼음을 깨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자정이 다 되서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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