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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Nov 09. 2017

1분소설 욕 그리고 망

클레멘타인1분소설

그는 나와 헤어지고 늘 다니던 동네를 지나는 길에 동네 놀이터에서 놀던 중학생들과 마주쳤다. 저들 끼리 장난치느라 그와 부딪힐 뻔 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아 씨발 깜짝이야. '란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왜 욕을 하냐는 시비로 번졌고, 그는 사과는 커녕 이에 지지 않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불량스럽게 어른한테 대든다. 란 틀에 박힌 말을 저도 모르게 했다가 꼰대라는 소리를 들었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단어를 들은 그는 곧바로 가까이 있는 한 아이에게 손이 올라갔다고 했다. 그 길로 아이들이 단체로 달려들어 몇 시간을 고스란히 맞았다고 했다.


선을 잡은 아이들은 무슨 연유인지 점점 폭행의 강도가 심해져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그를 패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오줌까지 지린 그는 제발 그만 해달라고,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으나 아이들은 그 모습마저 역겹다며 침을 뱉었다. 두 팔은 뒤로 묶이고, 오줌으로 젖은 바지가 벗겨진 채 놀이터 벤치 뒤편 흙더미 위에 모로 누워 있었다. 날이 덥지도 춥지도 않았기에, 오전에 개 산책을 시키려 나온 아주머니에게 그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작년 이 맘 때쯤 일 것이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일교차 때문에 지독한 독감에 걸린 상태였다. 1인 기업으로 등록하고 일러스트 디자인을 해 주고 있던 나는, 어렵사리 받은 일도 제때 처리 못 하고 하루 종일 끙끙 거리고 있었다. 혼자 사는 탓에 마땅히 약을 사줄 사람도 없으니 그저 땀에 절은 이불에 의지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날들이었다.


특별히 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건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은 가을 단풍이 채 꺼지기도 전에 새벽부터 폭설이 내렸기 때문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을 가다 본 창문은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고, 손으로 대충 닦아 밖을 내다보니 붉은 단풍 위에 허연 눈이 무겁게 올라가 기괴한 날씨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무슨 일이라도 곧 터질 것 같던 이른 새벽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 알람이 떴다.


김명현?


나는 처음 보는 얼굴과 이름에 호기심이 일어 그의 프로필을 찬찬히 살폈다. 딱히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할 사람도 없었거니와 있어도 헐벗은 여자들의 1시간 7만 원 , 2시간 13만 원과 같은 스팸성 메시지뿐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친구 신청 때문인지 감기 때문인지 어쨋든 그대로 잠이 깨버린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불속에 들어가 핸드폰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고, 함께 아는 친구가 23명나 있어 일단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일단 내 페이스북은 정말 아는 지인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혹시나 정말 오가다 마주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타임라인을 살피며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종종 욕이 섞인 격한 어조의 짧은 정치적 비난이나 매일 같이 일어나는 범죄자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일상이라고는 키우는 개로 추정되는 털이 수북한 하얀 몰티즈 사진과 어디선가 퍼온 귀여운 강아지 영상들이 다였다.


다른 것보다 온라인에서 정치적 색깔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실제로 오프라인에서도 약간 피곤한 스타일 일수도 있겠다 싶어 어쩔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어차피 만날 사이도 아닐 텐 데 하는 단순한 결론으로 친구 수락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다.



페친 수락을 하자 그는 0.1초도 안되어 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곧이어 나의 모든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 행동은 몇 년 전 포스팅까지 거슬러 올라가 쉼 없이 알림이 울렸는 데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아 알림 설정을 꺼버렸다.


며칠을 지켜보니 그는 시간 상관없이 페이스북 활동을 무척 활발하게 했다. 어떤 날은 나에게 뜬금없는 메시지를 보내며 안부를 묻거나, 지난 포스팅에 좋아요와 덧글을 달았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딱히 나한테만 그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어찌 되었든 아무런 덧글이 없던 이전보다 한 줄의 반응이라도 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대로 두었다.


