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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Aug 20. 2017

인소 : 서울행 막차 1

#클레멘타인 1분소설

한낮에 버스에 올라 그 안의 풍경을 살펴본 적이 있는가. 경고하건 데, 버스에 올라 잠시 멈춰 서 버스 안 풍경을 살펴보길 바란다. 인간에겐 보이지 않아도 위험을 감지하는 '촉'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위험하게도 지금까지 당신은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비슷한 반응을 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빈 공간을 찾아 버스 안을 짧게 훑어내 린다. 양쪽으로 갈라진 붙박이 의자들 사이를 무심하게 지나쳐 자석에 이끌리듯 들어선다. 그게 뭐라고, 매번 앉던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적당한 쿠션감에 몸을 붙이고 나면 대각선 자리에 텅 빈 의자가 홀로 여행을 하고 있다. 창문 너머 햇살이 의자에 사뿐히 내려와 네모지게 자리 잡는다. 익숙한 풍경도 잠시, 당신은 현실을 외면한 채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는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이 이상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무엇보다 미스터리 한 우연적 필연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5분마다 정거장에서 올라타는 사람들, 목적지는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내리는 사람들,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사람에 대해 티끌만큼의 의구심도 없었을 것이다.


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 그 시간, 그 버스는 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버스는 그 안에 모든 것들은 저주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좌석번호 1,2,3



검은 밤, 검은 세단이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 주차장에 웅크리고 서 있다.


"송기자 준비됐어?"


뒷 좌석에 기댄 채 눈 감고 있는 문성근, 무슨 일인지 그의 이마에 자리 잡은 주름살이 펴지지 않는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늘 고속버스를 타고 서민 체험을 찍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통 시장이다, 국밥이다, 공사판까지 다 돌았지만 망할 지지율은 뿌리 박힌 나무처럼 꼼짝 하지 않았다.


얼마 전 기차 여행을 하는 대선 후보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번 시장 선거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서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스케치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문성근은 절대 안 하겠다고 고함을 지르며 서류를 집어던졌다.


"도대체 생각한 다는 게 고작 이거냐 엉? 버스여행? 황, 너 임마, 너 대가리에 들은 게 이 정도밖에 안돼? 어휴. 됐고, 나가 임마."


황 비서가 나가고 난 후 문성근은 분이 덜 풀려 주먹으로 나무 테이블을 꽝 내리쳤다. 벌써 3번째 시장 도전이다. 지난 낙선 이후 성근은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마음 한 구석에는 만년 후보라는 이미지가 자기 인생의 평생 수식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꾸덕꾸덕 붙어 버린 딱지를 이번 기회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떼어버리고 싶었다.


제기랄. 주님. 딱 한 번만, 이번 딱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손이 얼얼해 짐을 느낀다. 바닥에 입을 벌리고 있는 서류철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제목에는 골든 티켓 프로젝트라고 쓰여있었다.


'골든 티켓이라...'


밤 9시 50분 강릉발 서울행 막차 좌석번호 1, 2,3



"이제 가시면 됩니다. 일단 승객이 다 자리에 앉으면 출발 전 약 5분 동안 시간은 확보해두었습니다. 송 기자는 지금 택시에서 내렸다고 합니다."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특별하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도 화마가 솟구치는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덜컹- 기사가 문을 열자 문성근은 그제야 눈을 떴다. 8월의 늦여름 밤은 여전히 더위로 성가셨다. 후.- 습기 가득한 밤공기가 콧 속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폐 안에 들어와 핏줄 하나 하나 타고 몸을 무겁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목표를 위한 하나의 문제일 뿐,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 생각하며 차에서 내려선다.


그래. 골든 티켓을 잡기 위해 무슨 대가라도 치르겠다, 그것이 자신의 업이다, 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발목을 죄이는 불안감을 모른 척했다.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시 재정비했다. 그리고 의례 누군가 가면이라도 건네준 것처럼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선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송기자가 때 맞춰 와 내리는 모습부터 담고 있는 거라 생각하며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밤이라 너무 빨리 움직이면 자칫 건질 사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준비는 다 끝났다.



"어이구,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버스 안은 문성근의 우렁찬 목소리와 능글능글한 미소로 한 껏 몸을 부풀리며 버스 통로에 멈춰 섰다.


"늦은 밤, 먼 길 함께 가게 된 시장 후보 문성근입니다. 저 아시죠?"


버스 안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맨 뒷 좌석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놈들 셋이 낄낄 거리는 것이 거슬렸다. 요즘 것들은 영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다니까.


