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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29. 2018

#클레멘타인 솔직 에세이

2018.6.29


냉동 만두를 먹다 눈물이 났다.

엉엉 운건 아니지만 찔끔찔끔 거리며 만두를 씹었다.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몸 안에 가득차 눈 밖으로 흘렀다.


가련한 내 영혼은 퉁퉁 불어 갈라지고 뜯어진 페인트처럼  여기저기 낡아 있다.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벗겨지는 잔해들.


그런 감상적인 상황 눈치 없는 고양이가 책상 위로 올라와 야옹야옹거린다.
구룩구룩,구룩구룩.
제 멋대로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만두 한 입 얻어먹을 수 없을까 하는 심상이다. 그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매력을 쥐어짜며 갖은 아양을 떤다.


사람이라면 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그깟 한 입이 뭐라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겠지만. 고양이는 그 모든 냉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늘 그렇듯, 옆에 와서 입맛을 다신다.


눈물도 냉동 만두도 결국 고양이다.

고양이도 나도 결국 냉동 만두다.

그렇게 너도 나도 살려고 참 지랄이구나.


한참을 구룩거리는 고양이에게 무엇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방어 자세를 취해본다. 이에 질세라 고양이도 계속 도전한다.


그렇게 둘이서 옥신각신하다보면 만두는 코로 들어가는 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저 단순한 삼킴의 행위다.


고양이의 행패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땐 구룩거리는 세모 얼굴에 뽀뽀를 퍼붓는다. 녀석은 음식을 안 주는 것보다 뽀뽀하는 걸 더 싫어하니까. 잠시나마 덤비는 걸 막을 수 있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엽다. 승리를 예감한 나는 만두를 씹으며 씨익 웃는다.


인생은
되는  없이 굉장히 복잡하다가 한순간 단순해진다. 반대로 생각보다 밑도 끝도 없이 잘 되기도 한다.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삶의 기복 때문나는 종종 다리가 아프다.


부실한 하체 탓일까,
밀어닥치는 운명의 파도에 밀려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웃는다.


그러니까 슬픈 와중에 웃긴 일이 있고, 웃긴 와중에도 슬픔에 넘어지는 일이 있다. 그래서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고, 살고 싶다가도 죽고 싶다. 나란 인간은 별일 아닌 일에도 마음이 가고 시간이 정지한다.


냉동 만두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다만 슬픈 순간 먹는 냉동 만두는 슬프다.

슬플 때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는 슬픔이 서려있다.

그러니 그때는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마음이 감당되지 않을 때는 도망가는 게 좋다.


내게 도망가는 일은 때론,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영어를 들어도 모국어처럼 어색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하는 일.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머리로 그들의 언어로 생각하며 무작정 그들의 삶에 끼어드는 일.

그렇게 나는 내가 발붙인 곳을 버리고 이해받지 못 할 어딘가로 떠난다. 영혼도 육신도 거추장스러워 모두 여기 남겨둔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런 상상을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나는 어디서도 낙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안다.

다 알지.
낙원  따위 필요없다.
다만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


뭐랄까.

일종의 신분세탁 같은 거다.

악마가 꿈꾸는 천국같은 일.

천사가 꿈꾸는 지옥같은 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을 남 몰래 해보는 일. 그렇게 살아보는 일.


하지만 그럴 수 없겠지.

현실에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젠장. 가기도 전에 다리가 너무 아프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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