"오늘 저녁에 한 잔 할 거면, 시내 홈플러스 옆 투다리로 오세요. 거기 누님이랑 내가 친해. 내가 왕 단골이거든."


그와 페친이 된 지 세 달이 되던 어느 날, 그에게서 받은 페북 메시지였다. 솔직히 살짝 궁금하기도 했고, 그동안 서로 덧글로 안부를 물어온 탓인지 친근함도 느껴져 나가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만난 거는 어린 시절 세이 클럽 활동 이후로는 처음이라 약간 설레었다. 


그렇게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의 관계나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크게 괘념치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자리였다.





그는 페이스북 프로필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는데 아마 사진에서는 볼 수없었던 새치가 듬성듬성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사진 속 얼굴보 볼이 푹푹 꺼져있는 탓에 양 볼의 광대가 툭 튀어나와  보였다. 코 밑에 팔자 주름은 말하거나 무엇을 먹을 때마다 더욱 도드라졌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 진지하게 말할 때면 양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는 생각보다 깡마르고 키가 커 조금 놀랐다. 나는 170이 겨우 넘어 키에 콤플렉스가 있던 터라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를 보며 마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어-이, 여기 여기!' 하며 나의 등을 두드렸다. 동시에 흘끗 대는 눈빛에서 그 역시 내심 나의 실물에 놀란 눈치였지만, 우리는 서로 딱히 외모를 지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누님이라고 부르는 투다리 사장님이 콧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아유, 이 오빠는 처음보는 얼굴이네?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그래 동생은 이렇게 사람도 좀 데려오고 좀 그래라.  매일 혼자 오니 궁상이야. 그게 뭐니? 자- 받아, 안 그래요? 내 말이 맞죠?"


여주인은 사근사근 거리며 자리에 앉아 술을 따랐다. 그렇게 빠르게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나니 마치 미리 알고 있던 동네 선배처럼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연신 웃으며,


"아무튼 내가 딱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소진이 알죠? 소진이 페친이길래 궁금해서 신청해봤지. 그냥, 아 진짜 그냥, 느낌이 좋더라고. 나랑 잘 맞을 거 같고. 그리고 이 페이스북이 웃기는 게, 하두 들락날락거리다 보니까 막상 만나면 진짜 절친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안 그래요?  아! 근데 나 이제 말 놔도 돼지? 내가 3살 더 많으니까. "


그는 나의 예상대로 말이 많았다. 대신 말재간이 있고 소재도 풍부해 지루하지는 않았는 데, 나는 평소에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딱히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거나 맞장구를 칠 뿐, 같이 할 이야기가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 기억도 안 날만큼 그저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시간을 보냈다.


그와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약간 피곤한 기분이 들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그는 페이스북에 언제 찍었는지 모를 나와의 술자리 사진을 떡 하니 올려두고 '꽤 괜찮은 놈!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술이 있어야 한다.'라는 허세스러운 말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가만히 보니 사진 속 나는 생각보다 즐거워 보였는 데 평소 나의 저런 얼굴을 사람들이 보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약간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업무적 미팅 이외에  누구와 편하게 술을 마신 기억이 딱히 없는 것 같아 나도 곧바로 좋아요를 누르고,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제가 사겠습니다.' 하고 덧글을 남겼다.


함께 아는 친구들 중 몇몇이 우리가 어찌 아는 사이인지에 대해 질문하거나 다음에 자기도 불러달라며 질투 어린 덧글들을 달았다. 더불어 나의 페이스북에도 좋아요나 덧글들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말들이 다 그냥 하는 말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일 이후로 더 자주 페이스북에서 친밀하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걱정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그 사람을 절친한 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마음과는 다르게 인터넷에서는 진심으로 애틋한 사이처럼 걱정하고 응원하며 신중한 단어들로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마치 갓 사귄 연인이라도 되 듯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 오늘은 한 잔 해야지?"


