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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Mar 07. 2017

(1분 소설) 바다에관하여#2.위로

#클레멘타인 1분소설


나도 다시 행복해져야겠다.

그럴 수 있을거야. 내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옛날 옛날에 '위로'가 살았어요.

'위로'는 집에 어떤 것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늘 혼나고 말썽쟁이로 오 받았죠. 그렇게 나약한 모습보이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위로'는 길을 떠났어요.

나약하더라도 자신이 필요한 어딘가가 세상에 한 곳은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죠. 세상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어요. 아침이면 바쁘게 흩어지는 사람들,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지하철, 위압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회색빛 빌딩 숲들이 끝없이 펼쳐졌어요.


'위로'는 정처 없이 떠돌았어요.

마땅히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었어요. 단지 이 세상 어딘가 자신을 반겨주는 곳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죠. 점점 배도 고파오고 다리도 아팠어요. 날씨는 미치도록 화창했지만 '위로'는  따스함을 느낄 수 없었어요. 미지의 세상조여 오는 시간의 매듭에 꽁꽁 묶이는 기분이었죠.





"어디 가니?"



누군가 '위로'를 불러 세웠어요. '위로'는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죠.



"안녕하세요! 저는 딱히 어딜 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뭐라?그게 무슨 말이니? 어딜 가고 있는 게 아닌 존재가 어디 있어? 길을 잃은 거야?"



"음. 길을 잃은 건 아닌 데. 그냥 가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목적지가 없을 뿐이죠."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목적지가 없으면 길을 잃은 거지."



"... 아닌데..."



"그러고 보니 넌 누군가 비슷한 구석이 있어. 괜히 기분이 나쁘구나."



"제가요? 누구랑요?"



"그냥 몰라. 모르겠구나."



화를 내며 지나쳤어요. '위로'는 급 우울해졌죠.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 데. 누군가를 화나게 할 생각으로 다가간 건 아닌데. 사람들은 '위로'가 무언가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를 멀리했어요. 난 그냥 나일 뿐인데...


진심못 보는 건 그들 아닌가요?




'위로'는 슬펐어요.

이유없는 비난에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코 끝에 맺혔죠. 가슴이 뜨거워서 목구멍까지 따끔거렸어요. 하지만 이를 악 물었죠. 길에서 그렇게 울고 있어 봤자 나약하다는 소리만 들을 테니까요. 어디선가 가족들이 따라와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어요. '위로'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흙을 뒤적 거렸어요.



"앗 따거."



'위로'는  화들짝 놀랐어요.



"저리 비켜!"



바닥에서 무언가 손가락 끝을 깨문 것 같은데....'위로'는 얼굴을 바닥에 들이대며 자세히 살폈어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숨을 골랐죠. 아까 울은 탓에 눈에 맺힌 눈물방울들이 하나 둘 바닥에 떨어져 땅을 적시기 시작했어요.



"으휴, 울보구먼? 아침부터 궁상이야. 너 때문에 다니는 길이 다 젖었잖아! 정말 귀찮은 녀석이군."



까만 개미가 두 팔을 든 채,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자세로 '위로'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어요.



"어? 개미구나... 미안."



"너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거 안 보이니? 왜 남의 길에 이렇게 자리 잡고 앉아서 청승이야?"



'위로'는 벌떡 일어나 한 발 옆으로 물러섰어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봐, 청승. 그렇게 한가하게 울고 있을 시간 있으면 내 일이라도 돕지 그래? 이 세상에 태어난 미물들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너처럼 질질 짜고 할 시간이 어딨어? 주위를 둘러봐.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 시간에 늦을 까 봐 초초한 얼굴들, 한 푼이라도 벌려고 호객하는 장사꾼, 추운 날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리어카 안에 박스를 가득 실은 노인들. 눈이 있으면 좀 둘러보라고. 궁상. 정말 귀찮은 녀석이군."



"아...죄송해요."



"아놔. 미치겠네. 뭘 또 사과하는 거야. 너 자신한테나 사과하라구. 그런 찌질이 궁상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게 좋냐? 좋아? 뭘 하든 당당하게 어? 너 같은 놈에게 이런 조 해줄 시간도 아깝군. 어차피 루저들은 이러나저러나 핑계로 우울증 환자 코스프레를 하기 마련이거든. 저리 꺼져! 정말 귀찮은 녀석이군."



개미는 짜증을 내며 길을 갔어요. 자기 몸 보다 몇 배는 커보이는 과자 부스러기를 열심히 나르고 있었어요. '위로'가 흘려 놓은 눈물 자국들을 이리저리 힘겨이 비켜가며. 그 모습을 보자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더 우울해졌어요.




아 정말 날 원하는 곳은 어디도 없을까?

난 정말 나약하기만 한 걸까?

나 왜 태어난거지?





 '위로'는 터덜터덜 정처 없이 걷다가 작은 바닷가에 도착했어요.

그곳은 따스한 해님이 새초롬한 달님으로 변했있었어요. 바다는 밤이 깊어도 풀썩- 풀썩- 요란하게 떠들었죠. '위로'는 조잘대는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해변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풀썩- 풀썩- 풀썩- 바다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어요.



"흑흑흑"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위로'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죠. 이상하다.



"흑흑흑"



'위로'는 너무 구슬픈 소리에 몸을 살며시 일으켰어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천천히 둘러보았죠.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파도에 밀려 울고 있는 조개 하나를 발견했어요.



"왜 그러니?"



"흑흑흑"



"길을 잃은 거야?"



"흑흑흑"



"아, 답답해. 말을 좀 해봐."



 '위로'는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어요.

조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친구가 되어주려고 하는 데 왜 받아주지 않을까? 나는 정말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일까.


