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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Aug 27. 2017

인소 서울행 막차3

#클레멘타인 1분소설

경고하건 데 모든 불행으로부터 떨어져라. 


불행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가온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그 낯짝을 보고 있으면 당신은 금방이라도 무언가 완성될 것처럼 자신감이 넘치고 미혹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샴페인 거품과 같다. 정신 차려 보면 그 빤빤한 모습 뒤에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고통스럽게 할 불행이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번 경고한다. 불행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라. 



좌석번호 12번



"헉... 헉... 헉..."


혜령은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 사이를 때때로 손으로 헤치고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분명 무언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몰라도 그녀는 분명 이런 곳에서 마주치는 생명체는 자신에게 나이스 한 존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무작정 뛰어야 했다. 생각은 정지했고, 옳고 그름은 사라졌다. 단지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만이 그녀의 망가진 몸을 움직이게 했다.


순간, 무언가 옆에서 그녀를 강한 힘으로 부딪힌다.


"꺄아아아"


그녀는 두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했다.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가 숲 한가운데를 쩍 갈랐다.


"이봐요! 이봐요!"


그것은 우악스럽게 그녀의 두 팔을 얼굴에서 떨어지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여기저기 피투성이가 된 낯선 남자였다. 헉!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


"꺄아아악!"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손에서 흙냄새가 진동했다.


"이봐! 이봐! 쉬쉬! 조용히 하라고. 쉬! 이 근처에 뭔가 있다니까?! 쉬! "


읍읍! 그녀는 숨을 거칠게 내뿜었다. 경찰서에서 들었던 모든 나쁜 일들이 현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지난 사건 사고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 이런 건 특종감인데.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카메라가 어디 있지 라는 생각을 잠깐 한다.


"이봐요!  나 봐봐! 당신 버스 생존자예요? 어? 버스 생존자냐고! 내 말 안 들려? 서울 가는 버스 사고 생존자냐고!"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도 버스 생존자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자, 우리 진정할 필요가 있어. 그쵸? 일단 소리 지르지 마요. 두 번째로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도 그 버스탄 사람이에요. 자, 소리 안 지를 거죠? 여기 위험한 느낌이 들어. 내 말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거려요."


그녀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남자는 천천히 손을 풀어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혜령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로 숨을 몰아쉰다.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려는 뇌가 두통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 눈을 찡그리며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


"미안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아녔는 데 이 근방을 살펴보다가 당신이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아 나도 무작정 뛰어 온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네..."


"왜 그렇게 뛴 거예요? 뭘 본 거죠?"


"모르겠어요. 그냥 숲에서 눈을 떴는 데 뭔가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바로 뛰었어요. 그런데 뒤에서 계속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뒤돌아 보면 다리에 힘 빠질 것 같아서...  저희 지금 어디인지 아세요?"


"아니요. 제 기억으로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은 데, 그런데 어디서 뛰어 오는 거죠? 버스는 지금 저 아래쪽에 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정신 차려보니 숲 한가운데였어요. 혹 다른 사람들도 살아있나요?"


"네, 버스에 몇몇 사람들은 다치고 몇 사람들은 실종됐어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어요. 버스 기사가... 죽었어요."


그녀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왠지 믿음직한 사람을 만나고 나니 그제야 현실감이 돌아오고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 손끝까지 에너지가 쭈욱 빠져나가 저릿저릿했다. 조절할 수 없을 만큼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 8월인데, 오한이 뼛속까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혜령은 생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아... 네... 너무 놀래서..."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어요? 여긴 위험한 거 같으니 빨리 버스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주변은 열대 밀림처럼 숲이 우거졌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아무리 시골이라도 사람이 아예 없는 곳이 있는 가? 그녀는 그동안 취재 다녔던 수많은 시골 풍경에서 느끼지 못 한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이 불안했다. 누가 제발 몰래카메라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소리에도 바짝 긴장하며 눈을 여기저기 돌렸다. 길을 알고 있다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최대한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나무 사이에서 번쩍이는 눈 하나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남자의 뒷 소매를 붙잡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소리 안 들리나요?"


그 둘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변은 두 사람의 숨소리마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작은 소리라도 그 공간을 찢고 들어오면 그대로 항복을 외칠 것만 같았다. 


"일단 빨리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멧돼지라도 나올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구조 요청은 한 건가요?"


"아니요. 여긴 핸드폰이 안 터져요. 혹 핸드폰 되던가요?"


"아니요. 전 깨어보니 핸드폰은 없었어요. 버스 앞 좌석 그물에 넣어 뒀었거든요. 그런데 핸드폰이 안 터져요? 여기 그 정도로 시골인가?"


"모르겠어요. 아무도 신호가 안 잡혀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이 안 터지는 곳이 있다니 어이가 없네요. 5G네 뭐네 하는 데 정부에서는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핸드폰이 안 터진다면 사람이 안 사는 곳이라는 말일 텐데..."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민가를 찾고 있어요. 저는 민가 대신 당신을 찾았네요."


"고마워요."


"뭐, 제가 한 게 있나요. 아 제 이름은 성우예요."


"전 혜령이에요."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정신을 잃고 심각한 상태인 사람도 많거든요. 불행 중 다행으로 의사가 한 명이 있어서 사람들을 봐주고 있어요. 딱히 의료품이 없어서 문제지만 기본 조치는 가능한 것 같더군요."


"휴. 그러게요. 우리 찾겠죠?"


"버스가 안 돌아가는 데 당연히 찾겠죠. 그리고 어차피 운행 거리가 지정된 버스라 금방 사고 지점을 확인할 겁니다."


"핸드폰이 안 된다고 하니 불안하네요. 근처에 전화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이, 삼일이면 찾겠죠. 처음 버스 탈 때 기억 나시죠? 그 정치인."


"아... 네! 기억나요. 무슨 벽돌..."


"일단 정치인이 사라졌는 데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죠. 안 그래요?"


"아- 그런가. 다행이네요. 후-왠지 마음이 조금 놓여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일단 가서 좀 쉬자고요. 어, 저긴가 보다. 저기 연기 보이죠? 거의 다 온 거 같아요."




멀리 하늘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숲을 끼고돌아 흐르는 개울가에 한 무리 사람들이 불을 중심으로 둘러 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기원하는 종교의식 같다. 멀리서 희미하게 보고 있던 두 사람은 그들이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숲을 헤치고 두 사람이 등장하자 무리를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다. 혜령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사람들이 생존자인가? 버스는 어디 있지? 다친 사람은 안 보이는 것 같은... '



앞서가던 성우가 갑자기 발을 멈춘다. 무언가에 붙잡힌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왜 그래요?"




이유 없이 혜령의 목덜미 뒤로 소름이 달라붙었다. 성우가 천천히 그녀를 돌아본다. 혜령의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무언가 잘 못 된 거 같아. 혜령은 몸이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금방이라도 쫘악 깨질 것 같았다. 해괴한 표정으로 돌아선 그의 얼굴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쏟아졌다.







"여기... 가 아니야."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이 흡사 드라마나 영화 속 피해자의 얼굴 같다. 혜령은 부디 실제 영화 속 장면이길 기도했다. 멀리서 어둠의 그림자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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