처음에는 나도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그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역시 나의 맞장구에 신이 들린 듯 이야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러다 점점 도를 넘는 언행들로 나를 힘들게 했는 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너 오늘 그렇게 입을 거면 여기다가 어? 회색 라인 잘 빠진 거, 어? 아재같이 입지 말고 , 거기 다 검은색 슬랙스 하나 사서 딱딱 맞춰 입으면 괜찮거든. 알지? 그리고 그거 뭐- 한 칠 만원 정도면 사아-. 요즘 많이 저렴해졌잖아. 야, 너나 나나 인마,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옷이라도 잘 입어야지, 요즘은 여자들이 은근히 옷 스타일도 본다 너."


하며 "우리 같은"이라는 단어에 맞춰 오른손을 들고, 활짝 펴서, 자신의 얼굴 앞에서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나는 어차피 연애 쪽은 포기했으니 상관없다고 하자, 그럼 안된다며 삶과 죽음 사이에는 항상 로맨틱한 삶을 꿈꿔야 한다고 했다. 그게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고.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신중하게 검색하더니 남자 옷 몇 가지를 찾아 내게 내밀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자신의 패션지론에 대해 이야기했는 데 나는 슬슬 지겨워졌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소재가 되는 건 몰라도 내가 그의 입에서 이러쿵저러쿵 되는 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에 다녀온다 하고 일어섰다. 그도 담배를 피우러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


화장실로 돌아오니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에게 빨리 와서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조금 전에 들어온 옆 자리  여자들을 흘끔, 보더니 혼자 피식- 웃었다. 곧바로 턱으로 나에게 고갯짓을 하며, 또다시 피식 웃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무엇이 웃기는지 몰라 몸을 낮추며 왜? 왜? 무슨 일 있어요? 하며 물었다.


"야-저기, 저- 군밤 장수 옷 입은 여자 보이지. 하아. 야-,저건 좀 아니지 않냐? 진짜 오버다. 저 얼굴에 저 옷은 또 뭐니. 자, 여기서 문제. 잘 생각해봐. 너- 만약 저렇게 생긴 여자가 너한테 하루 밤 자자 그러면 할 거야 말 거야?"


나는 밑도 끝도 없고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머리가 하얘져 곧바로 답을 하지 못 하고 머뭇거렸다. 


"어-오케이! 됐어. 됐어. 말 안 해도 돼. 그렇지? 너도 그렇지? 야, 봐봐. 다- 똑같다니까. 어휴. 진짜 발기부전 걸릴 것 같은 여자 아니냐? 야, 나는 안 해. 아니 못 해.  씨발, 개든 돼지든 일단 서야 뭐라도 하지. 안 그러냐? 내가 어디에서 봤는데, 남자들이 가장 섹시함을 느끼는 여자 부위가 얼굴이란다, 얼. 굴. 어우. 그렇다면 쟤는 진짜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 타입인데. 안 그냐?"


그는 다시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 앞에서 위아래로 빠르게 흔든 후, 다시 고개를 양 옆으로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나는 점점 심해지는 비아냥에 '아이. 형님 왜 그래요. 어차피 저 여자도 우리한테 관심 하나도 없어요.' 하며 그의 이야기를 멈춰 세웠지만, 딱히 반박하는 말은 하지않고 그냥 분위기상 웃고 말았다. 그러고나니 이유 없이 마음이 머쓱해졌다. 계속 술잔을 내밀어 건배만 연거푸하고 술을 들이켰다.

먹는 내내 여자가 우리 이야길 들었는지 우리 쪽을 쏘아보는 기분이 들어, 시선을 고정한 채 앞만 보며 술을 마셨다. 