'위로'는 시무룩해졌어요.

자리에 앉아 그냥 울고 있는 걸 바라만 봤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더는 울지 않기로 했어요. 하루 종일 무시당하는 건 최악이거든요. 풀썩- 풀썩- 바다가 또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얼마나 한 참이 지났을까. 조개가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코가 막힌 건지 잔뜩 물 먹은 소리가 났죠.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어요.


'위로'는 질문을 해도 될지 난감했어요.

괜히 말 걸었다가 아까처럼 무시당하면 어떻게 해요?



"나는 외톨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지 않아. 그리고 이 곳은 너무 낯설고 외로워."



"네가 있던 곳은 어디야?"



"아주 깊은 푸른 바닷속이지. 노란 산호가 손짓하는 곳이야. 나는 가끔 그곳에 숨어 데굴데굴 구르며 장난을 치곤 했어.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모두들 그곳을 떠나갔지. 아무 말도 없이. 나는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찾고 싶었어. 예쁜 줄무늬 언니도, 커다란 입을 가진 아저씨도, 나보다 몇 배는 크던 내 친구들도. 나는 익숙한 게 좋거든. 이런 곳은 싫어. 아무도 모르겠고, 모두 낯설어. 날 쳐다보는 눈빛도, 경계하는 말들도 다 싫어. 흑흑흑. 나는 너무 외롭단 말이야."



위로는 한참이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죠.

조개는 다시 울기 시작했어요.  섣불리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옆서 조개를 지켜봤어요.


시간이 흐르자 조개는 울음이 잦아들었어요. 그러다 다시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거품을 뽀르르 내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위로'는 바닷물을 조금씩 끼얹어 주거나 주변의 모래를 살살 파주기도 했어요. 뭐가 필요한 지 알 수 없었거든요.





이윽고 날카로운 밤들이 따스한 햇볕에 녹아버렸어요. 멀리 바다 뒤로 둥근 햇살이 얼굴이 빼꼼 내밀었어요. '위로'는 빨갛게 물든 햇살을 보자 기분이 한 결 좋아졌어요.



"이야- 해 뜬다."



"난 어두운 게 좋은데."



"그래?"



'위로'는 모래로 조개를 따듯하게 덮어 주었어요. 부끄러워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했죠.



"... 고마워"



"어?... 어.. 어... "



"어젯밤 네가 곁에 없었다면 난 정말 힘들었을 거야."



"내가 뭘.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그래.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위로'는 행복했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난 다시 떠날 거야."



"뭐라고? 어디로?"



"글쎄, 내가 있던 자리로?"


조개의 폭탄 선언에 깜짝 놀랐어요. 이제 막 친해졌는 데.



"다시 찾아갈 수 있겠어?"



"음. 나도 모르겠. 하지만 외로운 곳에 머물면서 외로워하느니, 내가 편안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아. 비록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가질 수 있잖아?"



"그래. 그렇구나. 혹시 이 곳에서 니 곁에 내가 있을 수는 없을까?"



"음. 말은 고마워. 하지만 내가 가는 곳은 너와 함께 할 수 없는 곳이야. 어쩌면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혼자서 떠나기로 결심했고 그럴 거야. 너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 아니니?"



"나는 그냥 ... 어딘가에 날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럼 나도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해서 나왔어. 사실 나는 네그런 존재라고 생각했는 데 ... 내 착각이었나 보다."



"아니야. 넌 그런 존재야."



"응?"



"넌 내게 그런 존재야. 그리고 그 기억은 평생 내 가슴에 남겠지. 어느 날 시린 밤이 다시 찾아오고, 내가 가려던 곳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오늘 밤을 떠올릴 거야. 그리고 곁에서 말없이 있어주던 널 내 기억에서 불러낼 거야. 그렇게  너란 존재가 날 지켜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넌 그곳에 있는 거야."



'위로'는 머리가 혼란스러웠어요. 

함께 할 수 없지만, 함께 하는 거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세상은 꼭 그렇게 해야만 그렇게 되는 건 아야.  정해진 대로, 생각한 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듯이 말이야. 우연과 상상의 산물이지."


'위로' 는 다시 힘이 빠졌어요.


"오해하지마. 너와의 어제는 너무 따스했어. 네가 없었다면 난 얼마나 외롭고 끔찍했을 지 상상도 하기 싫어. 봐봐. 넌 따스한 존재야. 고마워. 그리고 내게 필요한 순간에 넌 그자리에 있어줬지. 굿 타이밍. "


'위로'는 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어요. 이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을까. 계속 평생 날 필요로 할 수 없을까.



"기억에 남는 건 평생이야. 언제든 꺼내 볼 수도 있고, 언제든 기억해 내기만 한다면 말이지.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런 자국들은 흩어지겠지만, 우린 여전히 그런 존재였다는 사실 하나는 변하는 게 아니니까. 이 세상에 어딘가 또 널 기다리는 존재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런 존재를 찾지 못할 때는 나를 기억해 주렴."



조개는 말을 마치고 파묻혀 있던 몸을 꺼내 바다로 향했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몸을 실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위로'는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죠.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행복하게 떠나는 조개의 모습을 보니 알 것 같았죠. 오히려 자신도 힘이 났어요. 조개의 말 대로 어딘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을 것만 같았어요.




'위로'는 여전히 목적지가 없었어요.

바다는 여전히 재잘거리고, 햇살은 모래와 키스하며 반짝 거렸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뭔가 달라진 것 없었어요. 그저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죠. 하지만 어딘가 분명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죠.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졌어요. '위로'는 힘차게 떠나던 조개를 생각하며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나도 다시 행복해져야겠다.

그럴 수 있을거야. 내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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