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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13. 2016

(1분소설)피를 먹는 새 3편

#클레멘타인 1분소설

유일, 명사,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의 단어. 나의 인생에서 갖고 싶었던 유일한 단어, 유일. 그토록 소중하고 가치적이며 외롭지만 강한 단어가 또 있을까. 나는 유일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의 유일한 존재가 되어 보고 싶었다. 그런 순간이 유일하게 지금 인 것 같다.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유일한 손님




“저, 형탁이 니?”


“누구?”


“너 벌써 내 목소리도 잊어버린 거야? 내가 누구게?”


“... 소희구나. 오랜만이네.”          



그녀는 3년 전쯤 회사에 같이 다니던 전 여자 친구이었다. 사내 연애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밀 연애를 했다. 나름 스릴도 있고 재미있었다.


회식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술에 취해 서로의 몸과 적당히 사귀다가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시집간 후 멀어졌다.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그래, 외로워서 만난 사이였다.


그래도 만나는 동안 꽤 좋아했는 데. 그런 그녀가 결혼 한 뒤로 처음 연락하는 지금이다. 지금이라니.


물론 인터넷에서 피닉스의 영상을 봤다고 했다.     



“근데 그거 정말 니가 키우는 거야?”


“응.”


“진짜 신기하다. 혹시 시간 되면 나도 보러 가도 돼?”


“응? 아... 뭐. 그래. 그런데 이 녀석이 밥을 잘 안 먹어서. ”     


그녀는 어릴 때 새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며 좋아했다. 나는 오랜만에 그녀를 볼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두근 거렸다. 얼마 전에 이혼 도장을 찍었고 지금은 돌싱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구청에 결혼 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아 이혼 절차는 필요 없었다나? 그래. 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사람들은 기록이 남는 걸 두려워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데 그게 중요한 가? 사랑의 흔적이 아닌 뭔가 군대 영창이라도 다녀온 듯 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마치 범죄자가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빨간 줄 안 간 것과 비슷한 건가? 아무튼 그녀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니 나는 내심 기대가 되었다. 역시. 그래도 내 생각이 아직 나나 보구나?     


나는 그녀와 전화를 끊고 천장을 보며 싱숭생숭하고 있었다. 파닥파닥 소리가 나는 새장을 쳐다보았다. 이게 다 니 덕이다. 집에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도 생기고 수익도 생기고 여자도 생기다니 정말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 같다.


희망을 주는 ‘파랑새’? 피닉스가 온 뒤로 나의 인생은 암울한 구렁텅이에서 건져진 것 같다.      




잠깐 내 얘기를 짧게 하자면,


지난 35년 동안 길을 걸어도 나에게 눈길 하나 주는 사람 없던 인생이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내 얼굴에 난 커다란 종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눈가에 붙어 있던 쥐젖 같은 종기는 엄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컸다. 누가 봐도 불편한 모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얼굴에 커다란 종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놀림을 받았고, 걱정을 받았고, 무시를 당했고, 왕따를 당했다.      


신체적으로 큰 장애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약간의 뒤틀림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과도한 관심과 숨은 멸시, 걱정하듯 조롱 섞인 말들에 마음에 장애가 생겨버렸다. 왠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외출도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것도 두려워했고, 길을 걸을 때도 고개를 숙이고 걸어 다녔다. 한 때는 한쪽 머리를 길러 반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일일 뿐이었다.      


결국,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돈을 모아 수술을 해 보려고 이곳저곳 알아보았지만, 눈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못 했다가는 한쪽 눈이 영원히 실명될 수 있다는 소리만 되돌아 올뿐 어떤 의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눈 한쪽을 잃으면 진짜 장애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도저히 내 인생에서 사라질 수 없는 그런 암덩어리 같은 존재가 하필이면 얼굴에 있다는 것이 저주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얼굴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었다.


졸업 후에도 면접에서는 번번이 떨어지기 일수였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택배 회사에 취업했다. 월급은 적고 몸은 고되었지만 만족하고 살았다. 대신 배달할 때 늘 도수 없는 커다란 안경을 써야 했다. 그렇게 나의 저주를 딛고 악착같이 살아보려던 그 일도 결국 저주의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이 사라진 진짜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이게 간결한 나의 삶이다.