그 이후,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그는 술집에 오는 특정 사람을 싸잡아 얕보며 킬킬거렸다. 그런식의 혐오나 조롱은 도통 재미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이야기도 없었기에 그냥 두었다. 대신 괜히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만남의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의 언행이나 사상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날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가 왜 그런 이유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는 딱히 누군가를 비난한 적도 없었고, 옆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두었고, 모든 일에 딴지를 걸었으며,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 무식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와 같이 대화하고 있으면 나까지 그런 인간으로 몰릴까 봐, 그가 누군갈 혐오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면,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주위를 살피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보면 그는 항상 세상을 향해 분노가 차 있었는 데,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페이스북은 점점 정치적인 색깔로 도배되었는 데 그게 또 불편했다. 최근 있었던 정치인의 부정 청탁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는 장문의 글을 썼다. 자신의 삶이 비단 자신의 것이 아닌 시대의 올가미가 만들어 낸 결과라며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고 썼다. 짧은 시간에 그의 말에 동조해주는 사람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는 옹호자보다는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덧글이 달리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몇몇 포스팅마다 점점 그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고, 반박 의견을 낸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며 수 백개의 덧글들이 달렸다. 나는 그런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나의 흔적을 남기기가 부담스러워져 결국 팔로우를 끊어 버렸다.


그러나 그 글들로 그는 페이스북 친구가 늘었고, 나에게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다행이다 생각이 들다가도 몇 달이 지나자 되려 궁금해졌다. 딱히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타입도 아니었던 나는, 그가 아니면 날 찾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자 발주를 주는 회사 대부분이 휴가를 떠난 시기였다. 나도 휴가를 가지려던 차에 뭘 할까 하다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숫자가 없어지기 무섭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취업을 했다고 했다. 조만간 보자며 밝은 목소리로 끊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변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혼자 남은 것 같았다. 술이라도 한잔 해요 -하고 내 쪽에서 먼저 말해 볼 수도 있었지만, 괜히 바쁜 사람 붙잡는 것 같아 말았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며 돌아오는 길에 동네 횡단보도 앞에 남아 있는 벼룩시장 한 부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질 때쯤 그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뭐하냐 한잔해야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말 금요일 밤, 우리는 자주 가던 투다리에서 모둠 꼬치에 생맥주를 시켰다.


안 본 사이에 더 수척해진 얼굴이라 자칫 못 알아볼  뻔했다. 그는 버석 말라버린 늙은 겨울 고목 같았다. 주름은 한 층 더 깊게 파이고 눈밑에 자리 잡은 짙은 그늘이 전체적인 인상을 더 컴컴하게 했다.


"무슨 일 있어요?"


나는 팽이버섯 하나를 집으며 물었다.


"어- 그냥 그렇지. 말해 뭐하냐. 자, 마셔."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이렇게 말을 아끼니 나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하고 더 궁금해졌다. 계속 묻기도 뭐 해서 그냥 아무 말 없이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십여분이 지나니 그는 무언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날 불렀다.


"야."


"예. 형님."


"사는 거 재밌냐?"


"예? 아 뭐, 누가 재밌어서 사나요. 그냥 사니까 사는 거죠."


"야. 너 하는 일이 뭐라고 했지? 디자인?"


"저요? 아 네, 뭐. 그렇죠. 뭐."


"돈 좀 만지냐?"


"그럼 제가 투다리에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좋은 대로 형님 모셨죠."


"씨발, 투다리가 어때서. 내 최애 누님이 여기 계시는 데. 너 인마, 네가 몰라서 그래. 저 누님 옛날에 진짜 예뻤다니까."


"그래요? 지금도 예쁘신데요. 뭘."


"그제? 야. 그래도 지금은 좀 맛이 갔지. 안 그래요 누님? 제 말 맞죠?"


그가 목을 뒤로 빼고 주방에 있는 여주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주인은 맞아, 맞아! 근데 뭐가?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기분도 풀린 듯하여 나는 다시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형님 요즘 얼굴이 영 까칠해 보여요. 건강 관리해야죠."


"후. 그냐? 그래. 나 어제 회사 그만뒀어. 씨발, 말도 마라.사는 게 엿 같다. 그냥 인생도 한 방에 퇴생하고 싶다."