"허허허. 여러분 그래서 제가 그동안 낙선했나 봅니다. 우리 시민들이 경제도 힘들고 먹고살기도 힘드니까 그죠-.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하려 합니다. 여러분. 벽돌 한 개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 알고 계십니까? "


문성근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멘트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해 몇몇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벽돌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 손에도 벽돌 한 개가 있습니다. 이 하나의 벽돌로는 그 누구도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각자의 손에 있는 벽돌 하나하나가 함께 모이면, 모인 만큼 큰 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 문성근에게 벽돌을 모아주십시오. 저는 오직, 다른 무엇 보다 최우선으로,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마음이 먼 지방이 아닌 꿈에 그리던 경제 도시 저, 문성근이, 시장이 되면, 꼭 만들어 내겠습니다. 여러부운."


때 맞춰 비서가 물개 박수를 치고, 중간쯤에 앉은 노인 한 명과 젊은 남자 한 명, 중년의 남자 한 명, 그리고 맨 뒷 좌석에 앉은 고삐리 녀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송기자가 사진 찍을 시간을 주기 위해 문성근은 손을 든 채 약 1분 간 멈춰 서 있었다.


뒷 좌석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누구라도 악수를 거절할 방법은 없다. 그때 갑자기 한 노인이 그의 손을 꼭 잡고 놓칠 않는다. 열열히 박수를 치던 노인이다. 역시 고령층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다.


"아이고, 어머님. 문성근입니다. 기억해 주실 거죠?"


"철용이 오빠! 철용이 오빠, 나야나!"


"네?"


그때 갑자기 옆 자리에 앉은 중년 여인이 그녀의 손을 잡아 챈다.


"아유, 엄마. 아니야. 이 사람이 왜 철용이 아저씨야! 죄송해요. 저희 어머니가 치매끼가 있으셔서."


문성근은 특유의 미소를 띠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노인의 손을 덥석 잡는다.


"철용이 오빠보다는 제가 조금 더 잘생겼을 겁니다. 하하하. 저는 간병으로 힘든 가정을 위해 치매 의료 제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저 문성근 약속드립니다. 꼭! 어머니 그리고 따님분이 함께 살기 좋은 도시로, 기필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정치인이 자신의 개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그는 송기자가 사진을 찍는 것을 돕기 위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철용이 오빠! 오빠,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철용이 오빠 가자. 우리 그만 가자. 응?"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문성근은 은근히 손에 힘을 주어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힘없는 노인은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나지 못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를 그려 놓은 가면이 살거죽에 붙박여 있었다.


"아이고, 효녀시네요. 고령의 어머니 모시기가 쉽지 않죠? 아프신 분과 대중교통 타는 게 만만치 않으시겠어요. 따님분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허허. 혹 필요하다거나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지 알려주십시오. 제가 꼭 한 목소리로 만사 제쳐두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안전한 여행 하시구요."


"저..."


갑자기 여인이 그에게 입을 뗀다. 걸려들었구나.


"예, 말씀하시죠. 뭐 어려운 점이 라도 있으십니까?"


"자리 좀 바꿔 주세요."


"네?"


"제가 원래 멀미가 심해서 맨 앞자리를 늘 예약하는 데 이 버스는 벌써 누가 해놨더라구요. 아마 문 시장님 자리인 거 같은 데 혹 괜찮으시면 저희와 자리 좀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문성근은 그녀의 '문 시장님'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이때 뒤에 있던 황비서 바로 끼어들어 제지를 한다.


"아, 그건 제가 예약한 겁니다. 죄송하지만 자리를 마음대로 바꾸는 건 기사님에게도 좋지 않고..."


"어허,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지면서 살았는가. 자리야 아무 데나 앉으면 어떤가?"


그는 다시 먹잇감을 노리는 뱀의 눈을 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씨익 웃는다. 손을 뒤로 돌려 송기자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

치매 노모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효녀 중년 여성, 그리고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시장 후보라. 얼마나 그림이 좋은가.


"황비서, 지금 바로 우리 자리에서 짐 가져오고, 이 분들 자리 옮기는 것 좀 도와드려. 어머니, 짐이 많으신가요?"


"어머.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병원 가는 길이라 짐은 없어요. 엄마, 엄마 일어나. 우리 앞자리 앉을 거야."


"싫어. 안 가."


"엄마, 앞자리 앉으면 멀미 안나. 가야 해. 일어나세요. 거기가 좋아. 으차."


노인은 떼를 쓰며 일어났고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카메라 플래시는 연신 터진다. 골든 티켓을 잡은 것 같다. 이런 미담은 목격자도 많으니 이 중 한 명이라도 SNS에 올려주기만 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각 버스를 둘러본 황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슬슬 승객들은 왜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얼굴이다. 이런 훈훈한 장면에도 불만 가득한 표정들이 버스의 공기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스케줄에 해가 되는 미담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황비서가 뒤에 다가와 문성근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이제 기사님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대화 해면 좋겠지이 정도 시늉으로도 충분히 어필한 것 같다. 치매 노인 분량만 뽑아도 오늘 버스를 탄 목적은 다 달성했다. 뒤로 가서 더 인사를 하려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버스를 둘러본 후 기사를 향해 소리친다.


