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른유예 : (공동체 프로젝트 )

#클레멘타인 세상 읽기

by 클레멘타인

<vol 2. 어른 유예:

계속 배워도 어른이 되기엔 모자란 시대>






착한 아이처럼 말만 잘 들으라 해서
시키는 데로 했는 데~





어린 시절 명절날 친척들을 만나면 어린 나에게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어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말 잘 듣고, 말썽 부리지 말고!"



그렇게 크게 말썽 부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냥 잘 지내라는 인사말과 같았다. 엄마 말 잘 들었어? 공부는 열심히 했어? 형이랑 안 싸웠어? 뭐 이런 사소한 형식적인 질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물론 아이가 부모의 말을 잘 따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른인 우리가 정말 궁금해야 할 것은 시키는 대로 잘 살았냐가 아니라, '너는 어때?'라는 아이의 가치관이다.


반항을 하면 하는 대로, 수긍을 하면 하는 대로 아이가 엄마와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너는 어땠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을까?'와 같은 감정의 과정 또는 사고의 과정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이런 것 물으라고 하면 마치 죄인 취급하듯이 왜! 왜 그랬어!! 어? 이렇게 질문하시면..--;)


그러나 이미 유튜브로 놀이를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 교감을 느낄 시간도 없이 모니터와 자판으로 소통한다. 해가 뜨면 학교에 가고 해가 지면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집에 들어와 컴퓨터 오락을 하고 잠이 든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험 아래 정해진 정답만 적어내길 강요당하며( 심지어 주관식도 주관 따윈 필요 없다.) 로봇 같이 자라나 스무 살이 된다.


스무 살의 성인식.


어른으로 인정해준다는 성인식은 이제 기념일이 되었을 뿐, 언제부터인가 '자아 발견 '라는 커다란 이데올로기 아래에 어른이 될 시간을 유예한다. 시키는 대로 살아온 우리에게 스물이라는 나이가 되는 순간부터 "짠 놀랬지? 이제 넌 멋대로 해봐! 대신 X 되도 니 책임! 일단 빚부터 낼까? ^^" 라며 힘들게 한다. 그러니 스물이 되도 정말 자신의 선택은 없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될 수 있을까?




1.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열심히 하면 보상받을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고 지금은 당장 눈 앞의 내일 조차 불투명하다. 우리는 불안하다. 불안해 미치겠다. 인공지능이다 뭐다 세상 살기가 윤택해질수록 상대적 빈곤감은 커졌다. 타인과 비교하기 좋은 시대가 되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아프니까 청춘인 이들은 없는 열정을 쥐어짜 내야 하고, (취업 따윈 안되니) 갑자기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며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알고리즘 사회에서 우리는 천 번 만 번 흔들린다.


뿐만 아니라 가장 소비 여력이 강했던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맞물려 사회 전반적으로 전체적인 소비력이 줄고, 불안한 노후를 맞이하는 은퇴자의 남은 20년의 삶은 꽃길이 아니라 흙길이다. 평생 일했지만 남은 것은 그나마 부동산 즉, 집으로 대체되었고 현금 유동성은 떨어진다.


알겠지만 집과 차를 가진 사람은 재산세가 높아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하여 가만히 있어도 나가는 돈은 많아지고 소비력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 소비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대가 된다. 그들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 어른으로서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까.



아- 지금 누가 누구를 지킬 수나 있는지 모르겠다.





2. 학생 다음은 취준생


어ː른1
명사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 자기 일이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성인(成人).
일정한 나이가 되어 인생의 한 단계로서 결혼을 한 어엿한 존재.


성인식이 지난 사람이라면 어른으로서 성숙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은 만큼 인정해 주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 말씀 틀린 것이 없다"라는 말도 종종 들었는 데. ;;;


지금의 우리는 어른이라는 발판을 내딛는 순간부터 계속하여 일자리(생존)를 위해 어른으로서의 성숙이 아닌 스펙을 쌓고 교육을 받는다. 배워도 배워도 어른이 될 수 없는 시대.


그저 감정이나 가치관의 자립보다는 일단 눈 앞에 닥친 고용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지나면 '취준생'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학생과 취준생은 이미 집에서부터 어른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가족마다 가지는 '어른'이라는 또 다른 잣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례 1.
얼마 전 TV에 하나뿐인 아들이 무당이 되어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자식과 인연을 끊고 있는 장면을 봤다.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무당이 된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며 부정한다. 그러나 진심은 너무 보고 싶다고 울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


그녀는 왜 마음으로는 보고 싶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까? 무당이라는 사회에서 만든 직업적인 관념의 문제였을까? 그녀의 아들이 대기업 임원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사례 2.
아들이 넷 있는 젊은 엄마가 9살 난 첫 째 아들의 마음을 읽어 주기보다는 자기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들과 싸우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에 아이는 참여하고 싶지만 엄마는 네가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게 잼을 바르면 안 되니까 내가 할게 하면서 자신이 몽땅 해버린다.


집안 권력 쟁취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만든 또 다른 권력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힘의 논리를 배우게 된다. 우리가 보여준 어른(권력)의 한 단면 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중적인 잣대로 늘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이 되거나 자식을 낳았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들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의문으로 다가가고 청년들의 방황에 한 몫한다. 오랫동안 그런 이중적인 대접에서 자라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이 은연중에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보다도 아이의 실패를 더 두려워하는 어른들은 경쟁 사회의 두려움을 심어준다. 예를 들어 10등 하면 5등 하지 못 한 걸 화내고, 5등 하면 3등 못 한 걸 화내고 3등 하면 1등 못 한걸 화내고 1등 하면 왜 그동안 안 했냐고 화낸다고 한다.