나는 그의 욱-하는 성질 머리 때문에, 사장하고 싸운 건가 하고 혼자 유추해 보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 김 과장이라고 있거든, 대머리에 약간 혀 짧은 소리 내던 인간 있었어. 그 인간이 과장 달고 산지 한 5년 됐나? 암튼 술 먹으면 내가 봐도 여직원한테 약간 추근거리던 게 있거든. 좀 미친놈끼가 있긴 했어. 그래도 뭐 그러다 말겠지 했지. 남자 새끼들이 술 처먹으면 다 그렇지 뭘. 안 그러냐? 아무튼 그러다가 뭔 지랄을 했는지 새로 들어온 여사원이 그 새끼를 성추행범으로 고발했더라고. 참나.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치는 데 무슨 영화같더라. 원래 기존에 있던 여직원은 다 아줌마다 보니까 그런 농도 잘 받아주고, 과장 새끼 섹드립이 심하면 면박도 주고 하면서 지냈는 데, 아무튼 젊은 여자들이 그런 게 통하냐고. 병신 새끼.  우리 과에 대학 갓 졸업한 24살 뭐, 얼굴도 뭐 그정도면 예쁘장하게 생겼어.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걔가 그걸 또 인터넷에 올렸나 보더라고. 요즘은 뭐 비밀이 없으니까. 아, 혹시 너 못 봤냐? 엄청 핫 했는데. 어, 암튼 나도 봤는 데 글재주가 좀 있더라고. 읽어보니 그 새끼가 술 먹고 그 여사원 집 앞에 찾아가고 문 안연다고 현관에 오줌도 누고 그랬대. 미친 새끼지, 그게 미친놈이지 말이 되냐? 적당히 해야지. 아무튼 그래 가지고 회사 난리 나고 아침부터 형사들 들이닥쳐서 나중에는 직원들 싹 다 조사받고 뭐 그렇더라고. 씨발. 나도 괜히 가서 얼마나 추궁당했는지 아냐? 내가 뭘 했다고. 뭐 말만 걸면 성추행이래. 아무튼 그 과장 새끼가 딸만 둘인가? 암튼 그런데, 이게 또 지랄인 게 와이프가 셋째를 가져서 임신 중 이라자나. 그래서 마누라가 그 새끼를 한 동안 안 받아줬나봐. 혼자 하다하다 안되서 그런건지 뭔지 아무튼 있는 새끼들이 더 지랄이야. 나는 존나 쏠로인데. 아무튼 완전 뭐 막장 드라마를 찍었지. 게다가 그 여직원이 또 몰래 우리 회사 다른 과 남직원이랑 사내 연애 중이었던 거야. 어휴 두야. 그러니 그 남친이 가만있겠냐고. 나이 처먹은 새끼가 술 먹고 지 여자 친구 집 앞에서, 그것도 애 딸린 유부남에 같은 회사 상사가 지랄하면 빡 도냐 안 도냐. 나 같으면 벌써 대갈통 아작을 냈다. 아무튼 그래서 더 골 아픈 상황이 된 거지. 그래서 뭐 여기까지는 괜찮아, 그런 일도 뭐 시간 지나면 회복되니까. 그렇게 조사받고 잘리고 일이 마무리될 것 같았지. 야, 생각해봐라. 사장 입장에서 안 그냐. 회사 업무 밀리면 다 돈이잖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하려고 여기저기 돈 쓰고 힘쓰고 꽤나 지랄했나 보다고.


그는 단숨에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그럼 그렇지 입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냐. 하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그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며,