      





이토록 저주스러운 생이라니.

나는 매번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저주를 내렸다. 세상에 악마만 존재할 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악마일 것이다. 어떻게 나약한 나 같은 인간에게 이리도 잔인하게 굴 수가 있는 걸까? 세상에 돈 많은 놈들, 살인자들, 더러운 정치인들, 사기꾼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다 뽕빨나게 잘 사는 데 왜, 하필, 나 같이 없는 놈에게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걸었단 말인가?      




누군가에게 매번 이유 없는 벌을 내린다면 아마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들은 구름이 걷히 듯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내 인생의 맑은 날이 오는 것 같다. 그런 지독한 저주도 시간이 지나면 풀리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나는 당할 만큼 다 당한 것인가? 나에게 나보다 더 기괴한 이 피닉스가 온 이후로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비록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만 나는 스타였고, 현실의 길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상관없다. 요즘은 오히려 인터넷에서 힘을 발휘하는 세상 아닌가. 나는 그것이라도 만족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저들이 과연 나를 실제로 만나도 저렇게 따뜻하게 대해 줄까? 이 기괴한 새가 없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줄까?


그래도 지난 내 삶에 비춰볼 때 지금의 삶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생각되었다. 별종들에게 오프라인 세상보다 훨씬 따뜻한 공간이 바로 인터넷 세상이다. 



그러고보니 불편한 모습으로 살기 위해 꿈틀 거리고 있는 저 해괴한 녀석이

왠지 날 닮은 것 같아 더 애착이 갔다.     




쾅쾅쾅-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녀는 문 앞에서 펄럭이는 나의 한 쪽 바지를 보며 한 참을 서 있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꽤 놀란 눈치였지만 티를 안 내려고 안간힘 쓰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리에 대한 질문 없이 금세 밝은 얼굴로 '잘 지냈냐'며 들어왔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피닉스를 보자마자 환호하며 다가갔다.      


“우왓! 네가 피닉스구나. 너 진짜 재밌게 생겼다야.!”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새를 관찰했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부터 마구 찍어 댔다. 새는 처음 보는 낯선 이에 당황했는지 목을 잔뜩 움츠렸다. 그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들고 온 종이 가방을 열었다.      



“피닉스~피닉스~, 배고프지? 언니가 맛있는 거 사 왔다.”     



그녀는 작은 곽에서 갯지렁이를 꺼냈다. 뭐야, 내꺼나 사 올 것이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형탁아, 혹시 비닐장갑 같은 거 있어? 지렁이 으깨서 먹여 보자.”


“그런 거 없는 데. 고무장갑은 있어.”


“음. 그럼 그거라도 일단 줘봐. 새를 잡고 입을 벌려야 하거든.”     



그녀는 재빠르게 모든 것을 세팅했다. 마치 커다란 수술이라도 벌어지는 현장 같았다. 그녀와 나는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못 한 채 새를 둘러싸고 앉았다. 뭐람.


나는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녀가 정말 내가 아닌 새를 보고 싶어서 온 거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갑자기 내가 새보다 못 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 저 녀석이 아니면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마실 것 좀 줄까?”     


그녀는 나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새에 집중했다. 아 예예. 그녀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의 눈빛 같았다. 나는 나의 새에 너무 가까이 가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세균 옮을지도 몰라. 아직 건강한 건 아니거든.”


“에이. 뭐 어때. 넌 같이 살면서 뭘.  피닉스야~맘마 먹자.”


“그런데 너 이런 건 언제 해 본거야?”


“응. 어릴 때. 우리 집에 새 한쌍이 있었거든. 카나리아였나? 아무튼 꽤 귀여웠는 데. 그때 알도 낳고 새끼도 키우는 것 까지 다 봤다니까. 그리고 카나리아 노랫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 새가 새끼 새를 다 쪼아서 죽여 버리더라고.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그래서 새끼 새를 따로 놔두고 내가 밥을 먹였지.”


