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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Aug 22. 2017

인소 서울행 막차2

클레멘타인 1분소설

'끝'이라고 이름 지어지는 것들은 이내 다른 얼굴로 '시작' 되어진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나거나 죽어가는 것들의 의미를 찾는 것은 소용이 없다.


끝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다.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조금만 비틀어져 넘어가면 또다시 만나게 된다.


좌석번호 6


차가운 기운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냉장고 밑에 깔린 것 마냥 몸이 무거워 중력을 벗어나고 싶었다.


'.. 으음...'


분명 정신은 깨어났는 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억지로 팔을 움직여 보지만 몸은 뇌의 명령에서 벗어나 고장난 컴퓨터처럼 꼼짝 않는다.


'나... 죽은 건가?'


사후 세계에 도달한 건 아닐까. 평소 죽음에 대해  걱정했던 게 하찮게 느껴질 정도 마음이 편안하다. 그때 귓가에 찌그럭, 찌그럭,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지? 환청인가? 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져 귀를 막고 싶다. 손을 들어 귀를 막고 싶다.


'끼 기기 긱... 끼 기기 긱...'


기괴한 소리에 소름 끼친다. 버스에서 나는 소리인 걸까? 죽은 후에도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 살아있는 건가. 이곳이 사후세계던 현실 세계던 눈을 떠 확인해야 했다. 억지로 주변을 살펴보려 애썼다. 초점은 흐릿하다가 점점 밝아지고 나니 바닥에 제멋대로 솟아 있는 작은 돌들이 얼굴에 느껴졌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있는 데 아무래도 비가 오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정신이 까무룩 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주변은 벌써 밝아왔지만 날이 흐린 탓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매캐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와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아야..'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너무 욱신 거린다. 2년 전 아빠랑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날 보다 더 심한 통증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버스는 오른쪽으로 넘어져 있었고, 반대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엄마!


버스 안에 사람들은 물에 젖은 걸레처럼 모두 늘어져 있었다. 살려주세요. 나는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희미한 신음 소리만 새어 나왔다. 엄마.... 아빠....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움을 요청해야 해!


"사... 살려.. 주세요..."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벨트를 풀고 일어나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해야 해. 엄마! 아빠! 지훈아!


그때였다.


거친 숨결이 뒤쪽에서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벌벌 떨었다. 입에서는 누구냐는 말 대신 살려달라는 말이 새어 나왔지만 뒤에서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무언가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산 짐승인가? 멧돼지? 설마 곰? 죽은 척하라고 했던가? 나는 온갖 추측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끄르르르..."


아니야. 소리가 이상한 데? 뭐지?


나는 숨이 턱 위로 올라와서 숨 쉬기가 어려웠다. 짧은 호흡이 훅훅훅훅 계속 이어졌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그때서야 내 본능이 살아나 외쳤다.


도망쳐야 해!


나는 벨트를 풀기 위해 미친 듯이 눌렀다. 어찌 된 일인지 꽉 다문 조개처럼 두 개로 연결된 끈은 날 잡고 놔주지 않았다. 패닉 상태에 빠질 것 같아. 나는 미친 듯이 손에 힘을 주어 벨트를 잡아 뜯어 분리시키려고 했지만 헛바퀴 도는 버튼 소리만 요란하게 났다.


무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도저히 뒤를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덫에 걸린 초식 동물처럼 벨트를 풀려고 버둥거릴수록 벨트가 옥죄어 왔다.


안돼!


갑자기 뒷 목덜미에 뚝뚝 축축함이 느껴졌다. 나는 숨이 멎었다. 머리 위에서 그르릉 목을 긁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미치게 오줌이 마려워 왔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확인해야만 했다.


꺄아아악!


찰나였지만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벨트를 풀어 보려고 애썼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회색 괴물이 입을 벌리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노랗게 물들어 있는 눈,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신 애기 주먹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성성한 머리카락이 얼굴에 여기저기 쩍 붙어 있었다. 헤- 벌어진 보라색 입 사이로 끊임없이 찐득한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다시 내 어깨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다. 얇은 가죽으로 뒤덮여 뼈만 남은 깡마른 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기름지게 미끌 거렸다.


꺄아아아 -싫어어!!


나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듯이 발버둥 쳤다. 스마트한 21세기에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건 생각해 본 적 없는 데, 이런 죽음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데... 나는 혼란한 와중에도 논리적인 질문들이 머릿 속을 가득 메웠다.


왜? 이런 일이 왜?


회색 괴물은 나의 발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 어깨를 양쪽으로 우악스럽게 잡고 잡아당겼다. 그 손길이 소름 끼치게 차갑고 축축했다. 아악! 놔! 놓으란 말이야! 죽음을 향한 몸부림은 아무리 지나쳐도 지나침이 없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지만 나는 내 어깨에 붙어 있는 찝찝한 두 손을 떼어 내기 위해 두 손으로 할퀴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내 벨트가 풀리고, 나는 사냥을 당한 한 마리 어린 노루처럼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싫어.