"근데 이 과장 새끼가 뭔 빡이 쳤는지, 며칠 뒤에 그 여직원 자리 위에서 목을 매달았어. 제일 일찍 와서. 그날 그 여직원이 청소 당번이라 또 제일 먼저 출근했다지? 허 참. 경비실에서는 보던 사람이니까 짐 챙기러 온건가 싶었다고 별 의심 없이 들여보낸 거야. 괜히 불똥이 그쪽으로 튀었잖아. 회사에 아무나 들인다고. 뭐 전 직원이 아무나인가. 아무튼 그 노인네가 뭔 잘 못이냐.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인데. 진짜 사랑이 뭔지. 진짜 이 세상은 변태 미친놈 천국인지. 그 꼬락서니를 계속 보다 보니까 구역질이 나더라고. 밤에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내가 두 번째로 출근해서 매달린 다리 붙잡고 그 새끼 끌어내렸잖아. 진짜 뻣뻣하대. 아 몰라. 말도 마. 생각하면 진짜 소름 끼친다니까. 그냥 돈이고 나발이고 나왔어. 아 씨발 ㅡ. 처음에 내가 돈이 아무리 궁해도 울 미자 여사 말을 들으면 안 됬었는 데. 거기가 울 미자 여사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들어간 회사 아니여. 그런데 왠지 가기 싫더라고. 미리 알아보니 회사 사장이 약간 쪽바리 기질도 있고, 빨갱이 기질도 있는 것 같고 아무튼 별로더라고. 그래도 뭐 노니 염불 한다고 다니다가 엄마가 계속 자리 잡고 살으라고 일단 나가보라고 하니 간거지. 다니다 마음에 안들면 그만두려고 했지. 원래 그만두려고 했었다니까? 그런데 그 사단이 난 거야. 휴. 아무튼 우리 엄마는 아들 인생에 도움이 1도 안 된다니까. 야, 진짜 황당하지? 내가 살이 5키로가 빠졌다. 여기 정수리 좀 봐. 머리도 다 빠졌다니까. 씨발- 세상이 어찌 될는지. 그렇다. 어휴... 어? 잠깐만 여기 이쁜아. 저거 티비 볼륨 좀 높여봐 저저 저 새끼들 저 개새끼들 저거.


공기업에 취업 알선을 한 정치인이 고개 숙이며 검찰로 송치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다시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예전의 그가 되어가고 있는 걸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세상 참 별일이다 생각하며 밖으로 나와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갑자기 가게에서 뛰어나온 그가 누님 아이스크림 하나 사야 한다며 앞질러 뛰어나갔다. 그렇게 모퉁이를 도는 찰나에 그는 덩치 좋은 거구의 남성과 어깨를 부딪혔다.


"어이쿠."


순간적으로 나는 느낌이 좋지 않아 재빠르게 그를 붙잡고 거구의 남자에게는 사과했다. 다행히 덩치 큰 남성도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여-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려는 찰나,


"어- 씨발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닐 것이지. 재수 없게..."


하며 그가 나직이 뱉었다.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괜한 싸움에 휘말리는 건 싫었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와 크게 싸워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 형님 왜 그래요. 갑시다. 죄송합니다. 그냥 가세요. 죄송합니다아."


라고 하고 그의 등을 떠미는 데 곧이어,


"거-기 잠깐만, 이봐. 거기 서."


하며 거구의 남자가 등 뒤에서 우리를 잡아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였다. 남자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당신 지금 욕 했어? 같이 부딪혔고, 그래도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는 데 , 젊은 사람이 욕까지 할 거 뭐 있어."


"왜- 그래서 한대 치게? 씨발, 그래서 뭐? 왜 반말인데? 나 알아? 어쩔 건데? "


하며 더 들이댔다. 나는 재빨리 중간에 끼어들어 그를 돌려세우고, 덩치 큰 남자에게 연신 사과하며 그가 가던 방향으로 덩치를 밀며 갔다. 그리고 나는 거구의 남자에게 조용히 소곤거리며,


"형님 죄송해요. 어제 회사에서 잘려서 그래요. 죄송해요. 속 상해서 술 많이 먹었어요. 백수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하고 사정하자, 그도 못 이기는 척하며 '어이 씨팔,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며 갈 길을 갔다.

.

덩치 큰 남성이 가고 나자 그는 내게 거드름을 피우며


"야, 봤지? 꼰대 새끼들은 초장에 기를 팍 죽여야지 조용하다니까. 아니면 존나 나대요. 야 가자. 누님 아이스크림 늦어서 목 빠졌겠다."


하며 마른침을 모아 카악- 밭아냈다. 큰 소리만 나고  모이지 않은 침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새끼를 궁금해한 나를 원망했다.