"기사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희 시민들 안전을 책임지고 계시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우리 모두 안전벨트는 하셔야 하는 거 아시죠? 그럼 남은 시간 편안한 시간 되시고, 저 문성근 꼭 기억해 주십시오."


문성근은 다시 버스 통로에 서서 90도로 인사를 한 후 바꾼 자리에 앉았다. 모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여운이 남아 미적지근했다.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치매 노인이라 바지에 뭐라도 지리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노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황비서를 앉혔다.


이제 휴게소에서 몇 컷 찍고, 내릴 때 몇 컷 건지면 나름 선방이다.


버스는 천천히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공간은 암흑이 되었다. 뒷 좌석 고삐리들이 지치지도 않는 지 낄낄 거리며 욕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좌석 뒤에서 팔이 하나 쑤욱 나오더니 문성근의 왼쪽 팔을 툭 친다. 그는 깜짝 놀라 어깨 뒤를 넘겨봤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좁아빠진 의자와 창문 사이 틈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어이구, 수고하십니다."


"예,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문성근입니다."


"오늘 자리 양보하시는 거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시장님."


"어이고, 허허허. 아직 시장도 아닌 데요."


"무슨 소리입니까? 이런 분이 진짜 우리 시민들을 생각하는 분이죠. 안 그렇습니까. 시장님."


"허허허. 그냥 누구라도 했을 일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이름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일은 사람들이 좀 알아야 할 텐데 말이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른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어이구, 아닙니다. 그냥 다 사람 사는 이야기지요."


문성근은 슬슬 귀찮음이 밀려왔다. 오른쪽 어깨로 황비서를 툭 쳤다. 그는 벨트를 풀어 몸을 세워 뒷 좌석을 넘겨 봤다. 자신의 뒷 좌석에는 사제 옷을 입은 신부가 눈을 감고 있었고, 그 옆에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40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죄송하지만 다른 승객들도 있으니 이제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이쿠, 그럼요. 그럼요. 쉬셔야죠. 저는 그저 시장님 행동에 감동받아서 말이죠. 아차, 혹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다 서로 돕자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


명함을 받아 들어 황비서는 곧바로 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남자는 다시 좁은 의자 사이에 얼굴을 최대한 들이밀며 말했다.


"시장님, 제 벽돌 한 장 드릴 테니 좋은 집으로 지어 주시지요. "


"어유, 물론입니다. 허허허.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벽돌 이야기를 한 것이 먹힌 것 같아 문성근은 내일은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오라고 할 요량이었다.


'골든 티켓이다. 주님, 부디 절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십시오.'


'... 으음...'


응?


갑자기 자신의 몸이 앞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기분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어어어 어?


동시에 버스 안은 잠이 깬 몇 사람들로 웅성웅성 거리고 버스 밑으로 뭔가 울컹 하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안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고 창 밖은 짙은 서리가 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창문을 슥슥 닦아 냈다.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에 걸쳐진 안전 벨트를 봤다.


"무슨 일이야?"


그의 한마디에 황비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살핀다.


"아무래도 야생 동물 뭐 그런 게 있었나 봅니다. 잠시만요.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됐네. 호들갑 떨지 말고 앉아. 뭐, 별일이야 있겠나."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스가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쏠린다.


쿵!


으아아아악!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버스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윽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육중한 몸이 급격하게 이리저리 쏠렸다. 으윽-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겼다.


'죽는다.'


그는 짧은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아닌데, 오늘 골든 티켓을 잡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도와주세요. 주님.'


이런 상황이 생기면 사람이 정신을 잃는다고 들었는 데, 이상하리만치 너무 정신이 말짱했다. 버스는 한 없이 구르고 또 굴렀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대신 비명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시간이 영원하게 느껴졌다. 벌써 몸이 적응해버렸는 지 눈이 떠졌다. 그의 얼굴 앞에 버스 안을 돌고 있는 어린 소년의 절망 어린 눈동자가 떠다녔다. 빠른 속도 속에서도 아이의 얼굴만은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헤 벌어진 채 비명도 나오지 않는 입,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공포로 가득 한 검은 눈, 그리고 오른쪽 뺨에 작은 점, 처음 보는 얼굴 하나가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 하지만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버스 안 여기저기 고무공처럼 튕겨지다 이내 빠른 속도로 창문 밖 허공으로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안돼에!


그는 멀어지는 소년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버스가 다시 어딘가에 부딪히며 정신이 아득해 졌다.



아...이 사실이 내일 뉴스에 나온다면 지지율에 도움이 될 텐데. 진짜 골든 티켓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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