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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Dec 23. 2016

10.양말 정리

#클레멘타인 사랑의부스러기

양말을 개키다가 문득 니 생각이 났어. 양말이랑 너랑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잠시 지난 너와 지금 나의 행위에 대해 연관을 지어보려 했지만 그다지 결론은 나지 않았어. 그래서 양말을 하나씩 들어 올려보며 정리를 다시 시작했지. 비슷하지만 비슷하기만 할 뿐 짝이 아닌 녀석들도 있어. 나는 신중하게 양말의 짝을 하나하나 찾으며,


이걸 다 정리하면 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니 생각이 문득 났노라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널 잊어버리고 말았어. 그렇게 쉽게 널 잊은 채 빨래를 널고, 설거지도 하고, 이불 속으로 피곤한 몸을 뉘였지.


아. 잠들면 안 되는 데. 지금 잠들면 안 되는데.


그렇게 나와의 실랑이를 잠시 벌이다  나는 다시 니 생각이 났어.  아, 아까 나 너 생각했는 데. 

그런 생각 말이야. 그리고는 생각이 거기서 멈춘 채 결국 잠이 들어버렸지.


이상해. 생각이라는 건 그렇게 살짝 머물다가 가버리더라. 그렇게 꽉 붙잡을 수도 없고, 탁하고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결과가 짠하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


애초에 존재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마치 너 처럼. 아니 나 처럼.


음. 그때 내가 너에게 전화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생각이 필요했던 걸까. 그러니까 얼마나 더 깊고 크게 생각해야 이 생각들이 진하게 남아있을까. 니 생각이 너무 나서 도저히 그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지 못 하고서는 못 베길 정도가 되면, 아마 나는 주저없이 너에 번호를 누를 수 있겠지.

뭐해? 라는 한 마디로 우리의 어색함을 깰 수 있겠지.



제 짝이 없는 양말들을 저렇게 두어도 될까. 신경쓰여. 버리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짝이 어디로 가버렸는 지 찾을 수도 없어. 으- 진짜 이상하다. 진짜 진짜 이상하다. 지금껏 단 한번도 양말을 한 짝만 신고 나간 적이 없는 데. 왜 이제와서 하나만 남겨졌을까.


이런. 아무래도 널 또 잃어버린 것 같으니 아직 정리는 못하겠다. 그래서 지금은 널 충분히 생각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봐야겠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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