이런 무언의 압박 속에서 아이들의 가치관은 과정이 아닌 결과에 맞춰진다. 하여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여 아예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취업을 하지 못 하면 경쟁에서 밀린 사회의 낙오자로 찍히기 때문이다.





3. 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가장 현실을 잘 말해주는 타이틀 같다. 눈 떠보니 어쩌다 어른이 되버린 우리기에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으로 대접받는 시대는 끝났다. 그냥 하라는 대로 어영부영하다 보니 우리는 어른이길 기대하는 나이에 도달했다. 젊은 이들은 누구를 존경하는 가? 마을의 이장님? 집안의 할아버지? 아니면 주커 버그? 마윈?


"성공"이라는 이념 아래 시대의 영웅이 되지 못하는 우리는 여전히 책임감보다는 방황하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찾겠다는 이름 아래, 지금 눈 앞에 쌓인 일들보다 일단 피하고 싶다는 욕망이 늘 이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생각을 해 줄 여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여전히 다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4. 관계적 어려움 속 응석받이



이런 좌절감 속에서 자존감이 떨어진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사회에 나가기를 꺼려한다.


나는 이것밖에 안돼.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나는 그런 것은 너무 불편해.


사회가 씌워놓은 자기에 대한 틀이 관계 맺기에 부족하다고 여겨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치는 더 넓은 사고도 한 몫한다. 예를 들어 나이 든 사람이 잘 못 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소위 '나이 처먹고 저런다'는 말로 무시하고 조롱한다. 우리는 나이에 대한 어떤 기대치가 있다. 그것이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한 이해력이 넓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육은 그렇지 않았다. 책임감을 시험 문제로 내는 사회에서 진짜 책임감은 글자로 관념으로만 존재할뿐이다. 미디어에서 연신 보여주는 낯부끄러운 모습이 우리가 이해하는 어른들의 세계다. 돈으로 키워놓은 세대는 어른이라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결정은 세 가지다. 무조건 반발심을 갖거나 정말 동화되어 가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이 시대에 어른은 없다. 미성숙한 사회에 미성숙한 어른이만 존재할 뿐이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11/27/20161127001622.html






5. 선택할 줄 알아야 책임질 줄 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틀 안에 들어와야 행복한 삶=성공이라는 것을 주입한다. 그리고 비교. 누구네 집 아들은 뭐 해서 뭐 했다더라 로 시작하는 말 은연중에 자식을 무시하는 말로 자존감을 꺾는다. 꺾여버린 날개로 그들은 성장할 수 없다. 나는 법을 보고 흉내 낼뿐 걸어 다니는 닭을 새라고 치지 않는 것과 같다. 입시가 면죄부가 되는 세상에서 어른이 되는 기초체력을 살펴 보자.




1. 선택하는 연습


먼저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에 정답이 없다. 물질적 성장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에서 상대적 성공을 위한 삶을 사는 노력은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하여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사회의 잣대에 맞춰 선택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회의 잣대는 실체가 없다. 그저 온전히 나만의 잣대가 필요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나 스스로 설계하는 나의 잣대가 없었을 뿐이다.




2. 여유가 주는 관계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법을 모른다. PC 또는 스마트폰 게임이 다다.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라나서 가상공간의 약간 관계를 맺으며 커간다. 그러나 책임감을 키울 일은 문제에 부딪힐 때 생긴다. 가상 세상에서는 언제든 부활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여 선택에 책임이 있음을 오롯이 느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과 일에서, 사람과 환경에서 부딪히고 좌절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설계하는, 나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무수한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3. 어른으로 행동하고 책임져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스러움, 선후배 관계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스러움, 오가다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 술 먹은 사람들이 행하는 행태 등에서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특히 30대 중반 이후에 하는 행동에 대해 더 더책 임감 있기를 기대한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격차사회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기회가 되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습관이다. 왜냐면 더 이상 뒤처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남들은 다 하는 데 나만 안 하는 것도 바보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한 마음을 열 여유도 없을 뿐 더러 그런 일은 손해라고 생각한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낙오자가 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갈 수록 일자리는 적어지고 세상은 치열하다. 하여 안정된 삶을 가지지 못 한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이 정해 놓은 시스템에 낙오되지 않고 맞춰지기라도 원한다.


시스템에 녹아버려 격차사회가 당연한 권력인 것으로 착각하는 중년층과 반항하면서도 그 대열에 끼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 우리는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누구도 어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글을 쓰면서도 너무 어두운 면만 부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부터 책임질 수 있는 자세를 갖자.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자.
더 이상 누군가를 자로 재단하지 말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먼저 해보자.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괜찮아, 어려워도 풀 수 있어. 실패가 모두 니 탓은 아니야. 이 삶이 끝날 때 까지 벌어지는 일들은 아무것도 끝이 아니야. 잠시 힘든 삶의 이벤트일 뿐이야. 다시 해봐.'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



다음 편: 성공과 행복이라는 똑같은 이상의 틈에 갇혀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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