놔! 이거 놔! 살려주세요!


꺄아아악!




"이봐! 이봐! 괜찮아?"


헉!


눈을 뜨니 내 앞에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날 보고 있었다. 꺄아! 저리 가!


"워워워- 진정해."

 

나는 뒤로 몸을 빼며 상황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양 어깨와 두 손을 확인했다. 꿈인 건가? 온몸에 멍자국과 여기저기 파편에 찢어지고 쓸린 흉터에 피가 여기 저기 나고 있었지만 아픈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갑자기 어깨 위에 남은 회색 괴물의 이물질이 느껴졌다. 꺄아악! 아니야. 꿈이 아니라고.


"어디 갔어? 어디 갔냐고!"


"무슨 소리야! 뭐가 어딜가! 우리 교통사고 났어!"


"도망가야 해! 괴물이 괴물...아악.."


나는 벌떡 일어나려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파 다시 누웠다. 주변을 살펴보니 낯선 계곡이었다. 잿빛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남자아이가 날 괴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회색 괴물 못 봤어?"


"회색 괴물? 그게 뭔데? 뭐야 무섭게... 꿈 꿨나보다. 너 혼자 여기 쓰러져있었어. 나도 조금 전에 정신 차렸다고. 그건 그렇고 너 핸드폰 있어?"


"응, 잠깐만..."


나는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사고가 나면서 어디 떨어졌을 것이다. 이런 빨리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 데! 예전부터 엄마에게 손목시계형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랐는 데 그것만 있었어도 잃어버릴 일은 없었을 걸 괜히 엄마가 원망되었다.


"없어. 혹시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어. 찾아봐야지. 너 일어날 수 있겠어? 아니면 여기 누워있어. 내가 찾아볼게. 빨리 구조 요청해야 할 것 같아. 버스가 산 아래로 떨어졌거든! 아무래도 찾기 힘들 거야. 일단 버스부터 찾아보자."


나는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다리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왔지만 이를 악물었다. 엄마, 아빠, 지훈이는 살아있을까. 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정신 차려야 해! 이럴 때 일 수록...


이곳은 어디일까? 대관령 밑 어딘건가? 늦은 밤이라 버스가 얼마큼 출발하고 사고가 났는지 가물가물 했다. 사고가 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분명 이어폰으로 워너원 노래를 듣고 있었는 데 그리고... 그리고... 아.. 머리 아파. 그러고 보니 저 남자애는 혹시 맨 뒷좌석에 소리 지르던 무리인가?


"너... 혹시 맨 뒷자리에 친구들하고 같이 타지 않았어?"


"어?... 어. 넌?"


"난 부모님이랑 남동생이랑. 내일 일찍 롯데 월드 가려고 그런 건데."


갑자기 울컥 해져 눈이 뜨끈뜨끈해졌다. 목구멍에서 우왕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나는 괜히 얼굴을 돌려 먼산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괜히 질질 짜는 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빨리 버스를 찾고 구조 요청을 해야 했다. 주변에 마을이나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앞서 가는 남자애를 유심히 봤다. 뒷 주머니에 무언가 불룩하게 들어있는 것 같은 데 저거 핸드폰 아닌가?


"그런데 넌 많이 안 다친 것 같네?"


"어? 어... 나 벨트 했거든."


"아... 그렇구나. 나도 벨트 했었는 데."


나는 뒷 주머니에 있는 게  핸드폰이냐고 물어보려다 역시 안전벨트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트를 안 했다면 어찌 되었을 까? 아...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벨트를 안 했더라면..? 벨트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버스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던 동생 얼굴이 떠오른다. 누나. 동생이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고 한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아아악!'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머리 아파? 괜찮아?"


"아... 내 동생... 지훈이가... 지훈이가..."


순간,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남자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이 아이 이름이 뭐지? 나는 우리가 서로 이름을 이야기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 벨트 했거든...' 하는 말과 버스 안을 탈수기 안 빨래처럼 돌고 있던 지훈이의 허망한 얼굴이 겹쳐졌다.


'나도 벨트 했는 데...' '나 벨트 했거든' '나도 벨트 했는 데...' '벨트..'


나는 다시 숨이 가빠져왔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지 못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미친 의혹을 풀지 않으면 도저히 걸을 힘이 없을 것 같아.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알아야만 했다.


"그러면 너나 나나 버스 안에서 정신 차려야 하는 거 아니니...? 우리 벨트 했잖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대꾸가 없는 거야?


나는 빈혈이 일어나 눈 앞이 갑자기 흐릿해 졌다. 멀어지는 그 애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미소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그르릉 하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도대체 내 앞에서 전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이 남자아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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