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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Nov 25. 2016

(1분소설) 리셋

클레멘타인1분소설

당신이 진실로 깨어나면 어떤 삶을 살 건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네 그렇게 될 거예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는 일' 밖에 없답니다.


이런, 제가 말이 많았군요.

자 그럼 이제 눈을 감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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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앤 해피 벌스 데이




나는 지금 차가운 은색 철제 침대 위에 발가벗은 채 누워있다.  일정한 심박기 소리가 삑 삑 삑 -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 준다.


하얀 방의 텅 빈 민낯이 왠지 더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나의 이마에서부터 두 팔목 그리고 가슴 두 발목에는 탄탄한 가죽끈이 메여있다. 그리고 입에는 혀를 깨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무언가 솜 같은 게 잔뜩 물려져 있다.



"준비되셨으면 갈까요?"



하얀 피부에 조각된 듯한 이목구비의 의사가 시종일관 웃으며 말을 건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앞으로 당신이 경험할 일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되는 거여요. 참 쉽죠? 음. 그러니 너무 겁 먹을 것 없어요. 사람들은 삶이 쉬워질 수록 생각이 복잡해지죠."



그녀는 손가락으로 나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이런. 많이 늘어졌네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당신은 완벽하게 젊어질 테니.

당신의 인생은 20살부터 시작합니다."



그녀는 내 몸에 매달린 기계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수술 도구를 챙기는 듯한 차가운 금속 소리가 쨍쟁-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소리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긴장하고 있군요.

걱정할 것 없어요. 당신은 완벽하게 새로 태어날 테니."



그녀는 나의 볼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그녀의 손길이 마치 뱀 같은 느낌이 나서 소름이 돋았다.



"두려움. 공포. 패닉. 이런 감정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죠. 아이 엄마가 작은 벌레를 보고 소리지르기 시작하면 아이도 으례 벌레를 볼 때마다 소리를 질러대죠. 잔인한 교육이야.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대부분 부모가 정해준답니다. 그러니 자신의 가치관인지 주입된 가치관인지 혼돈에 빠지기도 해요. 걱정말아요. 다음 생에는 그런 혼돈은 없답니다. 으음- 갓 태어난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해. 뇌만 발달한 인간의 육체는 너무 연약하답니다. 네 발 달린 짐승들은 어미에게서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네 발로 우뚝 서서 세상을 마주하죠. 그러나 인간은 걷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생물체죠. 연약하고 나약하게 태어난 게 인간인데. 모두들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니까요. 본질을 까마득히 잊고 사는 게 인간이에요. "




그녀는 손가락 두 개가 합쳐진 두께만큼 큰 주사기를 들었다. 쭈욱- 누르자 공기와 함께 약물이 위로 빠져나왔다. 젠장. 이거 정말 되긴 하는 건가?




"이제 10분 뒤면 당신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젊음, 그리고 새로워지는 자신. 아- 너무 환상적이야. 저는 이 일을 너무 사랑한답니다. "



그녀는 눈 앞에 손가락 7개를 펼쳐보였다.



"7일. 새로운 삶을 위한 7일 간의 적응 기간이 있어요. 그 기간 동안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질 거예요. 눈을 뜨면 당신이 세팅해 놓은 집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당신이 원한 나라, 지역, 집  그곳에서부터 시작인 거죠. 대신 당신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가족도 없고요. 그리고 처음 재생되었을 때는 어떤 성격도 형성되지 않은 무(無)의 세계를 경험할 거예요. 인식은 하지만 감정이 없는 상태."




후읍 후읍-

나는 약기운을 느끼며 호흡이 가빠져왔다. 여자의 목소리가 메아리 처럼 들려오고 입과 얼굴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달링. 아무것 아니라는 말에 몸을 떠는 군요. 너무 걱정 말아요. 7일 안에 자신의 성격을 형성해 나가는 선택을 할 수 있으니. 20살이잖아요. 그리고 혼자라고 두려울 게 뭐 있어요. 어차피 어른이 되면 다들 독립하는걸. 이런 가여운 사람. 차트를 보니, 결혼도 실패했군요. 당신 지금 혼자 살고 있지 않은 가요? 사람들은 뿌리가 되는 가족이 없다는 부분을 가장 꺼림칙해 한다니까. 아무튼 미스터리야."



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웅웅웅- 그녀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뭐가 저렇게 수다스러운 거야. 젠장.




으으으응~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버튼을 눌렀다. 어떤 커다란 기계가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우우 우웅- 하고 울려 퍼졌다. 무언가 커다란 팬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 져저가고 다른 감각이 마비되고 있었다.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지금과 똑같은 선택을 하면 어떻하지?

아니야. 다시 태어나면 나는 지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다시 태어나면 나는 좀 더 적극적이고 행동하는 인간이 될 거야. 다시 태어나면 나는 미치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즐기면서 살 거야. 다시 태어나기만 한다면...



"자, 당신은 선함 +3 레벨, 악함 +2 레벨을 선택했어요. 기본적으로 형성되는 선택의 기준이죠. 그러니 7일 안에 당신은 조절하고 선택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모든 것을 스스로 찾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기죠. 이미 알겠지만. 자유의지가 꺾이는 경험을 뛰어넘기 위해 다음 생애는 20살부터 시작합니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완벽한 상태로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악이 되든 선이 되든 모든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죠. 그 어떤 죄책감도 사고의 굴레도 없이.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신을 찾는 가는 거니까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계음이 다급하게 돌아갔다.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나는 마치 전자레인지 커다란 통 안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면서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아아 아아아 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어 눈만 크게 뜬 채 나는 무언의 소리만 질러댔다.



당신이 진실로 깨어나면 어떤 삶을 살 건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네, 그렇게 될 거예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는 일' 밖에 없답니다.


이런, 제가 말이 많았군요.

자 그럼 이제 눈을 감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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