술집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술집 여주인을 옆에 두고 좀 전의 상황을 이야기해줬다. 탱크 보이를 물고 동그란 눈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정신 좀 차리고 다니라며 오히려 그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람하고 시비하고 다니니!"


"아 쫌! 누님은 내가 뭐 애유?"


"야! 애가 아니니까 쌈박질하고 다니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다음에 또 그러면 혼난다. 너 우리 가게 출입금지당할 줄 알어!"


"아, 알았어. 알았어. 거참. 좋은 거 사주고도 욕먹는 다니까. 여자들은 도대체 왜 이러냐? "



그는 다시 한번 꿀밤을 맞으면서도, 일어서 나가는 여주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몇 주가 지난 주말 밤, 그는 또다시 내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잠시나마 그를 궁금해했던 나를 원망하며 조금 늦을 수 있다고 했다. 최대한 그가 취했을 쯤에 가서 얼굴만 비치고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클라이언트 한 명이 디자인 시안을 잘 못 뽑았다며 돈을 못 주겠다고 으름장을 놔 그 일로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아는 사람 통해 받은 일이라 딱히 계약서도 써두지 않은 상태였다. 까딱 하다가는 3달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 나의 등을 두드렸다.


"야야야! 오늘 내가 집회에서 누구 만났는지 아냐? 김인화 김인화! 너 요즘 제일 핫한 교수 알지? TV에도 많이 나오는 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너도 인마, 일만 하지 말고 어? 세상 돌아가는 소리도 봐야지. 그래야 너 권리도 찾고 하는 거야. 아무튼 마포 솔찬 문화협동센터는 알지? 너네 동네에 있는 거. 어. 그래 거기 임마. 거기 장인데  주변에 물어보니까 거물들하고 꽤 연결돼있다 그러더라고. 이번 대통령 선거도 그 라인들이 움직인 거라는 소문도 있어. 아무튼 돈 줄 나오는 사람들이랑 국회의원이라던가 나도 잘 모르는 데 뭐 대단한가 봐. 암튼 그 사람이 날 잘 본 건지 어쩐 건지 오늘 나한테 수고 좀 해달라 그러더라? 왜 내가 글 빨이 좀 있잖냐. 며칠 전에 내가 엄청 뻘짓하는 새끼들 돌까기 한 글을 올린 적 있는 데. 너도 나중에 봐봐. 아무튼 그걸 누가 추천했나 보데? 갑자기 그 얘기를 하더라고. 잘 봤다고. 야. 형님 글이 이렇게 유명하다 너. 그래서 나보고 좀 도와 달라는 데 M그룹 장 회장 알지? 그 사람이 지금..."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장 회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는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쉿쉿- 하더니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장회장니임. 어쩐 일이십니까?  네. 그럼요.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이구. 제가 다 고맙죠. 네. 기고요? 아....  어떤... 아... 아, 아. 아, 네!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네, 그럼 박 실장 님하고 제가 내일 통화 하겠습니다. 넵. 들어가십시오. 네네.


그는 전화를 끊으며 마치 진짜 장 회장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인사를 꾸벅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말해주지 않았다.


"어, 별거 아니고, 일 좀 해달라고 그러네. 뭐 나도 내일 가봐야 알아. 자세한 건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 정치란 게 또- 입이 가벼우면 안 되잖니. 어? 너를 못 믿는 다는 뜻은 아니다. 너 오해하지마라. 뭐 어차피 니 성격에 다른 데 말하지도 안 겠지만. 아무튼 이제 형님 얼굴 못 볼지도 몰라. 야야야 됐고, 술이나 마시자!"