“그래? 참 별일도 다 있구나.”


“그런데 피닉스 무슨 종류야? 너무 웃기게 생겼어. 인터넷으로 봤을 때 보다 머리가 더 큰 것 같아. 귀엽다 야."


“나도 모르겠어. 다들 처음 보는 새라고 하니까. 외래종인가?”


“하긴. 새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 있지? 그 사람들은 새로운 종의 새를 발견하는 게 가장 큰 기쁨이래. 그래서 세상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가 나타나면 사진을 찍어두고 자신이 이름을 붙인다나 어쩐다나. 그렇게 새 이름을 등록할 수 있대. 너도 등록해봐. 혹시 알아? 네가 위대한 발견의 첫 번째 사람이 될지.”     


그녀는 왼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과감하게 녀석을 집어 들었다. 경험자는 다르긴 다르구나.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지켜만 봤다. 마치 어린아이를 의사에게 맡긴 부모가 된 심정이었다.      




“거기 모이 좀 줘봐.”


“여기.”     


그녀는 한 손으로 새의 등을 받치고 배를  뒤집어 움켜쥐었다. 뒷 머리가 고정된 녀석은 몸을 바둥거렸지만 아무래도 커다란 머리가 잡힌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얘가 입을 왜 이렇게 안 벌리지. 형탁아 내 오른손 장갑 좀 벗겨봐. 불편해서 안 되겠어. 부리가 작으니까 장갑으로 못 벌리겠다.”     


그녀는 오른손의 고무장갑을 벗고, 짓이겨진 지렁이를 손가락으로 꼬집해서 집어 들었다. 나는 으윽. 하는 소리와 함께 인상이 절로 찌푸려 졌다. 지렁이를 저렇게 막무가내로 잡는 그녀가 대단해 보이기 까지 했다. 나는 비위가 약해 벌레만 봐도 오돌도돌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오른손이 녀석의 부리 가까이 갔다. 녀석은 마치 사약이라도 받는 것처럼 앙다문 입을 벌리지 않았다. 나름 몸부림치며 버둥거렸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였다. 커다란 인간의 손아귀 속에 있는 녀석은 정말 연약하고 가여운 작은 아기 새로 보였다. 나는 막무가내로 입을 벌리는 그녀의 행동에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야, 그렇게 억지로 먹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라도 먹여야지. 안 그러면 죽을걸?”


“그건 그렇지만,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얘 굶은 지 며칠 됐어?”          


나는 다시 입을 다물고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봐야 했다. 일종의 고문 같아 보였다. 그녀는 고문관이고 나는 곁에서 말없이 동조하는 그녀의 부하이다. 피닉스는 고문당하는 어떤 존재,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더 강한 힘으로 피닉스의 부리를 여는 그녀의 손. 그때였다.



    

“아얏! 악!”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피닉스를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닥에 나뒹구는 피닉스는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뒤집혀 있었다.     




“왜왜? 왜?”


“아, 아파.”     


그녀의 오른손 검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으악! 뭐야, 물린 거야? 응?? 물렸어? 어디 봐.”


“아...모르겠어. 순식간이라. 부리로 쪼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아파. 휴지 좀.”


“어? 어어. 어 잠깐만.”     


나는 너무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휴지를 찾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 순간 또다시 들리는 그녀의 두 번째 비명 소리.     




“꺄악! 이거 뭐야 이거 왜 이래?”


“왜? 왜? 또왜?”     




나는 다급하게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 그녀는 두 팔을 뒤로한 채 아까 있던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다지 변한 건 없어 보이는 데 도대체 여자들은 왜 툭하면 소리를 지르는 거야.

     

“왜? 왜 무슨 일 이냐니까?”


“저.. 저기. 저것 좀 봐.”


“뭐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저기, 피닉스가 피닉스가... 피..피...내 피 먹어!!!!!!!!!!!!”


“뭐어????”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부리 주변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녀석의 까만 눈이 처음으로 반짝 하고 빛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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