기분이 한 껏 좋아 보이는 그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웃음이 헤퍼졌다. 나는 속으로 정말 큰 건을 맡았나 보다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쪽 눈썹을 씰룩 거리며 한참 취기가 오르자 또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우리 같은 흙수저 들은 아무리 뭘 퍼먹어보려고 해도 숟가락이 바스라져서 떠지는 게 없다고. 단단하고 번쩍번쩍 거리는 들이 처먹는 걸 구경만 해야 한다고 했다, 대신 이제는 소셜 덕분에 부당한 일은 몇 명이 모여 박살낼 수 있는 시대라 했다. 금수저의 아가리를 벌리고 먹고 있는 걸 도로 끄집어낼 수 있는 세상이라고. 그러니 너도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똘똘 뭉쳐야 저 호로자식들이 삥땅 치는 짓거리를 못 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사람들도 금수저로 태어난 게 그들이 원한 것 도 아니고, 어차피 그렇게 태어났다면 저라도 그럴 것 같은데요. 뭐 욕심 있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로, 그런 패배자 정신을 학교에서 가르쳐 줬기 때문에 현상을 받아들이기만하고 질문하지 않는 소위 말 잘 듣는 병신들을 양산해 낸 거라고. 그런 생각을 갖는 니가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교육 제도 자체가 개병신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삶과 그의 말과 그의 정신이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머리가 혼란하다가, 가만히 듣다 보니 또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정말 그런 걸 이해하는 내 생각 자체가 문제인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헤어진 다음 날, 점심으로 자장면을 기다리고 있는 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었다. 김명현씨 사건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자장면이 불도록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아무 일도 하지 못 했다.





그의 해괴한 죽음으로 미디어는  발칵 뒤집어졌으며, 특히나 어린 청소년들이 한 짓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부모의 못인지, 세상의 못인지, 아이들의 못 인지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의 생전 삶은, 특히 페이스북은 미리 닫지 못해, 탈탈 털렸다. 생전에 했던 그의 언행을 싸잡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어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놀이터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가 치욕스럽게 죽어간 영상을 입수받은 뉴스의 모든 채널에 경쟁하 그가 울며 빌고 또 비는 모습,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기절한 그의  얼굴을 근사해서 찍거나 옆에서 브이를 하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내보냈다.

나는 매번 얼굴을 마주하고 술을 먹던 형의 얼굴을 그런 식으로 마주하니 많이 낯설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 행방을 찾아 인터뷰 시도하려고 그의 집 앞 장면을 내보내는 방송사도 있었고, 안 되면 동네 사람들에게 그의 평판을 캐묻고 다니는 방송사도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부터 회사 동료까지 모두 자발적으로 나와 인터뷰에 응했다. 친한 사이였을까.


며칠이지나자, 갑자기  언제부터 그렇게 된 일인지, 전국적으로 그동안 청소년에게 당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모두 한 목소리로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알렸다. 손 쓸새없이 퍼져버린 곰팡이처럼 문제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그가 죽기 직전 정치인과 연이 닿아 있었다는 통화 기록을 스케치하며 일은 다시 정치적 파문으로 이어졌고 이야기는 두 달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고 이어졌다.


순식간에 그의 마지막 영상이 짜깁기 되고, 편집되고, 다양한 사건과 짬뽕되며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헤쳐졌다.

시간이 지나 그의 계정은 닫혔지만 블로그, 인터넷 뉴스,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등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온갖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일이 퍼져버리는 걸 보자, 나는 혹여나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봐 매일 불안하고 초조해 잠을 잘 수 없었다.


매일 밤 그는 꿈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 살던 반지하 집 안방 문 앞에서


너는   막지 않았냐고,

왜 가만히 있었냐고.


그날 그 거구를 막아주던 날처럼 왜 저들이 자신을 난도질 할 때 막지 않느냐고 나를 추궁하며 잠이 깰 때까지 나의 목을 졸랐다.






조사를 받을 때 담당 형사에게 들은 말로는 그의 휴대전화 목록의 90프로가 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자함에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걸로 시작되어 뒤로는 아무 말도 없는 임시 메시지가 여러 개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혹시 무슨 중요한 이야기나, 무슨 말하려고 했을지 짐작 가는 게 있나요?"


형사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서는 내게 담당 형사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밤을 새우며 조사를 받은 나는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어 '글쎄요.'라는 답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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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그렇게 친했던 사이는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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